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Food] 유럽부터 남미까지K라면 열풍, 세계를 끓이다

송정, 김호빈 2023. 11. 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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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음식에서 수출 효자 된 한국 인스턴트라면의 60년 역사

77개. 세계라면협회(WINA)가 발표한 한국인 한 명이 1년에 먹는 라면의 개수다. 닷새에 한 번꼴로 라면을 먹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 라면의 인기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부터 남미대륙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에서도 한국 라면이 인기다. 배고픔을 달래던 서민 음식에서, 수출 효자품목이 된 한국 인스턴트라면의 역사를 알아봤다.


1963년에 국내 최초 ‘삼양라면’ 출시


올해 환갑이 된 한국 인스턴트라면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첫 제품은 ‘삼양라면’으로, 1963년 9월 15일 출시됐다. 삼양식품의 창업주 고(故) 정중윤 명예회장이 1960년대 초,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인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을 보며 일본 유학 시절 접했던 인스턴트라면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라면이 식량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고 일본 묘조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국내 최초의 라면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스턴트라면은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쌀 중심의 식생활을 바꾸기 쉽지 않았던 데다 닭 육수의 담백한 국물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라면 판매에 전환점이 된 것이 1965년 정부가 밀가루 소비를 권하기 위해 펼친 혼분식 장려 정책이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넣어 한국인이 좋아하는 얼큰한 맛을 더하자 라면 판매가 늘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주식회사가 롯데라면을 내놓으며 시장에 진출하는 등 라면의 가능성을 본 식품회사들이 하나둘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는 한국 라면의 황금기로 불린다. 지금까지 사랑받는 라면 대부분이 이때 나왔다. 너구리(1982년), 안성탕면(1983년), 팔도비빔면(1984년),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 진라면(1988년)등이 있다. 특히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인의 라면 사랑에 불을 붙였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사상 최초의 3관왕을 차지한 임춘애가 “라면만 먹고 운동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회자된다. 서울올림픽 당시 관중석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세계에 중계되며 한국 컵라면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하얀 국물 라면 등 새로운 맛과 형태의 제품 개발


라면 시장엔 매년 새로운 도전이 눈에 띈다. ‘라면은 매운맛’이라는 한국 라면 업계의 공식을 흔들었던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이 대표적이다. 2011년 삼양은 나가사끼 짬뽕을, 팔도는 꼬꼬면을, 오뚜기는 기스면을 출시하며 소비자의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다. 면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흔히 라면의 면발은 꼬불꼬불하게 만든 면을 기름에 튀겨 만드는데 2019년 농심이 고온의 바람으로 건조한 신라면 건면을 출시해, 한 달 만에 800만개를 판매했다.

최근엔 점보도시락·공화춘 등 유통사가 화제성을 노리고 출시하는 제품도 쏟아지고 있다. 마케팅 컨설턴트 김인권 인앤아웃 대표는 “요리 인플루언서들이 자신만의 노하우로 라면을 끓여 새로운 요리로 재탄생시키는 등 새로움에 대한 소구가 강해졌고 식품 기업도 고객의 요구를 SNS에서 파악해 신제품 개발에 적용하다 보니 새로운 맛과 형태의 라면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인스턴트라면의 원조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최근 일본에서 면이 없는 미역 라면을 실험 삼아 출시했는데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정규상품으로 출시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10월까지 라면 수출액 전년비 24.7% 늘어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 라면은 이제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닌 세계인의 식문화 속에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20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라면 수출액은 7억8525만 달러(1조208억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24.7% 늘었다. 이는 10개월 만에 라면 수출액이 기존 연간 최대치인 7억6541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 라면의 인기 양분으로는 K 컬처를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다. 칸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가 각각 황금종려상과 작품상 등을 받으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고 영화에 나온 짜파구리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았다. 최근에는 BTS 멤버인 지민이 라이브 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먹자 해외 팬들이 지민을 따라 매운 라면을 먹는 영상을 올리는 ‘매운맛 챌린지’가 유행했다.


품질 향상에 초점 맞춘 프리미엄 전략 펼쳐


세계에서 사랑받는 한국 인스턴트라면. 사진 위는 미국, 아래는 스위스에서 농심 신라면을 먹는 모습. [사진 농심]
수출 전용 상품 개발부터 해외 법인 설립까지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라면 브랜드의 전략도 K 라면의 인기 비결이다. 농심은 정확한 시장 분석을 통해 차별화에 성공했다. 실제로 미국 진출 초기, 현지 시장을 독점하던 일본 라면과의 차별화를 위해 가격 경쟁보다는 품질 향상에 초점을 둔 프리미엄 전략을 펼쳤다. 또한 한국 본연의 맛에 집중했다. 그 결과 신라면은 파스타 같은 서구권 면 요리와 동등한 위치로 미국 시장에 안착했다. 신라면은 2021년을 기준으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리는 라면이 되었으며 2022년 신라면의 해외시장 매출액은 6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4% 상승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을 넘어 멕시코 진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멕시코는 1억 3000만 명에 달하는 인구수와 많은 고추 소비량, 매운맛을 선호하는 문화 등으로 인해 라면 시장의 성장이 밝게 전망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현지 식재료와 식문화에 맞는 상품 개발로 해외를 공략해 성공한 곳도 있다. 삼양식품은 오리지널 불닭볶음면을 필두로 ‘하바네로라임불닭볶음면’ ‘야키소바불닭볶음면’ ‘똠얌불닭볶음탕면’ 등 각 지역별 문화에 익숙한 해외 전용 불닭볶음면을 개발했다. 오뚜기 역시 수출 전용 제품을 개발해 해외 소비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진라면 치킨맛’ ‘진라면 베지’ ‘보들보들치즈라면’ ‘보들보들치즈볶음면’ 등 국내에선 맛볼 수 없는 수출 전용 제품을 60여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시장은 베트남이다. ‘진라면’ ‘진짜장’ ‘북경짜장’ 등이 인기를 끌며 작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30% 증가한 450억원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라면공장에 ‘인니할랄’ 인증을 받고 인도네시아 할랄라면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송정·김호빈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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