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음식과 약] 채소·단백질부터 먹어야 하는 이유

2023. 11. 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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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음식은 먹는 순서가 중요하다. 인간의 위장에는 음식이 차곡차곡 쌓이고 들어온 순서대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최근에 샐러드를 먼저 먹는 식사법이 좋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로 식사를 시작하면 소화, 흡수가 느려지므로 혈당이 갑자기 치솟는 혈당 스파이크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채소,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하는 거꾸로 식사법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유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00만 명이 넘는 프랑스의 생화학자 제시 인차우스페가 직관적이고 따라 하기 쉬운 게시물로 인기를 끌면서 식사 순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한 상 가득한 한정식. 먹는 순서도 있을까. [중앙포토]

위에서 장으로 음식이 내려가면 인체는 내려온 음식물의 영양을 분석한다. 소화하기 쉬운 음식인지 어려운 음식인지에 따라 나머지 내용물을 천천히 내려보낼 것인지 아니면 빠르게 내려보낼 것인지 결정한다. 채소뿐만 아니라 단백질·지방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도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일본에서 소규모로 진행된 2016년 연구에 따르면 백미밥을 먼저 먹고 생선이나 고기를 먹은 경우보다 생선이나 고기를 먼저 먹고 백미밥을 마지막에 먹은 경우 혈당 변화 폭이 작고 포만감을 주는 호르몬 수치가 더 높게 나타났다.

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채소와 탄수화물 음식의 순서를 바꿀 때 혈당 조절이 더 잘 되는지 알아봤다. 101명의 참가자 중 69명에게는 채소를 먼저 먹고 탄수화물 음식을 먹도록 하고, 31명에게는 탄수화물 음식을 먼저 먹고 채소를 먹도록 했다. 대체로 이런 연구에 참여하기만 해도 혈당 조절이 더 잘 된다. 전보다 식단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2년 동안의 연구 결과도 그랬다. 양쪽 모두 전보다 혈당 조절이 향상됐다.

하지만 채소를 먼저 먹고 탄수화물 음식을 먹은 쪽이 변화의 폭이 더 컸다. 채소를 식사 순서 맨 앞에 두면 채소 섭취량이 늘어난다는 장점도 있다. 2012년 미국 연구 결과, 샐러드를 먼저 먹고 나머지 음식을 먹을 경우 샐러드와 다른 음식을 함께 먹는 경우보다 채소 섭취량이 23% 늘어났다.

최근 다이어트 신약으로 화제가 된 세마글루티드라는 약이 있다. 장에서 분비되는 GLP-1 호르몬을 흉내 낸 약물이다. 식사 순서는 GLP-1 분비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육류, 생선을 탄수화물 음식보다 먼저 먹으면 이들 호르몬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 채소의 섬유질에는 이런 효과가 없다. 채소만 먼저 먹는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고 채소, 육류, 생선처럼 소화가 더딘 음식을 먼저 먹고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곡물 음식을 나중에 먹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유익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누구나 쉽게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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