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야구장을 화폭에…그의 홈은 사직구장
“한국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꼭 다시 한국에 돌아가 야구장 풍경을 그려보고 싶네요. 그동안 저와 한국, 그리고 야구가 많이 달라졌을 테니 말입니다.”
영국 출신 화가 앤디 브라운(43)은 ‘야구 그리는 남자’로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지난 10년간 한국은 물론 미국과 대만 등 여러 나라의 그라운드 안팎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완성했다. 지난 2018년에는 대만 프로야구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냈고, 2019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전 구장을 누비며 그림을 그렸다. 지난해에는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리그를 담은 그림책도 발간했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간엔 ‘팀 아티스트’라는 색다른 직책을 맡아 영국 야구대표팀 스태프로도 참여했다.
흥미로운 건 야구장을 그리는 남다른 여정의 출발점이 한국이라는 것이다. 최근 코리아중앙데일리와 만난 브라운은 “2000년대 후반 기간제 미술 교사로 일하기 위해 부산으로 건너간 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브라운은 축구와 크리켓, 럭비, 테니스의 나라인 영국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야구라는 종목 자체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야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09년 봄, 장소는 부산 사직구장이었다. 브라운은 “카림 가르시아가 자이언츠의 우익수로 뛰고 있었다. 상대 팀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KIA 타이거즈나 히어로즈였던 것 같다”며 “한국의 야구장 문화를 접한 뒤 커다란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영국 남자 브라운에게 사직야구장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경험이 그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았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지만, 때로는 가슴 속 생각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 성향도 있었다”며 “하지만 야구장에선 달랐다. 모두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냈다. 그 장면을 보며 야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야구장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3년 뒤 서울로 이사한 뒤엔 야구장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키움 히어로즈,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의 전신) 등 여러 구단의 홈구장을 방문하면서 ‘야구 그림’의 무대를 서울과 수도권 전체로 확장했다.
브라운은 좋아하는 야구장으로 사직과 함께 목동을 꼽는다. 히어로즈가 2015년 고척 스카이돔으로 이전하기 전 야구 경기를 치르던 풍경에 향수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경기 시작 두 시간 전 게이트가 열리면 야구장 관중석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며 “판이한 문화를 야구장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내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또 “처음 한국에 건너왔을 때만 해도 그림은 취미이자 관심사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야구장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롯데의 외국인 선수) 앤디 번즈와 브룩스 랠리가 구단 관계자를 통해 ‘작품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이후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야구 화가로 성장한 브라운의 꿈은 출발점이었던 한국에 돌아와 KBO 리그의 풍경과 야구장 전경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리그의 풍경을 담은 103장의 그림을 모아 화집을 발간했다. 한국에서도 야구장 풍경을 담은 똑같은 화집을 내놓고 싶다는 것이다.
브라운은 “내 그림은 야구와 한국 문화에 흥미를 느낀 한 영국인이 한국 야구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결과물”이라면서 “야구를 보면서 한국 문화를 배웠고, 그러면서 나의 예술도 함께 성장했다”고 밝혔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jim.bull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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