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죽은 뒤 인도 빈민가로 떠난 의사가 깨달은 것
[김성호 기자]
영국 출신의 명감독을 이야기할 때 빠지는 법이 없는 이름이 있다. 롤랑 조페다. 영화계 최고의 영예 중 하나로 꼽히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몇 안 되는 감독이며, 수상작인 <미션>을 포함한 소위 휴먼대작 3부작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남미와 아시아 등 아직 개발되지 않은 세계를 배경으로, 이곳을 찾은 선진국 출신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그 영화세계의 골자다. 외지로부터 온 이도, 외지에서 온 이를 맞이한 사람들도 서로를 통해 변화를 겪는다. 그 변화는 성장이고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곧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떠짐으로 연결된다.
▲ 시티 오브 조이 포스터 |
ⓒ 삼호필림 |
제3세계의 삶 조명한 20세기 휴먼대작
<시티 오브 조이>는 조페의 휴먼대작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킬링 필드>와 <미션>으로 1980년대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쥔 그가 상당한 시차를 두고 제작한 역작이다. 인도의 캘커타 빈민촌을 배경으로 수해와 대중시위 등 규모 있는 연출까지 벌인 대작으로 평가된다. 백인우월적 시선과 인간의 내면을 고양시키는 작품이란 논쟁적 평가가 어떻게 이 한 작품으로 나왔을까. 근래 영화계가 이와 같은 작품을 더는 내놓지 못하고 있으므로, 또 인터넷과 교통수단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지 못하는 실정이므로, 이 영화를 다시금 돌아보는 일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미국 어느 수술실로부터 시작된다. 그곳에서 수술을 받던 환자가 사망하고 집도의인 맥스(패트릭 스웨이지 분)는 깊은 충격을 받는다. 의사로서 무력하기만 한 상황과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그는 급기야 사표를 내고 먼 땅 인도로 떠나기에 이른다.
▲ 시티 오브 조이 스틸컷 |
ⓒ 삼호필림 |
무작정 떠난 인도여행, 현실은 매서웠다
일단 목표는 그러하지만 현실은 달리 돌아간다. 저 빼고는 온통 바삐 돌아가는 듯한 이 나라에서 맥스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여행이란 것이 그렇지 않던가. 타인의 터전 가운데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채로 떨어지는 일 말이다. 대개는 관광이란 이름으로 명소들을 돌아보게 마련이지만, 여행지의 실상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들에겐 늘 불만족스러울 밖에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맥스는 한순간 캘커타 사람들의 삶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호텔 도어맨이 얘기도 없이 방에 보낸 여자를 따라 함께 술집으로 간 맥스다. 즐겁게 술을 마시며 잔뜩 취한 그들을 밤중에 불량배들이 습격한다. 한바탕 얻어터지고 지갑이며 귀중품을 모조리 빼앗긴 맥스다. 그런 맥스를 수습하는 건 현지에 사는 사내 하사리(옴 푸리 분)다.
▲ 시티 오브 조이 스틸컷 |
ⓒ 삼호필림 |
고통 가득한 빈민가가 기쁨의 도시라고?
영화는 맥스가 이곳 진료소를 지키며 빈민과 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이야기를 잡아낸다. 처음엔 제가 지닌 상처 때문에 의술을 펼치는 걸 거부하던 그다. 그러나 어느 날 찾아온 나병 환자의 급박한 출산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진료소엔 의사의 도움이 절실하고 간단한 약조차 구하기 어려운 환자들은 상황이 열악하기만 하다. 맥스의 도움으로 진료소는 그나마 제 구실을 하게 되지만 그들에겐 또 새로운 어려움이 닥친다.
영화는 빈민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는 지역 유지 가타쿠(시아마난드 자랑 분)와 그 아들 아쇼카(아트 말릭 분)를 등장시킨다. 특히 아쇼카는 비열하기 짝이 없어 툭하면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돈이며 물건을 뺏기 일쑤다. 의사가 새로 와서 진료소에 사람이 몰린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돈을 올려받겠다 요구하고, 상황은 갈수록 나빠져 간다.
이야기는 맥스와 조앤이 빈민들을 응집해 가타쿠와 아쇼카의 폭압에 저항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 가운데서 맥스를 구했던 하사리가 가족을 건사하는 이야기, 인력거꾼으로 가타쿠 아래서 일자리를 얻은 그가 맥스와 갈등을 빚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이 서로의 자리로부터 몇 발자국 벗어나 마침내 상대를 이해하는 이야기로 번져간다. 그렇게 영화는 가난과 폭력을 배경으로 우정과 이해를 담아내기에 이른다.
▲ 시티 오브 조이 스틸컷 |
ⓒ 삼호필림 |
선 자리를 벗어나면 새 시선이 열린다
어디 맥스뿐일까. 인도를 비롯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한국과 국민소득이며 환차가 나는 나라를 찾는 많은 이들이 그와 얼마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발을 놀려 그와 같은 세계로 들어서는 이들은 경우가 좀 낫다. 제가 사는 세상에서 두 발을 움직이지 않고서 멀찍이 떨어진 이의 삶을 평가하는 오만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저지르는가. 그와 같은 세상에선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없으리라고, 마치 땅바닥의 개미나 어항의 금붕어를 보듯 타인의 삶을 재단하곤 하는 것이다.
<시티 오브 조이>가 진정으로 이야기하는 바가 곧 이것이다.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 무료진료소에서 일하면서도 미국의 의사인 자신의 위치로부터 한 걸음도 옮겨오지 않았던 맥스가 마침내 제가 선 자리를 옮겨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잡아내는 것이다. 그와 함께 빈민가에서 살아가던 하사리 역시 맥스를 만난 뒤 조금씩 제 세계를 확장하게 된다. 맥스는 맥스 대로, 하사리는 하사리 대로 서로에게 안락하던 세계로부터 나아가서 다른 시선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럼에 영화는 곧 우정이며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 자리에서 천 리를 내다보는 이도 없으리라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대개 인간은 제가 선 자리로부터 세상을 이해하려 든다. 현대 물리학조차 고전역학의 세계를 벗어나면 원칙이라 불렸던 것이 먹혀들지 않음을 증명한다. 사람의 삶 또한 마찬가지여서, 다른 세계에 돌입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 폭넓게 살아가는 이라면 적극적으로 저를 변화 앞에 내던지며, 그로부터 변화를 수용해야 할 일이다. 그로부터 전과 다른 시선을 얻고 이전과는 달라진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시티 오브 조이>는 그 마지막에서 인도의 오랜 격언을 등장시킨다. 'all that is not given is lost', 즉 주지 않은 모든 건 잃어버리게 된다는 얘기다. 제 터전을 옮기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다른 위치에서 달리 바라보는 법을, 곧 타인의 삶을 이해한 맥스의 귀착지가 바로 여기다. 남에게 베풀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삶이야말로 귀한 무엇을 잃지 않는 길이라는 깨달음, 맥스가 자신 있게 이제는 삶을 알겠노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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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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