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일탈, 中 묵인, 美 여력 분산…기회 맞은 北 '핵 패키지' 야욕

유지혜, 박현주 2023. 11. 2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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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동시에 벌어지는 전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중국은 북핵을 놓고 모르는 척 다른 곳을 쳐다본다. 러시아는 무기거래를 하며 북한에 정보를 흘려주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밤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소위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참관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현재 미·중·러의 상황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에 놓인 판이 이렇다. 21일 기습적인 심야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이런 ‘기회의 창’이 열린 틈을 극대화한 도발이다.

정부가 이에 남북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에 이어 국제 제재 등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北, 기세 몰아 “여러 개 더 발사”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2일 전날 위성 발사에 대해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은 21일 22시 42분 28초에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또 김정은의 참관 사실을 밝히며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은 앞으로 빠른 기간 안에 수개의 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해 남조선 지역과 공화국 무력의 작전상 관심지역에 대한 정찰능력을 계속 확보해나갈 계획을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 제출하게 된다”고 수차례 추가 발사도 예고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전날인 21일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은 앞서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위성 발사에 실패한 뒤 곧바로 재발사를 예고했다. 또 지난 9월엔 직접 러시아로 달려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탄약과 포탄 지원을 대가로 위성 기술 전수를 약속받는 등 잰 행보를 보이며 조급함을 숨기지 않았다.

방러 직전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0발을 탑재해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처음으로 진수했다고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정상적 운용 자체가 힘들다는 게 군의 평가였다.

군사정찰위성과 핵잠수함은 김정은이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직접 제시한 여러 무력 과업 중 가장 미진한 무기체계로 꼽힌다. ‘핵 패키지’ 완성을 위해 필수적인 분야라는 뜻도 된다. 김정은이 사활을 거는 이유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데드라인이라도 정해놓은 듯 서두르는 김정은의 조바심 뒤에는 핵 능력 고도화를 통해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4년 가을 치러지는 미국의 대선 결과를 의식했을 수도 있다. 김정은과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으며 냉·온탕의 관계를 지속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美 도전받는 다극화 세계, 김정은의 ‘놀이터’로


김정은의 위성 발사는 ‘계획범죄’이지만 기회를 잘 노린 측면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거침 없는 패권 확장 기도는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세계 곳곳에서 도전 세력의 위협에 맞닥뜨려 다극 체제로 변화하는 지금이 북한으로선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특히 러시아는 대놓고 법과 규범을 무시하며 ‘공범’을 자처하는 데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건설적 역할’은 외면한 채 북한의 불법 행위를 방치 내지는 묵인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두 개의 전쟁에 관여하며 군사적 한계점과 리더십을 시험받는 중이다.

이런 구도는 ‘가장 무서운 처벌은 받지 않는다’는 김정은의 위험한 자신감을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는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1·2차 위성 발사 때도 회의를 소집했지만, 추가 제재는커녕 아무런 결과물도 내지 못하고 끝났다.

지난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보스토니치 우주 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모습. 조선중앙TV. 뉴시스.

그렇다고 김정은이 치를 대가가 만만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군사적·외교적으로 실효성 있는 조치는 모두 동원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군사분계선(MDL) 일대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규정한 9.19 군사합의의 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정부, 길게 보고 촘촘하게 때린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22일 오전 3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고 “연합 정보감시정찰(ISR) 자산별 계획 변경 및 투입 준비 등 군사적 조치사항을 치밀하게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3시를 기해 효력 정지에 돌입, 즉시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 감시·정찰활동을 복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추가적으로 남북 합의 일부 효력 정지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이는 곧 북한이 군사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전술적 이익이 질과 양 측면에서 모두 점점 커진다는 뜻이다. 북한이 아파할 만 한 남북 합의 효력 정지 조치가 누적될 경우 북한의 숨통을 단계적으로 조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호텔에서 북한의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발사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외적으로 정부는 뜻을 함께 하는 주요국을 중심으로 공동 전선 구축에 골몰하고 있다. 한ㆍ미ㆍ일 북핵수석대표 협의가 22일 오전에 열린 데 이어 유엔 안보리에서도 북한의 소위 위성 발사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회의가 조만간 소집될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위성 발사 성공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곧 우려를 자아내던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이전은 사실상 현실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월 두번째 실패 이후 불과 약 3달 만, 북·러 정상회담 이후 약 2달 만의 ‘속성 성공’은 러시아의 지원을 통한 기술적 문제 극복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자체로 한ㆍ미ㆍ일을 비롯한 동맹, 우방이 중첩적으로 대북, 대러 독자 제재에 나설 명분은 확보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추가 대북·대러 독자 제재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여러 주요국의 독자 제재가 중첩적·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유엔 안보리 제재 못지 않은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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