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생활]사인 논란이 됐던 술자리 상해치사

2023. 11. 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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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취한 박씨는 일행에게 혀 꼬부라진 큰 소리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옆 탁자에서 술을 먹던 김씨가 "거 좀 조용히 합시다"라며 소리를 지르자 50대 중반의 박씨는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김씨에게 화가 나서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

넘어진 박씨는 큰 소리로 신음을 내며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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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취한 박씨는 일행에게 혀 꼬부라진 큰 소리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옆 탁자에서 술을 먹던 김씨가 "거 좀 조용히 합시다"라며 소리를 지르자 50대 중반의 박씨는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김씨에게 화가 나서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 김씨는 벌떡 일어나 발로 박씨의 배를 걷어찼다. 넘어진 박씨는 큰 소리로 신음을 내며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박씨의 신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서로 눈을 부라리던 사람들은 다급히 박씨의 용태를 살피고 119와 112에 신고하였다. 119 구급대원은 급히 출동하여 쓰러진 박씨의 혈압과 맥박 등의 활력징후를 검사하였다. 혈압이 다소 낮았다. 인근의 큰 병원으로 이송하였을 때는 박씨 심장의 움직임은 멈췄고 1시간이나 지속한 심폐소생술에도 회생하지 못하였다. 경찰은 상해치사죄를 고려하여 부검을 의뢰하였다.

부검의는 신중하게 박씨의 신체 내부를 살폈다. 왼쪽 갈비뼈 8번과 9번이 골절되었다. 갈비뼈가 골절되면서 비장의 일부가 찢겨 파열되었다. 그 때문인지 배 안에 혈액이 약 500㎖ 정도가 확인되었다. 부검의는 고작 0.5ℓ로 사망하기에는 너무 양이 적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박씨는 겉보기에도 노란 심각한 지방간 상태였다. 10일 후 경찰에게 전달된 부검감정서에는 사망원인으로 ‘비장파열로 인한 혈 복강 및/또는 고도의 지방간과 관련하여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고민에 휩싸였다. 박씨는 사망하였고 김씨가 배를 걷어찬 것은 확실한데 ‘및/또는’의 해석에 따라 사망의 종류가 병사인지 아니면 외인사 중 타살인지가 결정되는데 부검의의 소견이 매우 애매했기 때문이다.

사망원인이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 병적 상태 또는 손상’이다. 법의학적으로는 사망원인의 결정에 죽음에 대한 법적 책임의 유무, 또는 책임의 경중 등이 걸려있어 매우 중요하다. 사망의 종류는 법률적인 사망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법의학에서 사망의 종류를 정하는 일은 그 죽음에 대한 상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의학적으로 사망상황에 대한 종합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

박씨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사망의 종류가 결정될 수 있다. 만약 박씨의 사망원인이 부검의가 첫 번째로 언급한 비장파열에 의한 혈 복강이라면 사망의 종류는 당연히 외인사 중 타살이다. 그러나 ‘및/또는’ 뒤에 서술한 ‘고도의 지방간과 관련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본다면 사망의 종류는 병사가 된다.

결국 필자가 논리로 내세운 근거는 다음과 같다. 박씨의 배 손상으로 인한 비장 파열과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정함에 있어 △외인(외상성 비장 파열)이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학적 사실 △외인(외상) 작용 전에는 급격한 사망을 유발할 만한 상병 없었고 △외인(외상) 작용 후 급작스럽게 사망하여 시간적 경과가 타당하다는 점에서 결국 박씨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을 어찌 판단하든 망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최종 선행사인인 원사인(原死因·Underlying cause of death)은 비장파열이라고 판단하였다.

요컨대 비장을 파열케 한 복부 손상이 폭력의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사망의 종류는 타살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자문하였다. 이렇듯 사망의 종류에서 병사인지 외인사인지 결정은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다르게 한다.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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