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 청혼' 슬픈 결말…우크라 22·19세 부부, 러 폭격에 사망
전쟁 속 지하 방공호에서 프러포즈 후 결혼한 우크라이나의 젊은 커플이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2일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다닐로 코발렌코(22)와 다이애나 하이두코바(19) 부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들은 다른 젊은 커플들처럼 데이팅 앱(어플리케이션)에서 만났다. 먼저 메시지를 보낸 건 다이애나였다. 금발에 각진 턱을 가진 다닐로는 다이애나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닮았다. 둘은 만나서 산책하고 저녁을 먹으며 전쟁통 속에서 사랑을 키워 갔다.
두 남녀는 순식간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다이애나의 친구 리자 야키모바(20)는 “다닐로는 다이애나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이애나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닐로는 그녀를 위해 요리했다”고 말했다.
프러포즈는 지하 방공호에서 이뤄졌다. 어느 날 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우던 중 다닐로는 다이애나에게 청혼했다. 그들은 첫 데이트 후 채 4개월도 되지 않아 혼인 신고를 했다.
둘은 서로 성격도 꿈도 달랐다. 뮤지션을 꿈꾼 다닐로는 약간 괴짜에다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러시아어나 우크라이나어로 작곡을 하고 공연했다. 느리게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삶을 좋아했다.
반면 매사에 적극적인 다이애나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꿨다.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에 나눠줬다. 10대 시절에는 사촌과 함께 K팝 댄스 경연에 나가는 등 활동적이고 쾌활했다.
주변에서는 두 커플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너무 빨리 결혼한 게 아니냐며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부부는 개의치 않았다. 전쟁이 언제든 둘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부의 이웃은 “둘은 언제라도 미사일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폭격이 우리 집 근처를 강타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0월 16일 러시아는 이들의 보금자리인 자포리자 지역을 다시 폭격했다. 그들은 대피를 결심했다. 다이애나는 복도로 나오던 중 몇몇 소지품을 챙기기 위해 되돌아갔다. 다닐로가 그 뒤를 따랐다.
폭격이 아파트 3~5층을 덮쳤다. 다닐로와 다이애나의 방은 문짝만 남았다. 다닐로의 아버지는 폭발로 인해 밀려난 아들에게 다가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다이애나의 시신은 훼손된 채 다음 날 잔해에서 발견됐다.
결혼 1주년을 앞두고 둘의 장례식이 열렸다. 이들이 숨진 10월 16일은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정확히 한 달 앞둔 날이었다. 친구들은 화장된 두 사람의 골분을 섞어 의미 있는 장소에 뿌릴 계획이다.
다이애나의 사촌 아나스타샤는 아직도 둘을 그리워하며 다이애나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다. 아나스타샤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커플이 될 수도 있었을 그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유엔인권감시단은 지난 21일 러시아 침공 후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망자가 1만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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