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판결 취소한다"에 방청석 '헉'…이용수 할머니 두손 번쩍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가 인당 2억원씩을 배상해야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부장판사 구회근)는 23일 오후 2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선고기일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주문. 1심 판결을 취소한다”는 문장을 듣자마자 방청석에선 ‘헉’하며 놀라는 소리가 나왔다. 휠체어에 탄 채 선고기일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는 선고 직후 활짝 웃으며 법정을 나온 뒤,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도 내가 모시고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연신 감사를 표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이번 판결은 시작이고, 일본이 법에 따라서 빨리 공식적인 사죄를 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소멸시효 일본 항변 없어 판단 않아”
이번 판결은 ‘주권 국가를 다른 나라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가면제 원칙에 따라 소송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청구를 각하한 2021년 4월 1심 판결과 달리, 우리나라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현재까지 형성된 국제 관습법상, 일본국에 대한 우리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당시 한반도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동원한 피고 측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그에 합당한 위자료가 지급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원고 16명은 인당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재판부는 “이 사건 피해자별 위자료는 원고들이 청구한 2억원을 초과한다”며 청구액을 모두 인정했다.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위안부 등 사건에서 매번 ‘소멸시효’가 논점이 됐는데, 재판부는 “소멸시효 완성도 쟁점이 될 수 있지만 피고 측의 항변이 없어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정 영토 내에서 국민에 대하여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 이번 판결은, 2021년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12명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하라’고 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 김정곤)의 판결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의 주권적 활동이 아닌 사법의 판단이 될 만한 위법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근거로 일본의 행위가 “사법적, 상업적 행위 아닌 주권적 행위는 맞지만 유엔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적 흐름에서 어떤 경우는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당시 일본제국에 의하여 계획적, 조직적,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국제 강행규범 위반”이라며 피고 일본국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고 위자료 지급 판결을 했다.
2016년 12월 제기한 소송이 7년간 이어지는 동안 소 제기 당시 함께했던 곽예남, 김복동, 이상희 할머니 등은 세상을 떠났다. 그간 법원에 ‘일본국’을 피고로 삼아 제기된 소송 중 결론이 난 건 3건으로, 일본군에 강제동원됐던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1건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제기한 소송 2건이다. 이날 이용수 할머니 등 사건도 배상 판결을 받으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국을 상대로 낸 2건의 손해배상소송에서 모두 위자료를 인정받은 셈이 됐다.
‘무대응’ 일본… 실제 배상은 물음표
그러나 확정판결을 받아든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앞서 2021년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아, 원고들이 강제집행을 위한 재산명시신청(압류 가능한 국내 재산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을 법원에 냈지만 일본 법무성에서 서류 수령을 거부하면서 끝내 집행하지 못하고 지난해 9월 각하됐다. 일본 법무성은 ‘번역 미비’ 등을 이유로 한 차례 서류 수령을 거절했고, 일본어로 번역한 서류를 재차 송달했지만 이 역시 거부했다. 일본은 송달 거부 이유로 ‘서류를 송달받는 것이 자국의 주권 또는 안보를 침해할 것이라고 판단할 경우’를 명시한 헤이그송달협약 제13조 1항을 들었다. 이번 판결 역시, 확정되더라도 실제 원고들이 배상금을 받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 권태윤 변호사는 “지금까지는 하급심 판결이 엇갈려, 진상규명이나 일본의 의무이행을 촉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오늘 법원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가 더욱 확실히 확인됐고, 앞으로 의무이행 확보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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