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이득' 얼마나 컸길래…"대한민국 것들" 분노 쏟아낸 北
북한 국방성이 23일 성명을 내고 전날 한국이 일부 효력 정지한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합의에 따라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하겠다"고 위협했다. 격양된 표현 이면에 아픈 곳을 찔린 듯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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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이득 잃은 北
국방성은 이날 성명에서 "내외에 공언한 확약도 서슴없이 내던지는 《대한민국》 것들"이라며 "적들이 우리의 이번 정찰위성 발사를 놓고 난데없이 군사분야합의서의 조항 따위를 흔들어보는 망동을 부렸다"고 주장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1일 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이튿날 9·19 합의의 비행금지구역 관련 조항인 1조 3항을 효력 정지했다.
효력 정지 하루 만에 쏟아진 북한의 '무더기 비난'은 역설적으로 그간 북한이 9·19 합의를 통해 누려온 이득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우선 9·19 합의 이후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감시·정찰 활동과 연대급 이상 기동 훈련이 금지되자 북한은 '전방 가드'를 내려놓고 전략 무기 개발에 '올인' 할 수 있게 됐다. "9·19 합의 후 김정은이 후방에서 전술핵과 핵 투발 수단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이 조성됐다"(고재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연구센터장, 지난 14일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의 전략적 효과 검토' 보고서)는 분석까지 나온 이유다.
실제 대북 제재가 촘촘해진 2016~2017년 무렵부터 식량 부족 등으로 가혹한 환경에서 복부하던 최전방 부대에서 탈북자들이 속출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판문점 인근에 군인 탈북을 막기 위한 대인 지뢰를 매설하기도 했다. 한국의 정찰 활동에 맞서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했던 북한 전방 부대의 피로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이다.
향후 9·19 합의의 핵심 조항이 단계적으로 효력 정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북한은 다시 전방에서 강화된 감시·정찰 활동과 실기동·실사격 훈련을 감당해야 하는 '대가'를 치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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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탓에 사문화” 궤변
국방성은 이날 또 "《대한민국》것들의 고의적이고 도발적인 책동으로 하여 9·19북남군사분야합의서는 이미 사문화되여 빈껍데기로 된지 오래"라며 "북남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충돌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전적으로 《대한민국》 것들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는 전형적인 북한식 '책임 전가' 전략이다. 한국이 지난 5년간 9·19 합의 '족쇄[에 메여 있는 동안 북한은 약 3600회 합의를 위반했다는 게 군의 판단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방성 성명에 대해 "적반하장식 억지 주장"이라며 "9·19 합의의 일부 효력 정지는 북한이 합의를 상시적으로 위반하고 각종 도발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 조치"라고 반박했다.
국방성 또한 한국의 합의 위반 사실이 사실상 없다는 점을 의식한 듯 한국이 9·19 합의 자체가 아니라 "합의서 '정신'에 도전했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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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에 신무기" 위협
국방성은 또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장비들을 전진배치할 것"이라며 "사소한 우발적 요인에 의해서도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해 6월에도 동해안이 그려진 지도를 걸어놓고 전방부대의 작전 능력 강화를 지시했다. 같은 달 당 중앙군사위 확대 회의에서도 "전선 부대의 작전임무에 중요 군사행동계획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혀 전술핵 무기를 최전방에 배치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제로 전진 배치된 재래식 무기와 실전 배치를 시사한 전술핵 무기를 동원해 '투 트랙'의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봤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군단급 정찰용 무인기를 전진 배치하거나 구태여 전방까지 갈 필요 없는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방사포(KN-25) 등까지 전방에 두고, 남측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구체적인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았던 전방의 전술핵 운용부대를 본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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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전” 위협 남남분열 획책
북한이 이날 "전면전"을 언급한 건 '남남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갈라치기 목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9·19 합의 효력 정지는 군사정찰위성 발사 등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도발을 이어가는 북한의 행태 때문이다. 그런데도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호도하며 국내 여론 분열을 노린다는 지적이다. 조만간 현 정부를 수세에 몰기 위한 '맞춤형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남북 간 긴장 고조의 책임을 윤석열 정부에 돌리고 국내 여론을 분열시켜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취한 9.19 합의 효력 정지를 번복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북한이 조만간 도발 수위를 높이더라도 단호한 원칙을 기반으로 버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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