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밀크티를 끓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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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바야흐로 밀크티를 끓이기 좋은 휴일 아침이다.
맛있는 밀크티 한잔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밀크티 베이스에 꿀과 우유를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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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반려묘 이응이가 지정 좌석인 양 당당하게 걸어와 내 무릎을 차지한다. 목덜미를 긁어주면 기분이 좋아서 그르릉, 소리를 낸다. 라디오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전국 곳곳에서 첫눈 소식이 들려온다. 창문을 활짝 열어 초겨울 공기를 깊이 마신다. 코끝이 시리다. 바야흐로 밀크티를 끓이기 좋은 휴일 아침이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우유를 꺼낸다. 물을 조금 붓고 홍차가 우러나도록 약한 불에서 자작하게 끓인다. 맛있는 밀크티 한잔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섣불리 센불에서 끓이면 쓴맛이 우러나기 때문이다.
우유 가장자리가 보글거리면서 뜨개 레이스 같은 거품이 생긴다. 밀크티 베이스에 꿀과 우유를 섞는다. 순하고 고요한 시간. 부드럽고 달큼하고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 찬다. 어쩌면 나는 이런 분위기를 은은하게 즐기고 싶어서 밀크티를 끓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밀크티 한잔이 데려올 이야기를 무심히 기다렸는지도.
나무 주걱으로 우유를 젓는다. 지금껏 나를 지나간 계절과 사람 사이를 천천히 거닐듯이. 지난 시간을 반추한다. 우유를 끓이는 것은 감정의 비등점을 맞추는 일과 같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화르르 흘러넘치고야 만다. 삶의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가끔 자신의 감정을 달래가며 저어줘야 한다. 이미 한소끔 부풀어 올라 넘쳤다면 어쩔 수 없다. 끈끈하게 남은 미련을 떨치듯이, 가스레인지 화구 틈새로 흘러내린 우유를 꼼꼼하게 닦아내야 한다.
식어가는 밀크티의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긴다. 마치 어떤 위험으로부터 부드럽게 보호하려는 듯한 미색의 장막. 그 얇은 막을 걷어낸다. 밀크티를 끓이는 동안, 예민하게 날을 세웠던 감정도 조금 느긋해진다. 그 순간만큼은 생활을 잘 돌보고 싶고 스스로를 너그럽게 대하고 싶어진다. 찬장에서 가장 아끼는 찻잔을 조심스레 꺼낸다. 양손에 오목하게 들어맞는 잔의 부피. 따뜻하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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