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특례 요건 강화될까? ‘파두 쇼크’로 긴장감 도는 IPO 시장
‘파두 쇼크’가 기업공개(IPO) 시장을 뒤덮고 있다. 아직까지 수치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시장 전반의 투자 심리가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상장을 앞둔 기업은 물론, 금융당국이 파두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조사한다는 소식에 다른 기업들의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들까지 긴장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내다본다. 기관은 어느 정도 물량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영향이 크지 않겠지만, 일반 투자자는 비슷한 사태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보다 소극적인 태도로 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모주 투자 심리가 악화될 경우 투자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사, 진행 상황에 ‘촉각’
기업 IPO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은 일제히 긴장하는 분위기다. 파두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지면 언제든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이번 금융당국의 파두 주관사 조사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미 적합한 과정을 거쳐서 상장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주관사에 제재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당국이 움직이는 만큼 기술특례 상장을 준비 중이던 기업과 주관사는 모두 증권신고서에 써낼 수치를 보수적으로 내려 잡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모든 증권사가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실적 추정치를 높여 잡았다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의식해 상장 전 선제적으로 실적 부진을 고백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 11월 15일 코스피 상장을 이틀 앞두고 김병훈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대표는 임직원과 주주들에게 보낸 공식 서한에서 “대표이사로 상장을 앞둔 시점에서 분기 영업 실적이 적자를 기록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광물 가격 하락과 원자재 재고 부담으로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고금리 영향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유럽의 친환경 정책이 지연되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주춤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에코프로머티리얼즈도 이런 시장 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올해 3분기 매출 2400억원, 영업손실 69억원을 기록했다.
아직 상장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하지 않고 대기 중인 기업들도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당분간 비우호적인 환경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제출 시기를 늦추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할 조짐이 보인다. 상장을 준비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하필 예비심사 청구서 제출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져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투자 심리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조치와 여론을 살피며 적절한 제출 시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특례 평가 시 추정치 금지할까
증시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 심리를 악화할 만한 악재까지 겹치며, IPO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갈수록 공모주 펀드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도 부정적인 전망에 힘을 싣는다.
실제로 올 들어 주요 공모주 펀드 설정액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SK증권에 따르면 다올블록딜공모주하이일드증권투자신탁, 신한공모주&밴드트레이딩30증권자투자신탁, 브이아이공모주플러스10증권투자신탁1, 유진챔피언공모주증권투자신탁1, 흥국공모주하이일드증권투자신탁, 교보악사공모주하이일드플러스증권투자신탁 등 6개 주요 공모주 펀드 설정액은 11월 10일 기준 1757억원으로, 1년 전(3041억원)보다 4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2000억원 선이 무너지더니 10월 말에는 17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올해 기술특례 상장한 기업들의 성과가 부진하다는 점도 투자자를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기술평가특례와 성장성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은 11월 14일 기준 32개다. 2014년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중 70%가량은 공모가 대비 낮은 주가를 형성하고 있다.
2005년 도입된 기술특례 상장 제도는 혁신 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지원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지난 7월 기술특례 상장 규제를 완화해 문턱을 더욱 낮췄다. 기존 2개의 기술평가(복수평가)를 받아야 하는 첨단·전략기술 기업이 1개의 기술평가(단수평가)만 받아도 인정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기술성이나 사업성 이외의 사유로 상장에 실패한 기업이 6개월 내 상장에 재도전하는 경우 ‘신속 심사 제도(패스트트랙)’를 적용키로 했으며, 특례 대상도 확대했다.
연내 상장을 노리는 그린리소스, 에이텀, 와이바이오로직스 등도 완화된 기술특례 상장을 노리는 업체들이다.
초고밀도 특수코팅 전문 기업 그린리소스는 최근 공모주 청약까지 마쳤다. 지난 11월 13~14일 진행한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에서 59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2조원의 청약 증거금을 모았다. 앞서 열린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도 흥행을 기록하며 회사 측 희망범위(1만1000~1만4000원) 상단을 뚫은 1만7000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51억원과 37억원으로, 전년 대비 성장세를 보였다. 투자자들의 많은 관심 속에 오는 11월 22일 코스닥에 상장한다.
그러나 에이텀과 와이바이오로직스도 흥행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각각 11월 21일과 23일 차례로 공모주 청약에 나서지만, 최근 파두 사태로 인해 기술특례 상장을 노리는 기업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워졌다는 점이 부정적인 요인으로 지적된다. 나승두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파두 사태는 기관보다 일반 투자자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며 “당분간 공모주 청약에서 주춤한 성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기업들의 부실 우려가 확산되며 기술특례 상장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다. 일각에서는 기술특례 평가 시 실적 추정치 사용을 금지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 ‘실적 뻥튀기’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파두의 경우 너무 크게 부풀려져 몸값이 1조원에 달했기 때문에 사태가 커진 것으로 보여진다”며 “기술특례 평가 자체를 금지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은 만큼, 추정치를 사용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요건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마지막 라운드에서 투자한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파두 사태로 IPO 시장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다만 2024년 초 거시경제 환경이 IPO 시장에 나쁘지 않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장을 추진 중인 기업들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긴축적인 통화 정책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자산 선호 심리는 갈수록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초 증시가 나쁘지 않은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연초에 신규 상장을 앞둔 기업들은 걱정을 덜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파두 사태로 인해 투심이 악화될 경우, 일부 기업에만 돈이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여지는 있다.” 나승두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5호 (2023.11.22~2023.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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