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을 살아남은 인간관계론

김성호 2023. 11. 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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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204] 데일 카네기 지음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김성호 기자]

대학생 시절 첫 과외를 하던 때가 기억난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던 학생이 서투른 교사의 눈엔 영 들지 않았다. 성실하기라도 했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그는 과제를 제대로 해오는 법이 없었다. 과제를 해오지 않으니 수업의 시작은 늘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숙제는 약속이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할 것인데, 너는 약속도 지키지 않고 제 실력도 돌보지 않는 나쁘고 무능한 이가 아니냐고, 돌이켜 생각하면 매번 그와 같은 질책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나의 의욕과는 달리 아이의 성적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노력하면 할수록 그의 열의는 줄어드는 듯도 보였다. 얼마간 반항하는 순간들도 있었고, 그런 모습이 선생의 오기를 자극했다. 더 열정적인 수업이 거듭됐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와 함께한 근 1년의 시간 동안 그는 얼마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나는 그와 우연히 만났다. 길거리에서 만난 그는 나를 반갑게 부르며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말하였다. 목표한 학교에 가지는 못했으나 이런저런 활동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그 분야에선 제가 꽤나 재능이 있는 모양이라고. 나는 활짝 핀 그 표정을 바라보며 내가 놓친 것을 깨달았다. 그는 기꺼이 내게 먼저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적극성과 열의를 이끌어내는 데 철저히 실패했던 것이다.

90년을 건너 여전 읽히는 인간관계 명저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데일 카네기가 1936년 펴낸 책이다. 소통과 리더십에 대한 대중강연으로 정평이 나 있던 카네기가 20여 년의 노하우를 담아 쓴 역작이다. 전 세계 6000만 부가 넘게 팔린 명저로, 한국에서도 아직까지 스테디셀러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책 표지
ⓒ 국일미디어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나왔다 사라지는 세상이다. 인간관계며 리더십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이 책 또한 충분히 그러할 수 있었을 텐데, 1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살아남은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 평론가보다 냉정한 칼날을 들이대는 시간의 심판을 견뎌냈다면 틀림없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카네기는 책의 시작에서부터 이 책을 쓴 이유를 분명히 한다. 독자에겐 '습관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 재능이 있으며, 책은 동면 상태에 있는 이 재능을 일깨워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재능이란 바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따로 생각하거나 단련하지 않는 사람 대하기에도 재능이며 기술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첫 번째 지식이다.

'How to Win Friends & Influence People'라는 원제에서 읽히듯 책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한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영향을 미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행동해선 쉽게 얻을 수 없는 인간관계의 이익을, 이 책을 믿고 따라오면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연마해야 한다는 지침이 가장 먼저 제시된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독자의 인간관계를 완전히 바꿔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는 말인가, 절반의 궁금증과 절반의 미심쩍음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모든 걸 공부하면서 왜 관계는 공부하지 않는가

책은 크게 네 장으로 이뤄져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 통용되는 원칙 3가지를 말한 뒤에, 인간관계를 잘 맺는 6가지 방법,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리더가 되는 9가지 방법으로 글을 이어간다. 요컨대 책을 읽는 독자와 그가 마주하는 상대방의 상황이며 관계에 맞추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분해 나열하고 있다고 보아야겠다.

인간관계란 서로 다른 사람이 교류하는 것이므로, 성격과 입장 등 상대적인 상황이 주요할 밖에 없음을 알게 한다. 그럼에도 제시되는 여러 방법들은 관계 역시 공부와 수련을 통하여 나아질 수 있다는 저자의 확고한 생각을 그대로 내비친다.

우선 가장 앞에 제시된 인간관계의 3가지 원칙이 독자를 맞이한다. 원칙이란 말 그대로 근본이 되는 규칙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통용되는 핵심이 된다. 카네기가 제시한 원칙은 모두 셋으로, 비난하지 말 것, 진지하게 칭찬할 것,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일으킬 것을 주장한다.

