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쌓이고 거래는 급감…서울 집값 이상 신호 [COVER STORY]
매수-매도자 간 힘겨루기 장세로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이 모 씨는 자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강남구 대치동 이사를 고민 중이다. 기존 아파트 전세금에 대출을 보태 대치동 소형 아파트를 구매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생각이 달라졌다. 강남 아파트값 오름세가 주춤하면서 하락 거래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대출 금리 부담이 크지만 투자 가치를 염두에 두고 강남 아파트를 매입할 생각이었는데 자칫 고점에서 물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단은 전세로 2년 더 거주한 뒤 매수 시기를 저울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집값 바닥론’에 힘입어 반짝 회복세를 보이던 수도권 주택 시장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서울 강남 인기 지역마저 매물이 쌓여가지만 좀처럼 거래가 뒤따르지 않는 양상이다. 도곡동 등 일부 지역에서는 고점 대비 수억원씩 하락한 거래도 잇따르는 중이다. 서울 집값은 이대로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서는 것일까.
7만9849건.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이 집계한 서울 매매 매물 건수다(11월 9일 기준). 한 달 전(7만2815건) 대비 9.6% 늘어난 수치로 무려 8만건에 육박한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 양상을 보였던 지난해 말, 올 초에도 매물 건수는 5만건 안팎이었지만 지난 8월 7만건을 넘어서더니 어느새 8만건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일례로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는 전체 3410가구 중 10% 이상인 352건이 매물로 나와 있을 정도다.
수도권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경기도 매물은 14만4460건으로 같은 기간 11.7%, 인천은 3만3171건으로 10.1% 증가했다. 수도권만 놓고 보면 무려 25만7000여건 매물이 시장에 쌓여 있다는 의미다.
아파트 매물이 넘쳐나는 것은 고금리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데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아파트 매매 시장 관망세가 짙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 초부터 대출, 세금 규제를 완화하면서 시세보다 저렴한 급매물이 대부분 소진되는 등 거래량이 늘었다. 집주인들은 이참에 호가를 높이고, 실수요자들은 대출 부담에 높은 가격대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어 매수-매도자 간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모습이다.
특히 대출 규제를 풀던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도 영향을 미쳤다. 6억~9억원 이하 아파트 대상 특례보금자리론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등 대출을 다시 억제하면서 매수 심리가 위축되는 양상이다.
매물이 점차 쌓여가는 가운데 아파트 거래도 급감하는 중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8월 3861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9월 3367건, 10월 1788건으로 매달 줄어드는 양상이다. 그마저도 상승 거래 비중이 확연히 줄어드는 모습이다. 부동산 프롭테크 업체 직방에 따르면 지난 9월 전국 아파트 거래 3만907건 중 ‘상승 거래’는 총 1만4666건으로 집계됐다. 비중으로 치면 47.5%로, 지난 1월 이후 8개월 만에 상승 거래 비중이 전달 대비 낮아졌다. 집값 상승세가 점차 멈춰 설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강북뿐 아니라 강남권에서도 수억원씩 하락한 실거래 사례가 쏟아진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쌍용예가 전용 107㎡는 최근 14억원에 실거래됐다. 올 8월 매매가(22억원) 대비 무려 8억원 하락한 가격이다. 도곡삼성래미안 전용 122㎡도 올 10월 28억원에 거래돼 9월 실거래가(32억1500만원)와 비교하면 한 달 만에 4억원 넘게 하락했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전용 83㎡는 최근 19억원에 주인을 찾았다. 2021년 8월 최고가(24억7000만원) 대비 5억7000만원 떨어졌다.
강북권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 전용 58㎡는 최근 6억27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8월까지만 해도 실거래가가 7억원까지 올랐지만 7000만원 넘게 낮아졌다. 상계주공7단지 전용 59㎡도 지난 10월 6억3500만원에 팔려 8월 초(6억9500만원) 대비 6000만원 하락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11월 첫째 주(6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05% 올라 전주(0.07%) 대비 상승폭이 축소됐다. 8월 이후 아파트값이 매주 0.1% 넘게 올랐지만 상승세가 한풀 꺾인 셈이다. 지역별로 보면 노원, 강북구는 아예 0.01%씩 하락했다. 강남구도 ‘보합(0)’을 기록해 4월 마지막 주부터 이어진 28주 연속 상승 랠리가 꺾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 8월 268건에서 9월 194건으로 급감하면서 5개월 만에 200건을 밑돌았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오랜만에 호황을 보이면서 집주인들이 저마다 호가를 높여 거래가 좀처럼 성사되지 않는 분위기다. 그나마 거래되는 물건은 저가 급매물이라 이미 팔릴 것은 다 팔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로또’로 불리던 청약 시장 분위기도 심상찮다. 청약 경쟁률이 계속 떨어지는 데다 ‘청약 불패’ 서울마저도 미계약 단지가 잇따르는 모습이다. 동작구 상도푸르지오클라베뉴는 지난 10월 1순위 청약 경쟁률 14 대 1을 기록했지만, 일반분양 771가구 중 40% 수준인 300여가구가 미계약 물량으로 남았다. 서울 도봉구 도봉금호어울림리버파크는 5개 주택형 중 84㎡B, 84㎡C형이 1순위 마감에 실패했다.
경매 시장에서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238건으로 2016년 5월(291건) 이후 7년 5개월 만에 월별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고금리 여파로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자 경매 매물이 갈수록 늘어나는 모습이다.
경매 물건은 쌓여가지만 낙찰되는 물건은 별로 많지 않다. 10월 낙찰률(경매 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은 26.5%로 9월(31.5%) 대비 5%포인트 하락하며 다시 20%대로 주저앉았다.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2629건으로 2020년 11월(3593건) 이후 2년 1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매 건수는 부동산 시장 선행 지표로 불리는 만큼 향후 부동산 시장 전망이 밝지 않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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