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주주 이길 이사회는 없다, 미국에선
미국 실리콘밸리의 드라마 한 편에 전 세계가 닷새간 눈을 떼지 못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이사회가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을 기습 해고했지만, 결론은 올트먼의 화려한 복귀다. 석연치 않게 잘린 올트먼을 마이크로소프트(MS)로 즉각 영입한 사티아 나델라 MS CEO의 기민함, ‘샘이 복귀 안 하면 우리도 MS로 가겠다’며 이사회 퇴진을 관철한 직원들까지. 인류의 미래를 판돈으로 건 이 게임의 최대 변수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십이란 걸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오픈AI의 새 이사회는 지배구조를 손 볼 전망이다. MS 등 주주들이 변화를 요구한 결과다. 이 조직의 상업성은 더 강해질 것이다. 이번 쿠데타가 ‘안전한 AI’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해도, 주주들과 소통 안 하는 이사회가 기업가치 860억 달러(약 111조5000억원)짜리 영리기업을 좌우하는 구조는 ‘기업의 나라’ 미국에선 애초에 지속하기 어려웠다. 소수 이사의 사명감을 마냥 믿어줄 주주는 없다. 투자를 통해 책임을 공유하는 주주들의 지지 없이는 기업이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 토대가 약한 한국의 우리에게 이번 사태는 묘하게 익숙한 구석이 있다. 조직의 사명을 이유로 창업자를 쫓아내는 이사회는 낯설지만, 주주의 이익에 연연치 않는 이사회는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법(382조)은 기업 이사들에게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회사의 이익’에 충실하라 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대주주의 이익이 회사의 이익으로 포장돼도, 경영진의 자질 부족으로 주주들이 손해를 봐도 이사회는 조용하다. 물적 분할 방식으로 자회사를 쪼개기 상장해 소액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킨 사례가 SK, LG, 카카오 등 대기업들에서 수두룩하게 나왔지만, 어느 이사회가 여기에 제동을 걸었단 소식은 못 들었다.
일부 기업은 사법 리스크가 커지고 난 뒤에야 준법감시위원회 같은 별동대를 꾸려 신뢰 회복을 시도하지만 선언적 효과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은행들은 20년 이상 준법감시인을 뒀지만 수백억, 수천억 단위의 내부 횡령을 막지 못했다. 이러니 대통령이 특정 기업에 “부도덕하다”고 질타해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들은 무슨 혁신을 했냐”고 조롱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주들이 정부의 호통에만 기댈 수도 없다. 논란의 ‘공매도 금지’ 카드를 반복하는 것보다, 이참에 기업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게 어떨까. 그게 법을 잘 아는 대통령의 해법 아닐지.
박수련 IT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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