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가 워싱턴에서 "김영삼 만세" 팻말 든 이유

장신기 2023. 11. 2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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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사료 공개... 이희호의 단식투쟁 지지 시위, 김대중-김영삼 연대의 의미

[장신기 기자]

김대중과 김영삼, 김영삼과 김대중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사와 정당정치사에 있어 매우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정치가다. 두 인물의 관계는 갈등과 대립, 협력과 연대 두 가지 측면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두 인물의 관계를 '갈등과 대립'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두 인물의 경쟁이 격화했고 정치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 상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인물은 협력과 연대를 통해 여러번에 걸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 1971년 대선 과정에서의 40대 기수론과 대선후보 경선, 1979년 김영삼 총재 당선과 유신체제의 위기, 1984년 민추협결성과 1985년 2.12 총선 승리, 직선제 개헌 관철과 1987년 6월 항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게 볼 때 두 인물의 협력과 연대는 한국 민주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타협과 통합을 통한 큰 정치가 실종된 요즘, 두 인물의 협력과 연대의 역사는 지금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1983년 이희호 여사의 김영삼 단식투쟁 지지 시위 사진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관련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희호 여사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 각종 사료를 기증했는데 여기에는 이희호 여사가 1983년 6월 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김영삼 단식투쟁 지지 시위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가 포함돼 있었다.

1983년 6월 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김대중과 이희호는 교포 70여명과 함께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지지하는 시위를 했다. 이때 이희호 여사는 "(KIM YOUNG SAM)김영삼 만세 만세"라고 쓰인 팻말을 목에 걸고 시위를 했다. 그러면 당시 김영삼은 왜 단식투쟁을 했을까? 그리고 김대중과 이희호의 김영삼 단식투쟁 지지 시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이희호 여사의 시위 모습 1983년 6월 4일 이희호 여사의 김영삼 지지 시위 모습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1983년 김영삼 단식투쟁의 역사적 의미

김영삼은 1980년 5.17쿠데타 이후인 5월 30일부터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때의 가택연금은 11개월 동안 이어져 1981년 5월 1일에 풀렸다. 오랜만에 자유를 되찾은 김영삼은 민주산악회를 조직하면서 활동을 본격화했다. 김영삼의 행보에 부담을 느낀 전두환 정권은 1982년 5월 31일 또다시 김영삼을 가택연금했다.

또다시 기나긴 가택연금 속에 고통을 받던 김영삼은 1983년 5월 5.18광주민중항쟁 3주년을 맞아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먼저 그는 5월 2일 작성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민주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다섯 가지 사항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①민주인사 석방 ②정치활동규제 해제 ③민주인사들의 복직 및 복권 ④언론 자유 보장 ⑤헌법 개정 및 반민주적 악법 개폐 등이다.

그러나 이 글은 국내 언론에는 보도가 되지 않았고 5월 16일에 가서야 AP통신에서 보도됐다. 전두환 정권의 억압이 그만큼 심했다. 이에 맞서 김영삼은 광주항쟁 발생 3주년이 되는 1983년 5월 18일에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나는 오늘 국민에게 밝힌 뜻을 분명히 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결의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단식에 들어감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의 단식은 5.17군사쿠데타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파괴·부정당함은 물론,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백 수천명의 민주시민이 광주에서 무참히 살상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며, 비극적인 광주사태로 목숨을 잃은 영혼과 거기서 희생된 민주시민들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동시에 반민주적인 독재권력의 강화와 인권유린 및 정치적인 탄압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표시이자, 민주정치의 확립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나마 시급히 강구되어야 한다는 나의 정치적 요구의 표시입니다.
  
가택연금 중인 김영삼의 단식투쟁은 민주화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이에 긴장한 전두환 정권은 5월 25일 김영삼을 서울대병원으로 강제 입원시켰다. 여기서 전두환 정권은 김영삼에게 단식중지를 종용했지만 그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6월 9일까지 무려 23일 동안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김영삼의 연대, 민추협 결성과 2.12총선 승리로 이어지다
  
▲ 1983년 6월 4일 김대중의 김영삼 지지시위 미국교포 70여명과 함께 김영삼 지지 시위를 한 김대중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김영삼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할 때 김대중은 미국 망명 중에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김대중은 5월 20일 김영삼에게 전보를 보내 김영삼의 투쟁을 높이 평가하고 미국에서도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먼저 김대중은 5월 24일에 성명을 발표했고 미국의 주요 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6월 4일에는 이희호 여사와 교포 70여명과 함께 워싱턴D.C.에서 김영삼 지지시위를 했다. 또한 뉴욕타임즈에 보낸 기고문이 <김영삼의 단식투쟁(Kim's Hunger Strike)>라는 제목으로 6월 9일에 게재됐다.

이렇게 태평양을 넘어서 연대를 과시한 두 인물은 1983년 8월 15일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우리 두 사람은 오로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속에서, 국민과 함께 그 뜻을 받들어 민족과 민주 제단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하는 바입니다. 그 성스러운 싸움과 승리의 현장에서 뜨겁게 만납시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같은 두 인물의 연대는 1984년 5월 18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으로 이어졌고, 1985년 1월 18일 선명야당인 신한민주당(신민당) 창당으로 발전했다. 김대중은 미국 망명 생활을 마치고 총선을 4일 앞둔 2월 8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목숨을 건 귀국이었으며 2.12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에 큰 기여를 했다.
  
김대중-김영삼의 협력과 연대, 우리나라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하다
  
2.12 총선 승리는 19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정당정치가 활성화되고 여기에 재야 시민사회 세력이 합세하면서 민주화세력의 중심이 단단해지고 외연이 확장된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이 구축될 수 있었다.

한국은 북한과 전쟁을 했고 그 이후에도 첨예한 군사적인 대립과 갈등이 이어져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조건에 있었다. 더군다나 군사독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에 여러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퇴치와 양적인 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민주화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언젠가는 이뤄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도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다른 경로로 갈수도 있었다. 민주화는 우리 국민의 피와 눈물로 쟁취한 위대한 성과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정치지도자로서 김대중과 김영삼은 협력과 연대를 통해 큰 기여를 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이번에 공개한 이희호 여사의 사진자료를 통해서도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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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과 중국>(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의 공저자, <김대중 1차망명과 반유신민주화운동>(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의 공저자이며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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