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도발 맞춤형 9·19 효력정지…160억 '해상사격 족쇄' 풀듯
북한의 불법적인 군사정찰위성 기습 발사에 정부가 22일 9·19 남북군사합의(이하 9·19 합의) 일부 조항을 효력정지한 가운데 북한이 또 도발할 경우 추가적으로 남북 간 합의의 일부를 효력정지하기로 했다. 해당 조치는 ‘비례성’을 중심에 두고 있으며, 향후 북한의 도발 행태에 따라 해상 사격 훈련 등을 금지한 9·19 합의 조항이 추가적인 효력정지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이날 9·19 합의의 비행금지 조항 효력 정지로 '정찰 족쇄'를 푼 뒤 군은 군단급 무인 정찰기(UAV) 송골매와 유인 정찰기 금강·백두를 띄우는 등 곧바로 행동에 나서 정찰 능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내부적으로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맞춤형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북한의 정찰위성 도발에 맞서 9·19 합의 상 정찰 능력 제한을 푸는 방향으로 효력정지한 것처럼 도발의 형식과 수위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마친 것이다.
특히 정부는 맞춤형 효력 정지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북한의 무력 도발을 억제하는 '재발방지책'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우리 군의 감시·정찰·대응 태세에 족쇄로 작용했던 군사합의 효력이 사라질 경우 북한 입장에선 위성 발사 등 무력 도발이 사전에 노출될 위험성이 커지고 도발의 효과 역시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도 이날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아직 유효한 '9.19 합의' 여타 조항에 대한 추가조치는 북한의 향후 행동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추가 효력정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북한의 태도를 보면서 정부가 추가로 조치할 부분은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점은 '방어적·비례적 조치'라는 데 찍혀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효력정지를 의결한 임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우리 국가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자, 최소한의 방어 조치이며, 우리 법에 따른 지극히 정당한 조치"라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의 조치는 선제적인 게 아니라 북한의 도발로 인해 불가피한 반응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북한은 올해에만 수십차례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고,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계기마다 강조하고 있는 '전쟁 준비', '선제핵공격' 등과 직결된 군사적 수단이다.
이와 함께 '비례성에 입각한 자위권 행사'는 윤석열 정부가 줄곧 유지해온 원칙이다. 지난해 6월 북한이 단거리탄도미사일 8발을 쏘자 이튿날 한·미가 연합해 육군 전술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 8발을 동해상으로 사격했다.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한 직후에는 육군도 무인기를 북쪽으로 올려보내 정찰 사진을 찍었다.
9·19 합의 대부분이 독소조항으로 지적되는 가운데 북한의 추가 도발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효력정지 대상 조항은 지상·해상에서 포사격을 중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1조 2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군은 실제 작전 책임지역에서 실전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9·19 합의 이후 우리 군은 서해해상완충구역에서의 '포사격 중지' 조항을 준수하기 위해 주요 화기들을 서북도서에서 내륙지역의 사격장까지 최대 500여㎞ 이동시켜 사격훈련을 해 왔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이처럼 인원과 장비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약 160억원에 이르는 추가 훈련비용이 발생했다고 한다.
군 자원의 타지역 이동은 전력 공백 우려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체 인원이 참가하는 훈련도 불가능했고, 이는 곧 안보상 구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계속 나왔다.
군비통제차장을 지낸 문상균 전 국방부 대변인은 "9·19 합의는 서북 5도 주변 해역에 배치된 부대의 실질적인 훈련을 제한하는 등 작전 측면에서 우리 군의 대비태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해당 부대의 경우 내륙으로 이동해 훈련을 진행하고 있어 효율성과 강도, 횟수 측면에서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9·19 합의가 제한한 연대급 야외기동훈련을 재개하거나 군사분계선(MDL) 상에 있는 감시초소(GP)를 재가동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2018년 4월 남북 간 판문점 선언에서 중단하도록 한 대북 확성기 방송도 해당 조항 효력정지 뒤 재개할 수 있다.
다만 대응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긴장을 지나치게 고조시키거나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여지가 있는지도 정부가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한편 이날 9·19 합의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조항(1조 3항)에 대한 효력정지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현지에서 긴급 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해 효력정지를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오전 8시 긴급 국무회의를 열어 의결까지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이에 따라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골자로 한 9·19 합의 1조 3항은 오후 3시부로 효력이 정지됐다.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지 16시간여만이다.
정부는 북한이 판문점 채널과 동·서해 군통신선 등 3개의 연락채널을 통한 통화에 응답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해 법률상 효력 정지를 위한 필수 절차인 북 측에 대한 통보는 언론 발표로 갈음했다. 효력정지 기간은 '안보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로 정했다. 역시 북한의 추후 태도에 달렸다는 취지로 읽힌다.
9·19 합의 1조 3항은 서부지역에서는 MDL 이남 10㎞까지, 동부지역에선 MDL 이남 15㎞까지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이 때문에 MDL 일대에서 북한군의 활동을 감시하던 군단급 무인정찰기(UAV) 비행이 제약을 받았다.
군 안팎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 군의 정보·감시·정찰(ISR)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 이유다. 전선 지역에서 북한군에 대한 감시 및 실시간 표적 정보력이 떨어지고, 유사시 북한군의 기습을 허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럴 경우 아군의 대량피해는 불가피하며, 즉각 대응 또한 어려워진다.
효력 정지가 이뤄진 만큼 군은 즉시 UAV 운행 재개 등을 통해 전선지역에서의 대북 감시·정찰 능력 회복에 나설 전망이다. 군은 이날 오전 3시 국방부 신원식 장관 주재로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실시해 군의 대비태세와 효력정지에 따른 군사적 이행계획을 점검했다.
이에 따라 최전방 MDL 인근에서 운영되는 군단급(송골매 등),사단급 무인기가 대북 정찰에 투입될 수 있게 됐다. 특히 병력 배치나 부대 이동 등 전방지역에서 북한군의 작전 상황은 물론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꼽히는 갱도나 산의 후사면에 숨은 장사정포 등에 대한 실시간으로 감시·정찰도 가능해졌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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