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복판서 "각하, 5.18 진압 잘했다"... 전두환 기린 전직 군인들

복건우 2023. 11. 2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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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12.12 가담 박희도 등 구국동지회, 2주기 추모제... 지나던 시민들은 "어이가 없다"

[복건우, 권우성 기자]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12.12군사반란 핵심이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서울 한복판에 모인 전직 군인들이 전두환씨의 사망 2주기를 기리고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길을 지나는 시민들은 "어이가 없다"며 혀를 찼고, 5.18민주화운동 관계자들 또한 "위험한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앞 인도에 녹갈색 군복을 입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빨간 모자를 쓴 해병대 출신 예비역 등 5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빽빽하게 모여 앉았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가 경제발전에 헌신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묵념이 있겠습니다."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구국추모제'에 참석한 육·해·공군 및 해병대 예비역 장교들은 '새로이 기억하다'라는 문구와 함께 무대 한가운데 마련된 전두환 영정을 향해 묵념을 올렸다. 대부분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복무한 군인들이었다.

이날 추모제는 전씨의 약력을 보고하고, 그의 생전 연설 동영상을 함께 시청한 뒤 추모곡을 부르는 순으로 진행됐다. 불교(법일스님), 기독교(최문수 목사)의 추모 기도도 이어졌다. 육사총구국동지회, 해군사관학교구국동지회, 국군간호사관학교구국동지회 등 13개 예비역 장교 단체로 구성된 전군구국동지연합회가 참여했으며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이정린 전 국방부차관 등 군 관련 전직 고위 인사들도 자리를 지켰다.

"5.18=폭도" 학살 책임 부정한 추종자들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예비역들은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전씨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육사 예비역(72·대령 전역)은 "나라를 튼튼히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답했다. 군사정권 당시 육군 대위로 복무했다는 예비역(74)은 "전두환과 5·18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전씨가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어떠한 사과도 없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사과할 일이 없다"(84·해병대 출신 예비역), "폭도 진압을 잘해서 안정을 찾은 것"(68·해군 출신 예비역)이라고 답했다. 전씨의 민간인 학살 책임을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전씨는 12·12군사쿠데타(1979년)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5·18민주화운동(1980년)을 무력 진압한 혐의로 구속돼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군사반란죄·내란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김대중 정부 특별사면에 의해 사면됐지만 유죄 판결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했다.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5.18 사태"라고 표현한 박희도 전 국군참모총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당시 계엄군의 지휘계통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직책에 있었음에도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계엄군 지휘자로 엮여 온갖 비난과 수모를 당했다"며 "대통령이 남긴 큰 위엄을 받들어 역사 바로잡기에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장낙승 육사총구국동지회 회장은 "각하께서 헤쳐 나가신 국가 보위의 길은 자유와 정의를 향한 숙명이었다"며 "청문회, 구치소, 재판, 사형, 사면이라는 가시밭길을 견디면서도 육사인의 정신으로 그 세월을 이겨내신 각하가 먼 길을 떠나셨다"고 추모했다.

이날 근처에서 추모제를 지켜본 시민들은 "전두환 2주기라는 걸 처음 알았는데 이해가 잘 안 된다", "민주주의를 탄압한 사람을 추모한다니 어이가 없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거리를 오가며 힐끔힐끔 추모제를 쳐다보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전두환 비호' 추모제... "최소한의 역사의식조차 없어"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5·18민주화운동 관련 전문가들은 전씨를 비호하는 추모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뒤에도 역사적 과오를 참회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그를 공개적으로 추모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경남 5·18기념재단 국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가해 사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죽은 전씨를 어떻게 역사적으로 위치시킬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추모하는 방식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한국 사회를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광주를 비롯해 전두환 정권 내내 가혹한 탄압을 받은 민주화운동 피해 당사자들에게도 잘못된 행동"이라고 했다.

5·18 현장을 취재한 나경택 전 전남매일신문 사진기자도 "사실상 발포 명령자로 인정되는 책임자의 추모제를 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전두한 손자(전우원)가 광주에 와서 대신 사죄하니 오월 어머니들이 안아주며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전씨의 잘못에 대해 아무 말도 없이 추모제를 연다는 건 아무리 보수단체라지만 최소한의 역사의식조차 없는 것"고 했다.

전씨는 2021년 11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사망 이후 2년째 서울 연희동 자택에 안치되어 있던 전씨의 유해는 휴전선과 가까운 경기 파주시 장산리의 한 사유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군사반란죄·내란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씨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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