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때 경남대 연설로 경찰 고문' 정인권 회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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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부마민주항쟁의 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정인권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원이 별세했다.
고인은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1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정신 계승과 국가기념일 지정에 이바지한 공로로 '창원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창원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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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 기자]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부마민주항쟁의 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정인권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원이 별세했다. 향년 63세.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 따르면 지병을 앓아 오던 정 회원은 22일 오전 숨을 거두었다.
경남대 국제경제학과 2학년이었던 고인은 부마항쟁이 일어났던 1979년 10월 18일, 당시 창원마산에서 항쟁의 불씨를 댕긴 '죄'로 온갖 고문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에서 항쟁이 일어났고, 경남대를 비롯한 마산에서는 18일부터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경남대는 휴교령이 내려졌는데, 이날 학생 수백명이 교정에 모여들었다.
이때 정인권 학생이 "3.15의거 영령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자"며 연설했던 것이다. 이후 경남대 안팎에서는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고인은 경찰로부터 '주모자'로 지목되었고, 마산경찰서에 붙잡혀 가서 '통닭구이' 등 고문을 당했고, 군대 입대와 대학 복학 뒤에도 감시를 당했다. 그는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고인은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1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정신 계승과 국가기념일 지정에 이바지한 공로로 '창원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창원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는 고인의 장례식을 함께 치르기로 하고, 23일 추모식을 열 예정이다.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은 "학생 때 첫 연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인을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 장례를 함께 치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창원병원장례식장 특실7호실에 차려졌고, 발인은 24일 오전 7시 30분이며, 장지는 창원 상복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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