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완의 마켓 나우] 한·중·일 배터리 10년 전쟁, 승자의 조건
배터리 산업을 지배하던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죽는다(不進則死)’는 모토가 ‘무리하게 나가면 죽는다(强行必死)’는 패러다임으로 교체되는 전환기가 왔다. 장기전에서 승리하려면 급변하는 산업 환경을 제대로 읽어 신·증설 계획과 가·감속 타이밍, 코너 공략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올해 초 필자는 배터리 전기차나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분야에서 생산설비 과잉 시점이 이르면 2024년에 온다고 예측했다. 세계 각국의 공격적 설비 증설 때문에 늦어도 2025년에 중대 분수령을 직면할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배터리 전기차 시장에서도 어느덧 경기와 시장 둔화를 걱정한다. 시장 장악력이 독보적인 테슬라가 결국은 ‘치킨 게임’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배터리 3사의 고객사를 포함한 후발 자동차업체들이 신차를 내놓았지만, 이런 제품이 시장에 막 안착하려는 찰나 테슬라가 파격 할인에 나섰다. 지엠과 포드를 직격한 도미노 충격파는 우리 배터리 3사를 향한다.
중국 회사(CATL) 한 곳이 한국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 합계를 넘어서는 조짐이 1~2년 전에 나타났다. 우려가 현실로 자리 잡은 지금, 3사 점유율을 합쳐야 과거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단독으로 누리던 23%에 불과하다. LG엔솔의 점유율은 세계 1위에서 3위로 내려앉았다. 그동안 이차전지 산업의 업황이 워낙 좋아 우리나라 기업들도 같이 성장했지만, 지금은 중국 기업의 가파른 성장세 때문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어디까지 밀려날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반도체는 ‘초격차’일지 몰라도 이차전지, 즉 배터리는 ‘미격차(微隔差)’인 지 오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왕의 귀환’이 예고됐다. 한때 배터리 분야 세계 1위였던 일본이 권토중래에 나섰다. 파나소닉이 연매출 11조원의 자회사를 매각하고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투자한다고 18일 발표했다. 파나소닉은 이번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자신과 PEVE, PPE&S로 구성되는 삼각 편대에 5조원을 수혈할 전망이다. PEVE와 PPE&S는 파나소닉과 토요타의 합작회사다.
그동안은 연습게임. 커질 것이 분명한 배터리 시장에서 ‘한·중·일 배터리 10년 전쟁’의 본선이 임박했다. 3년, 5년에 끝날 싸움으로 보는 것은 속단이다. 최소 10년은 가야 판세가 정리될 것이다. 우리가 3년 정도는 밀릴 가능성이 있지만, 후반에 역전을 꾀하면 된다. 그때쯤 현재 상위 15개 배터리 제조사 중 누가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다가올 전쟁의 한복판은 유럽보다는 성장세가 강한 북미로 예상된다. 배터리 3사로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란 각오로 경영진 교체까지 포함하는 쇄신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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