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호 1년, 역대급 황금세대로 아시안컵 갈증 풀까

이준목 2023. 11. 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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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황금세대' 약진 속 클린스만 감독 리더십에 대한 엇갈린 평가

[이준목 기자]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023년 공식 A매치 일정을 모두 마감했다. 지난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의 성적을 낸 파울루 벤투 감독의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은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첫해 10차례의 A매치(친선전 8경기+월드컵 예선 2경기)를 치러 총 5승 3무 2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전반기와 후반기의 성적이 극과 극이었다. 클린스만호 출범 후 처음 치른 3월 A매치에서는 콜롬비아(2-2 무)와 우루과이(1-2 패), 6월에는 페루(0-1 패)와 엘살바도르(1-1 무)등 남미와 북중미팀들을 연이어 만났으나 모두 승리하지 못했다. 9월에는 첫 유럽원정 2연전 첫 경기였던 웨일스(0-0 무)전마저도 비기면서 역대 대표팀 사령탑중 최초로 부임 후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의 늪에 빠졌다.

여기에 클린스만 감독의 잦은 해외 체류와 번외활동, 재택근무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본업인 한국대표팀 감독직에 소홀한 클린스만의 '워크에식'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클린스만호는 유럽 원정 2차전이었던 9월 13일 사우디(1-0)전에서 6경기 만에 첫 승전보를 올리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10월에는 홈 2연전에서 튀니지(4-0 승)와 베트남(6-0 승)을 연이어 대파하며 상승세를 탔다. 11월에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 돌입하고 싱가포르(5-0 승)와 홈 1차전, 중국전(3-0)과의 원정을 2차전을 모두 잡아내며 조별리그 2연승, A매치 5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클린스만호는 10경기에서 총 23골을 뽑아냈다. 첫 5경기에는 4골에 그쳤고, 5연승 기간에만 무려 19골을 몰아쳤다. 최다득점자는 6골을 기록한 주장 손흥민이었다. 이강인이 4골로 그 뒤를 이었고 황의조가 3골, 황희찬과 조규성이 2골을 기록했다. 정우영-황인범-김민재-정승현 등도 골맛을 보며, 자책골을 제외하고 각 포지션에 걸쳐 9명의 선수가 고르게 골맛을 봤다.

수비 역시 첫 4경기에서만 6실점을 허용했으나 이후 치른 6경기에서는 연속으로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갈수록 탄탄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여기에는 무승 기간과 연승 기간에 각각 상대했던 팀들간 수준차가 컸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클린스만호는 첫 5경기중 4경기에서 피파랭킹 20-30위권 이내에 드는 남미의 강호들을 상대했다. 한국보다 피파랭킹이 크게 낮았던 엘살바도르(76위)와는 무승부에 그쳤다. 반면 5연승 기간동안 상대했던 팀들은 튀니지(32위)를 제외하면 모두 아시아팀이었고 피파랭킹 50위권에서 90위권 밖에 있는 약체팀들이었다.

물론 약체라 평가받는 팀이라 할지라도 여러 가지 변수를 극복하고 다득점-무실점 경기를 이어갔다는 것은 분명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진정한 목표가 아시안컵 우승이나 월드컵 11회 연속 본선진출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약팀과의 경기에서 대승했다는 것에 안주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한국축구 역대 대표팀중 실패작으로 꼽히는 슈틸리케호(2014-2017)가 8년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무실점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상대팀들의 수준이 높아진 최종예선들어 크게 고전한 전례가 좋은 교훈이다.

2023년 한국축구의 가장 빛나는 소득은 역시 '황금세대'의 약진이다. 현재 한국축구는 그야말로 역대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유럽파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다. EPL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는 손흥민을 비롯하여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이재성 등 유럽 빅리그에서 당당히 주전급으로 활약하는 선수들을 대거 배출해냈다. 한국축구의 황금기로 꼽히는 2002 세대(한일월드컵)나 2010 세대(남아공월드컵-런던올림픽)를 이미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A대표팀만이 아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4세 이하 대표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014-2018 대회에 이어 사상 최초로 3연패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김은중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대표팀도 2023 아르헨티나 U-20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성과를 일궈내며 한국축구의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엇갈린 평가

반면 한국축구의 사령탑을 맡은 클린스만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가 엇갈린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출신 감독인 클린스만은 선수 시절 독일대표팀에서 월드컵과 유로(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지도자로서는 독일을 이끌고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 3위, 미국 대표팀을 이끌고 2014년 월드컵에서 16강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2016년 미국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사실상 7년에 가까운 경력 단절과 전술 역량부족, 재택근무와 SNS를 통한 사퇴발표 같은 각종 기행 등이 도마에 오르며 한국대표팀 부임 당시부터 이미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냈다.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비판적 시선에 대해서 "대표팀 감독은 클럽과 달리 국제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지금의 업무 스타일을 고수할 것이며, 평가는 대회에서의 성적으로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까지 드러난 클린스만 감독이 축구철학과 리더십 스타일은 '공격축구'를 근간으로 검증된 유럽파 선수들 위주의 보수적인 팀운영, 선수들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경기를 풀어나가는 '자율축구' 등으로 요약된다.

벤투 감독 시절에 비하여 이강인의 전술적 비중과 활약상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 손흥민의 공격수에 가까운 기용과 득점력 향상은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만하다. 빌드업 축구를 근간으로 하는 뼈대와 주요 선수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강인, 이기제, 박용우, 정승현 등을 중용하며 신구조화를 극대화했다. 업무스타일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핵심 선수들과는 적극적인 소통과 스킨십을 통하여 우호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노력도 돋보인다.

반면 한편으로는 클린스만 감독의 고유한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자율축구라는 말은 뒤집어 보면 특별한 전술이나 창의성이 없이 그저 '선수들의 뛰어난 개인능력에 일임한다'는 뜻과 한끗 차이가 될 수도 있다. 전력차가 압도적인 약팀들에게는 통할 수 있지만, 상대팀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전력이 분석당할 최종예선 이후에도 클린스만의 축구가 통할수 있을지는 검증이 더 필요하다.

대표팀의 취약 포지션으로 꼽히는 좌우 풀백의 세대교체, 유럽파 선수들의 지나친 혹사 문제 등은 개선해야 할 요소로 꼽힌다. 또한 최근 연승으로 여론이 다소 잠잠해졌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자질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선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것은 언제든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최근 5연승이 클린스만 감독의 진정한 능력이었는지, 아니면 한국축구가 '감독 리스크'에 불구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5연승 당하게 만들었는지는 시간이 답해줄 것이다.

어차피 클린스만호의 진정한 중간평가 무대는 내년 열리는 2023 카타르 아시안컵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 목표에 줄곧 '아시안컵 우승'을 강조하며 이 대회를 평가받겠다는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미 한국 이상의 전력을 구축한 라이벌 일본, 중동의 강호 이란 등이 버틴 아시안컵은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은 무대가 될 것이다. 64년에 이르는 아시안컵 정상에 대한 갈증, 역대 최고의 멤버가 주는 자신감은 이번에야말로 '우승의 적기'라는 기대감을 더욱 높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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