북 “신무기 전방배치”…적반하장 9·19 파기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대응 조치로 정부가 9·19 남북 군사합의의 비행금지구역 조항을 일시 효력정지한 지 하루 만인 23일 북한이 이 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합의에 따라 지상·해상·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취했던 군사적 조치들을 철회하고,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장비들을 전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9월 19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체결된 이 합의는 북한의 파기 선언에 대한 향후 정부의 방침에 따라 5년2개월여 만에 쌍방 전면 파기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국방성은 이날 성명에서 “정찰위성 발사는 자위권에 해당한 조치이자 정당한 주권 행사”라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국방성은 이어 한국을 ‘대한민국 것들’이라고 호칭하면서 “현 정세를 통제 불능 국면으로 몰아간 저들의 무책임하고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성명 발표에 앞서 지난 22일 밤 11시5분쯤 평안남도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 미사일은 발사 후 고도 1~2㎞까지 상승하다가 곧바로 공중폭발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은 1발을 발사했고 초기 단계에서 실패해 우리 탐지자산으로 제원 파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조만간 추가 무력시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어제(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밝혔듯이 북한은 과거 9·19 합의를 자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전혀 놀랍지 않다”면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NSC 상임위원회는 입장문에서 “북한은 지난해와 올해 약 100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수천 회에 걸친 해안포 포문 개방, 빈번한 해안포 사격훈련, 무인기의 수도권 침투 등을 통해 9·19 합의를 상시적으로 위반해 왔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전하규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해 북한에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이 (9·19 합의) 효력정지를 빌미로 도발을 감행한다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 핵탄두 장착 가능한 미사일·방사포 전방배치…남한 위협할 수도”
신 장관은 “우리 군의 감시정찰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군사정찰위성을 통해 감시정찰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9·19 합의 일부 효력정지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치”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9·19 합의 파기 선언에 따라 향후 정부가 지난 22일 효력정지한 조항 외에 나머지 조항들을 계속 이행할지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통위에서 “향후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9·19 합의에 따라 중단된 대북 확성기 방송의 재개 여부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답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기 선언을 한다고 해서 (합의가) 일방적으로 파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이 주장한 ‘무력 및 신형 군사장비 MDL 전진배치’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재래식 무기와 전술핵무기를 동원한 ‘투 트랙’ 위협을 시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동해안이 그려진 지도를 걸어놓고 전방부대의 작전능력 강화를 지시했다. 또 같은 달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도 “전선 부대의 작전 임무에 중요 군사행동계획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혀 전술핵무기를 최전방에 배치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군단급 정찰용 무인기를 전진 배치하거나, 구태여 전방 배치가 필요 없지만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을 배치해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는 점을 과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량된 전술급 다연장 로켓이나 대공 로켓, 전술유도탄 등 신형급 무기를 전방에 배치할 수 있고, 정찰 및 공격 기능을 갖춘 무인기 부대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북한 역시 이번 9·19 군사합의 파기로 일정 부분 군사적 부담이 생겼다는 분석도 있다. 고재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연구센터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9·19 합의 후 북한엔 후방에서 전술핵과 핵 투발 수단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오는 27일(현지시간)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한 긴급회의를 개최할 방침이라고 교도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안보리는 2018년 이후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등으로 대북제재 결의나 성명 채택 등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일훈·이근평·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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