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구제, 세금 안 들어도 정부는 외면...특별법 개정"
[조선혜 기자]
▲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설명 기자간담회’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
ⓒ 권우성 |
"정부에 책임이 있음에도, 돈이 한 푼도 안 드는데도, 정부는 소액 임차인들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안상미 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 발생 이후 지난 6월 정부가 전세사기피해자법(아래 특별법)을 제정했지만, 까다로운 피해자 인정 요건 등으로 실질적인 구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피해자 인정 요건 삭제, 소액 임차인 범위 삭제 등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2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설명과 요구사항' 기자간담회에서 안상미 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전세사기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이미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피해를 입은 것은 (임대차 관련) 제도가 잘못됐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은행에도 책임이 있고, 임대인에도 책임이 있지만,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 책임지는 건 임차인뿐"이라고 덧붙였다.
'임대인의 미반환 의도'를 임차인이 입증? "피해자 인정 요건 삭제해야"
대책위는 우선 피해자 인정 요건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현행법에선 주택 점유, 전입신고, 확정일자 혹은 임차권등기를 완료한 경우 피해자로 인정하는데, 신탁 사기나 입주 전 사기 등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도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수 임차인에게 피해 발생 우려', '임대인의 보증금 미반환 의도' 등도 충족해야 하는데, 피해자가 이를 직접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책위 쪽 설명이다.
경·공매 관련 지원 대책의 경우에도 경·공매 유예기간이 최장 1년으로 한정되며, 이마저도 대부업체로 채권이 넘어간다면 경매가 그대로 진행돼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 특별법에선 피해자에 우선매수권을 부여하지만, 1~2회차에 우선매수권을 사용하면 임차인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1~2회차에 제3자 입찰을 방지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대책위는 경·공매 유예 등이 아닌 정부가 선순위 근저당 채권을 매입하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대책위는 최우선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소액 임차인에 대한 구제 방안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안 위원장은 "이런 피해자 대부분은 은행의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며 "은행은 근저당 설정 때 이미 최우선변제금을 반영해 대출했으므로 임차인에게 최우선변제금을 모두 지급해도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설명 기자간담회’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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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국에 소액 임차인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70%에 이른다고 한다"며 "최우선변제금만큼 변제하는 것은 세금을 뜯는 게 아니며, 은행의 이익을 해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오히려 법이 은행을 과보호한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소액 임차인 범위를 삭제할 것을 촉구했다.
사기로 인해 전세대출금을 대부분 잃어 추가 대출이 어려운 피해자들을 위해 대출 조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무적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지금의 특별법은 전 재산을 잃다 못해 은행 빚만 남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시 빚을 지라는 것인데, 이마저도 지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내용 또한 부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울며겨자먹기로 사기꾼들의 천문학적인 체납 세금, 건강보험료까지 갚겠다는데, 온갖 조건을 갖다 붙여 대출을 받을 수도, 갚을 수조차 없다"며 "피해자 대다수가 특별법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주택도시기금의 디딤돌대출과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특례보금자리론의 대출 요건을 완화하고, 오피스텔 등 준주택, 불법 건축물에 대해서도 대출을 허용해줄 것을 촉구했다.
"선순위 채권, 공공이 할인 매입하면 재정 투입 없이 해결"
'선 구제, 후 회수'와 같은 실질적인 구제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과)는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선순위 채권, 임차인들이 돌려받지 못하는 보증금 반환 채권을 공공기관이 매수해 전세사기 피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선순위 채권을 보통 대부업체에 매각하고, 이 대부업체가 선순위 채권에 대해 경매를 신청한다"며 "이 경매에서 (주택이) 매각되면 해당 주택에 거주하던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거의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 퇴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기관이 가진 부실 채권을 공공이 매입해 경매권을 실행하지 않고 유예만 해줘도, 피해자들이 계속 거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통상 금융기관이 부실 채권의 경우 할인 매입하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전세사기 피해 부실 채권을 할인 매입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임 교수는 "캠코가 부실 채권을 할인 매입하면 30% 정도까지는 채권액이 감소하기 때문에,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으로 돌려줄 수 있다"며 "여기까지는 정부의 재정 없이도 해결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순위 채권액이 많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경우에는 정부가 재정을 통해 또는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기금 조성을 통해 적어도 최우선변제금까지는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당시 캠코에서 구조조정 기금 등을 40조원 가량 조성하고, 이를 통해 부실채권 정리나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한 바 있다"며 "그런데 왜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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