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행복의 조건’이 궁금한 어린 원정대
평소의 습관과 마음가짐
타고난 환경, 재산 아냐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디세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 ○○○입니다.”
이런저런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내게 독자들은 (출판사의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이메일이나 쪽지를 보내곤 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편집자였던 시절엔 상상도 하지 못한 작가로서 누리는 소소한 기쁨이다. 개중에는 업무상 요청이나 부탁도 종종 있어서 ‘이럴 땐 좀 귀찮다만’ 싶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농후한 편집자의 호기심을 장착한 나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사연을 살펴보는 편이다.
우선 ‘오디세이 학교’라니,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무슨 대안학교인가 짐작했는데,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1년 과정의 ‘전환학교’다.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키워가고 싶은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단다. 그럼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란 말인데, 열일곱 살 어린 친구가 무슨 용무로 내게 메일을 보낸 것일까?
“저희는 2학기에 ‘질문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질문 여행’이란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인생에 대한 질문이 구체화되면 그 질문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입니다. 알고 싶었지만 쉽게 알 수 없는, 궁금하지만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에 조언해 줄 수 있는 인생 선배나 멘토를 찾아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 학생들이 품은 질문의 주제가 자그마치 ‘행복’이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들에게 질문이 생겼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저를 선택했나요? 그리고 행복과 건강을 연관시킨 특별한 근거가 있나요?”
왜소한 몸집의 한 편집자가 마흔 즈음부터 운동하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설파한 15분짜리 내 동영상을 봤단다. 학생들 어머니 중에 이미 ‘마녀체력’ 독자가 두 분이나 있어 적극 추천하셨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공부하는 와중에 조지 베일런트의 책 ‘행복의 조건’을 읽었는데, 과연 건강이 행복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기특한 녀석들 같으니.
내 책꽂이에도 꽂혀 있는 그 책을, 핑계 삼아 다시 꺼내 들었다. 하버드대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저자는 오랜 세월 동안 아주 특별한 연구를 해 왔다. 72년 동안 총 824명의 삶을 계속 추적하며 관찰한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의 총책임자 역할을 35년간이나 맡아온 것이다. ‘행복의 조건’이야말로 바로 그 연구 결과물로서 집필한 책이다.
824명에는 하버드대 2학년 남학생 268명, 천재에 준하는 뛰어난 여성 90명, 고등학교 중퇴 후 자수성가한 남성 456명이 포함됐다.
연구 대상이 영위해 온 다양한 인생 굴곡을 훑어보면서 독자는 절로 깨닫는다. 타고난 환경이나 재산, 명예, 학벌이 반드시 행복을 장담해 주지 못한다는 진실 말이다. 행복과 불행, 건강과 쇠약함 등을 크게 좌우하는 것은 신의 뜻이나 유전자가 아니다. 각자의 의지로 평소 하는 행동이나 습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이 연구 결과는 고찰한다.
특히 50세를 기준으로 책에서 말한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대부분 80세에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는 통계는 그야말로 미래를 예견하는 지표였다.
‘행복의 7가지 조건’이 궁금하신가? 그럼 책을 읽어 보시라. 다만 40세에 운동을 시작해 꾸준히 체중 관리를 하면서, 술은 어쩌다 쪼끔 마시는 비흡연자인 나는 벌써 여러 개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그러니 요 영리한 고등학생들이 번지수를 제대로 찾은 셈이다.
멀리서 젊은 친구들이 날 보러 와준다니, 기왕이면 평생 기억나는 소풍으로 만들고 싶었다. 다 같이 빡세게 등산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자칫 심술쟁이 마녀로 각인되면 어쩌겠는가. 대신 맛있는 샌드위치를 싸들고 얘기를 나누며 우리 동네 둘레길을 걸었다. 눈이 반짝거리는 단단한 아이들이었다.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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