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짓수 4000개' 19세기 만찬…英왕실은 '태극기' 입고 尹 맞았다
"19세기 영국식 만찬을 재연한 고급 식사"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1일(현지시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위해 준비한 만찬에 대해 영국 BBC방송은 이렇게 표현했다.
영국 현지 언론은 찰스 3세 국왕 대관식 이후 첫 국빈 초청을 받은 윤 대통령의 영국 방문 일정과 의미 등을 세세히 전했다. 이날 저녁 진행된 만찬에 대해서는 "음식과 각종 식기, 장식 등을 모두 합쳐 4000개 이상의 제품으로 구성된 호화로운 행사"였다고 묘사했다.
1761년 조지 3세 대관식 때 제작한 금 접시와 1877년 빅토리아 여왕 시절 생산한 청록색 디저트 접시 등이 테이블을 채웠다. 수란과 시금치 퓨레로 만든 타르트렛, 셀레리악 크로켓과 칼바도스 소스를 곁들인 꿩 가슴살, 샐러드, 망고 아이스크림 등이 올랐다. 1989년산 샤토 무통-로칠드와 콘월산 카멜 밸리 와인 등도 자리했다. BBC의 션 고프란 왕실 출입기자는 "테이블 세팅이 마치 대통령을 맞이하는 군사 퍼레이드처럼 정확하고 대칭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호화 환대를 두고 BBC 등 현지 언론은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점차 그 지위가 중요해지고 있는 동맹국이자 무역 파트너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 왕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존중도 잊지 않았다. 찰스 3세는 만찬사에 앞서 직접 한국어로 "영국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라고 인사했다. BBC는 "찰스 3세가 윤 대통령을 환영하며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라는 설명과 함께 만찬에서 한국어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을 보도했다. 찰스 3세는 만찬을 마칠 때도 "위하여"라고 한국어로 건배사를 외쳤다. 한국 문화를 "상상력을 사로잡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현지 매체들은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방미 당시 백악관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던 것을 언급하며, 이번 왕실 만찬에선 '노래방 스타일(karaoke-style skill)'의 가창 솜씨를 뽐내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대신 이날 윤 대통령은 "젊었을 때 비틀스와 퀸, 엘튼 존의 팬이었다"고 밝혔다.
BBC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경기로 만찬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손흥민(토트넘)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한국의 아들 격인 축구선수 손흥민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K팝 아이돌그룹 블랙핑크가 채웠다"고 전했다.
BBC는 "이러한 화려한 왕실 행사는 실용 정치와 잘 결합한 '소프트파워'의 대표 격"이라 말했다. 타임지는 사설을 통해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한·영 수교 140년의) 과거에 갇힌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한 거대한 기회의 장을 여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 평했다. 그러면서 "현재 영국과 한국의 무역 규모는 연간 161억 파운드(26조 13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의 패션·음식·대중음악·영화 등이 모두 영국에서 주목받고 있다"며 "국왕의 이런 환대도 결국 영국이 동방의 친구(한국)와 관계를 보다 돈독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찰스 3세 국왕은 만찬사에서 "한국 기업들이 영국의 청정에너지, 인프라 사업 등에 210억 파운드(약 34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만찬 전 오찬에서도 왕실의 섬세한 준비가 드러났다. 커밀라 왕비는 파란색 코트를 입고,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은 붉은색 망토를 두른 드레스를 입어 마치 태극기 색상을 연상시켰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두 색상이 우주의 균형을 상징하는 태극 문양의 색이라며 영국 왕실의 영리한 외교적 메시지였다"고 전했다.
이날 오찬 전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가 있어 한 차례 어수선한 상황이 연출됐다. 더 타임스는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 소식에 소동이 있었지만 오찬 일정이 연기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과 찰스 3세 국왕은 오찬 후 선물 교환도 했다. 찰스 3세 일가는 윤 대통령에게 '바스 대십자 훈장'을 수여했다. 영국을 국빈 방문한 국가 원수나 국빈 자격을 갖춘 외국 정상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이다.
찰스 3세 국왕 부부는 윤 대통령 부부에게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연설집 '조류에 맞서며(Stemming the Tide)'의 사본도 선물했다. 윤 대통령이 받은 책은 윈저성 왕실 제본소에서 손으로 묶어 만든 1951~1952년 당시 처칠의 연설문 모음집이다. 맞춤형 헌정 라벨이 붙어있는 이 책에는 당시 총리였던 처칠이 "나는 늘 최대한 신속하게 한국 전쟁 끝내고 싶었다"고 밝힌 문구도 등장한다.
찰스 3세는 스코틀랜드 라프로익 산 특별 한정판 위스키도 건넸다. 커밀라 왕비는 김건희 여사에게 무궁화와 김 여사가 키우는 반려견 이름을 왕립자수협회 전문가들이 손으로 수놓은 최상급 캐시미어를 선물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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