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헌 넥슨 대표, ‘넥슨 독주’ 완성한 판교 샐러리맨 신화 [CEO 라운지]
글로벌 게임사 넥슨을 이끌 차기 책임자로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44)가 뽑혔다. 이 대표는 넥슨 일본법인을 비롯한 넥슨의 글로벌 사업 전략 전반을 담당하게 됐다. 기존에 넥슨을 이끌었던 오웬 마호니 대표는 고문으로 물러난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 대표 영전을 두고 예상된 인사라고 평가한다. 이 대표 지휘 아래서 넥슨코리아가 역대급 실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넥슨은 올해 3분기 매출 1조913억원, 영업이익 420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매출은 23%, 영업이익은 47% 늘었다. 1~3분기 누적 매출은 3조원, 영업이익은 1조원을 넘어섰다. 현재 기세대로라면 연간 매출 4조원, 영업이익 1조원도 가능하다. 국내 게임 업체 중에서는 독보적인 성적이다.
이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2018년부터 넥슨은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경쟁자를 따돌리며 독주 체제를 완성했다. 넥슨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국내 상장 게임사 10곳의 영업이익 합산보다 높았다. 그야말로 ‘넥슨 천하’다.
역대급 실적…체질 개선에도 성공
이 대표는 넥슨에서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14년 만에 넥슨코리아 대표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03년 넥슨에 입사, 사업실무부터 사업총괄 임원까지 두루 거쳤다. 회사 내 굵직한 사업을 담당하며 ‘사업통’으로 불렸다. 2006년 퍼블리싱QM팀장, 2010년 네오플 조종실장, 2012년 피파실장, 2014년 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네오플 조종실과 피파실은 넥슨의 핵심 게임인 ‘던전앤파이터’와 ‘피파온라인(現 FC온라인)’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일선 부서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2015년 사업총괄 부사장을 거쳐 2018년부터 넥슨코리아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이 대표 지휘 아래 넥슨코리아는 외형이 급성장했다. 신작·라이브 게임 매출이 모두 고르게 증가했다. 넥슨코리아 성장에 힘입어 넥슨의 글로벌 연간 매출은 5년 새 50% 이상 상승했다. 연결 기준 모바일 게임 매출 비중이 22%에서 31%으로 확대되는 등 모바일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성공 덕분에, 넥슨은 국내 게임사 최초로 2020년 연간 매출 3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외형 성장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던 체질 개선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이 대표가 부임했을 때, 넥슨은 이른바 ‘돈슨’이라 불릴 정도로 과금 유도가 악명 높았다. 막대한 돈을 들여야만 게임을 할 수 있는 이른바 P2W(Pay to Win) 게임이 범람했다. 이 대표는 당장 막대한 이익을 얻는 과금 유도형 게임보다 장기적으로 회사의 기둥이 될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수익모델(BM)보다는, 게임의 작품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제대로 적중했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블루 아카이브’ ‘데이브 더 다이버’ 등 게임이 국내외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반면, 작품성 높은 게임보다는 과금 유도형 게임만 내놓으며 체질 개선에 실패한 다른 게임사들은 2022년부터 외면받기 시작했고 실적도 급감했다. 경쟁사들이 헤매는 사이, 넥슨은 홀로 ‘독주’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넘기는 리더십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대표 재직 시절 넥슨은 큰 위기를 여러 번 겪었다. 2021년 인기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확률 조작 의혹이 터졌다. 게임 이용자들이 좋은 아이템을 얻지 못하도록 게임 운영진이 뽑기형 아이템 확률을 건드렸다는 논란이었다. 해당 의혹으로 인해 넥슨은 공정위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이후 넥슨은 과금 유도보다는 게임의 작품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를 옮겼다. 과금 유도에 집중하는 기존 성공 방식을 과감하게 버렸다. 이 대표의 과감한 결단이 있기에 가능한 전환이었다.
2022년에는 대형 리더십 공백을 맞이했다. 넥슨을 창업하고 경영 방향을 제시해온 김정주 창업주가 별세했다. 당시 이 대표는 이재교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와 함께 ‘삼두 체제’의 한 축을 이끌며 경영 안정화를 이끌었다. 덕분에 넥슨은 빠르게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다.
글로벌 大히트작 만들어라
이정헌 대표에게 내려진 특명은 하나다. 바로 제2의 도약, 글로벌 대형 게임사로 성장하는 것.
현재 넥슨 대표작 중에서는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는 IP가 없다. 넥슨 매출을 이끄는 핵심 게임 ‘메이플스토리’ ‘FC온라인’ 등은 한국 내수 시장에 인기가 한정돼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한국 시장 외에는 확실하게 자리 잡은 국가가 거의 없다. FC온라인은 IP가 외국 게임사인 EA(일렉트로닉아츠) 소유다. 사실상 한국 내 게임 서비스 권한만 갖고 있는 상태다. 물론 해외에서 인기가 있는 작품도 더러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동아시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블루 아카이브’는 일본에서 실적이 좋지만, 서구권에서는 생소하다. 과거부터 전 세계에서 유행할 만한 게임을 내놓고자 노력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는 만들지 못했다.
넥슨이 EA, 소니, 텐센트, 라이엇게임즈와 같은 글로벌 대형 게임사로 성장하려면 전 세계에서 통할 작품을 확보해야 한다. 라이엇게임즈의 경우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로 한국에서만 연간 3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래프톤 역시 대표 게임 ‘배틀그라운드’ IP만으로도 분기 4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두 회사는 넥슨보다 보유한 IP는 적지만, IP하나가 올리는 실적은 넥슨 내 게임들보다 월등히 높다.
이 대표도 이와 같은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미 넥슨코리아 대표 재직 시절부터 ‘글로벌 히트 IP’ 제작을 위한 투자에 들어갔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게임을 만드는 서브 브랜드 ‘민트로켓’ 등을 출범시키며 글로벌 히트작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했다.
성과는 조금씩 나오는 중이다. 민트로켓이 개발한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는 6월 28일 공개 이후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해양 생물을 사냥하는 모험 요소와 초밥집을 운영하는 경영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게임이다.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 서비스 시작과 함께 호평을 받으며 누적 판매량 200만장을 돌파했다. 특히 그동안 한국 게임이 부진했던 서구권에서 선전한 점이 눈에 띈다. 데이브 더 다이버의 북미·유럽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8% 성장했다.
데이브 더 다이버의 뒤는 1인칭 팀 대전 슈팅 게임 ‘더 파이널스’가 잇고 있다. 더 파이널스는 최근 진행한 오픈 베타 테스트에서 누적 이용자 750만명, 스팀 최고 동시 접속자 약 27만명, 최다 플레이 게임 3위, 위시리스트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 게임 이용자와 비평가로부터 호평이 쏟아졌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현재 판교에서 분위기가 좋은 기업은 넥슨밖에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실적은 물론 작품성까지 높였다. 글로벌 히트작까지 등장한다면 독주 체제를 확고히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5호 (2023.11.22~2023.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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