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화가’가 캔버스에 예수를 그린다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천지 창조’ 선보일 것
서양 미술사의 황금시대를 연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1606~1669)은 빛과 그림자, 어둠을 조화롭게 캔버스에 담아내며 ‘빛의 화가’로 불리게 된다. 그렇게 화풍은(畫風) 그림에 흐르는 바람처럼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과 가슴에 남는다. 서양화가 남혜경 작가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그동안 캔버스에 표현해낸 숱한 빗방울들이 그를 ‘비의 화가’로 불리게 했고, 빗방울에 담긴 영혼의 내적 세계와 사랑이 오롯이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활동 중인 남 작가는 21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인간이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을 창조해내신 하나님, 그리고 그 창조물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캔버스에 그린 나날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화가로서의 길”이라고 했다.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그는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진화론자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미대를 졸업하고 결혼으로 가정을 꾸린 뒤 1996년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신앙의 전환점을 맞았다.
“가슴에 신앙이 채워지는 동안 성경책이 제 일기처럼 읽히는 경험을 했어요.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뜻을 캔버스에 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성화를 한 작품씩 그려나가다가 비를 모티브로 그렸 첫 작품이 ‘십자가를 그린 나뭇가지’였습니다.”
그가 보여 준 당시의 첫 작품에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닥에 나뭇가지 두 개가 십자가를 그리며 빗물의 파동을 받아내고 있었다. 이후 남 작가의 작품들은 유리창에 부딪힌 빗방울이 생동감 넘치게 그려지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유리창과 만나는 빗방울의 움직임에 따라 풍경이 변화하는 모습이 캔버스에 다채롭게 담기며 대중들로부터 ‘비의 화가’ ‘빗방울 작가’라는 수식어를 받게 된다.
남 작가는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것을 만들어 내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라며 “작품 속 빗방울은 은혜를 머금고 있는 생명수”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엔 백석대(총장 장종현)로부터 특별한 요청을 받았다. 개관을 앞둔 역사박물관의 성화갤러리에 크리스천 작가들과 함께 예수님의 생애를 연속으로 담아내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처음 미국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한 상태였고 한 번도 200호(194×260cm) 크기의 작품을 그린 적도 없었죠.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저를 귀국길에 오르게 하셨고 작업실에 앉히셨습니다. 작품에 임하는 5개월여 동안 매일 붓을 든 채 기도에 매달렸어요. 돌아보면 제가 그린 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주변의 많은 분들의 기도로 이뤄진 작품입니다.”
지난 5월 개관과 함께 성화박물관에 전시된 남 작가의 두 작품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고난’이 담겨있다. 첫 번째 작품엔 낮고 낮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을 상징하는 붉은 천에 싸인 채 삼각 형태(삼위일체를 의미)의 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얼룩말의 등에 ‘지저스 러브스 유(Jesus loves you)’를 시크릿 코드로 삽입해 둔 것도 눈에 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그린 성화는 많다. 하지만 작품 속 예수님의 시선이 걸음의 방향, 하늘 방향이 아닌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과 마주 보는 모습은 흔치 않다. 남 작가는 “나를 향한 예수님, 우리를 향한 예수님, 역경 속의 예수님이 눈을 마주하며 ‘내 손을 잡아볼래? 나와 함께 갈래?’라고 말씀하시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를 보다 현대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천지 창조’를 구상하고 있다”며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끊임없이 붓을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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