그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위인 에이브러함 링컨과 마크 트웨인의 사례를 들어 모든 인간이 쉽게 취하는 비판적 태도로부터 벗어날 때 인간관계로부터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란 누구나 남의 결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고 책은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호감보다는 방어적 자세를 이끌어내게 마련이다. 사람은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동물이고 편견에 가득 차 자존심과 허영심에 의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인간관에 입각하여 상대에게 즉각적인 비판 대신 이해에 바탕을 둔 칭찬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확언한다.

3원칙 중 마지막인 타인의 욕구를 일으키라는 대목도 흥미롭다. 그는 낚시를 예로 들며 물고기에게 지렁이를 미끼로 쓰지, 인간이 좋아하는 것을 걸지 않느냐고 말한다. 인간관계 또한 이와 같아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약간의 노력을 들여 적용한다면 관계를 훨씬 효과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난하지 말고 칭찬하며 상대를 이해하라는 것이 그 주장의 요체인데, 앞서 적은 과외 사례에서처럼 이러한 원칙을 알지 못하면 내 감정과 내 이기심에 휩싸여 관계로부터 부정적인 효과만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정도야말로 지름길, 기본에 충실하기

다음 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방법으로 카네기가 제시한 6가지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잘 기억할 것. 또 경청하며,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할 것이다.

이 여섯 가지 방법을 가만히 읽다보면 어느 하나 그리 새로운 비법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굳이 이 책이 아니라도 삶 가운데 수도 없이 들었을 노하우다. 그러나 책은 이러한 방법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알기 쉽게 전달하고, 독자가 이를 명심하여 일상에서 거듭 연습하기를 권한다.

연습하지 않고는 몸에 익지 않고 한두 차례 경험으로 그치고 말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를 습관화해 삶속에서 적용한다면 인간관계 전체가 바뀔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여 말한다.

흥미로운 건 책을 읽는 나조차도 책이 언급한 방법들이 모두 유용하단 걸 알면서 그와는 반대로 행동할 때가 잦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근거는 깊이 다가가면 결국은 기분이고, 취하기 쉽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지루한 티를 내서, 혹은 다른 이에게 관심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해 관계가 틀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 치고 다른 이의 순수한 관심이며 호의를 싫어하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숙함이 망치는 관계, 이 책으로 예방하자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이처럼 누구나 알 법한 지식을 정리한 책이다. 관계의 형태에 맞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모든 사항이 누구나 곰곰이 생각하면 바람직하단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이중 상당수는 삶 속에서 실천하기 쉽지 않고, 자주 무시되고는 한다.

상대방보다는 나의 기분과 편의에 맞추고, 때로는 상대를 무시하거나 심하게 비판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고도 나의 그런 행동엔 다 좋은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제대로 된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상대와의 멀어짐, 관계의 틀어짐, 함께 도모할 수 있었을 일의 좌절 등이다.

혹자는 이 책이 내면의 진솔한 마음을 가리고 위선적인 태도를 내보일 것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른 이를 물고기 같은 동물에 비하며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내주라는 서술이 수차례 반복되는 것도 그 같은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을 테다.

진심이 부정적이라면 그대로 내보이는 것보다 만들어진 호의를 비추는 것이 낫다는 게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더 나은 관계가 싹틀 여지가 있다면 왜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인간이란 카네기나 이 책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존재일 수 있겠다. 그리하여 이 책이 적고 있는 방법론으로는 결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책의 효용은 언급된 모든 방법을 절대화해 맹신하는 데 있지 않다. 책이 제시한 여러 방법론을 접하고 익히며 그로부터 내가 그간 맺어온 인간관계의 실수들을 돌아보고 의식적으로 더 나은 관계맺음을 고민하게 하는 데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나의 열의를 잘못 사용하여 나아질 수 있었던 학생을 나아지게 하지 못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제 열정을 잘못된 방식으로 배출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은 이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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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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