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송현동 '이승만 기념관'과 오세훈의 선택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과 마지막 주석을 지냈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1875~1965). 평생을 항일 투쟁과 건국 운동에 바쳤고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그의 업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6월 28일 각계 인사들이 참여한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지난 9월 11일 시작한 모금 운동은 2개월여 만에 국내외에서 남녀노소 2만6000여명이 동참해 이미 60억원을 돌파했다. 추진위는 최소 320억원, 가능하면 1000억원까지 모으겠다는 각오다. 지난 9월에는 초·중생 40여명이 서울 중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참관하고 성금을 전달했다. 육사 동창회, 해병대 전우회, ROTC 중앙회 등 군인 가족의 참여가 눈에 띈다.
미국·일본·스페인 등 교민들의 성금도 답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교포 사업가는 10억원을 쾌척했고, 이 대통령의 해외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하와이 교민들은 별도 모금 운동을 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00만원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400만원을 냈다. 한류스타 이영애(52) 씨도 5000만원을 기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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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진위 "최적의 공간은 송현동"
오 시장 "의견 모이면 적극 검토"
분열 극복, 통합 기회로 삼아야
」
추진위는 더 많은 20~30세대의 참여를 위해 전국 순회 토크 콘서트('함께 대한민국과 이승만을 논하다')를 시작했는데, 지난 15일 영남대 행사장에 대학생 등 200여 명이 몰렸다. 기념관 추진 상황을 듣기 위해 김황식(75) 추진위원장을 만났다. 전남 장성 출신으로 대법관·감사원장·총리를 역임한 그는 각계의 추천으로 '이승만 대통령기념재단' 초대 이사장과 추진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추진위 발족 5개월의 소회와 성과는.
"많은 국민과 교민이 동참 의향을 밝혀 고무적이다. 이 대통령과 동시대를 살았던 국민이 이제 극소수인데도, 이 대통령과 그 시대에 대한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만큼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박정희·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 가족들도 추진위에 참가했다.
"특정 정파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다. 4·19 혁명 세대가 지난 3월 국립서울현충원 이승만 묘역을 참배해 화해했고, 이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가 작고하기 전에 4·19 민주 묘지에서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했다. 이 대통령의 역사적 공과(功過)를 사실대로 밝히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것이 목표다."
-국민께 전할 메시지는.
"이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늘 하셨다. 갈등과 분열이 심한 우리나라에 지금 가장 절실한 가치가 통합이다. 작은 차이를 극복해 크게 단합해야 한다. 기념관 건립을 국민이 하나 되는 계기로 만들 것이다. 기부금 액수보다 더 많은 국민이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기념관 부지 물색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지난해 8월 '이승만 VR 기념관' 제작을 주도했던 손병두(82) 전 서강대 총장은 추진위원 겸 부지선정위원장으로 뛰고 있다. 부지선정위원들은 용산공원·배재학당·청와대 등 여러 후보지의 장단점을 검토해 송현동 부지가 최적지라는 의견을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을 면담해 전달했다.
-왜 송현동이 최적지인가.
"이 대통령이 이왕가(李王家)를 설득해 송현동 부지를 주한미국대사관 숙소로 활용해오다 1997년 돌려받았다. 한미동맹을 성사시킨 이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땅이다. 1948년 정부 수립을 선포한 중앙청(경복궁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 바로 옆이 송현동이다. 대한민국의 상징 거리인 광화문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앞으로 남은 절차는.
"송현동 기념관은 '열린 송현 녹지광장' 3만7117㎡의 극히 일부(약 3300㎡)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서울시에 부지 사용 허가를 요청한 상태다. 오세훈 시장은 '의견을 모아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빈 땅이라 허가만 나오면 내년 봄에 착공해 2026년 8월까지 완공이 가능하다. '이건희 기증관'과 연계해 저층(지상 3층)으로 잘 설계하면 세계적 명소가 될 거라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 번영의 주춧돌을 놓은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이 없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이 대통령의 손자 이병구(54)씨는 "기념관이 국민 통합의 상징적 공간이 된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기뻐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오 시장의 결단만 남았다. 오 시장은 차기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유망한 정치인이다. 보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결단의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송현동 '이승만 기념관'이 오 시장에게 화룡점정(畵龍點睛)의 한 수가 될지 주목된다.
글=장세정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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