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농장 너머 '검은 연기'... "비행기 지나가면 '팡' 폭탄"

글 박수진 사진 박상환 2023. 11. 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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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팔레스타인에서 인권활동 펼치는 이동화 아디 활동가

[글 박수진 사진 박상환]

2023년 10월 7일 오전 이동화씨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 부근 부린 마을에서 올리브를 따고 있었다. 아시아 분쟁지역에서 인권·평화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아디(ADI) 활동가인 그는 '팔레스타인 평화여행' 4일째 일정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팔레스타인 평화여행은 '하마스' '장벽' 등으로 박제된 이미지 너머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사업이다.

그날 새벽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펼쳤다. 전 세계 언론은 '경악할 테러'를 벌인 하마스와 '피해자' 이스라엘 간 대결 구도로 기사를 썼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전쟁을 선포한 뒤 11월 17일 현재까지 무차별 보복 공격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병원까지 공격하면서 환자들은 물론, 갓난아기들도 목숨을 잃었다. 조산아들이 인큐베이터에서 분리돼 사망한 것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가자지구 사망자 숫자는 11월 10일 기준 1만1078명이었다. 이 중 4506명이 어린이이고 3027명이 여성이다.

이 사태는 그저 하마스의 무모한 공격 때문에 벌어진 걸까.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무고한 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막고 무너져버린 삶의 터전은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이동화 활동가를 11월 8일 만났다. 매일 팔레스타인 주민과 활동가 친구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시울이 붉어지는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쌩' 지나가면 '팡' 폭탄... 매일 조마조마"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인 이동화 회원
ⓒ 박상환
-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시 팔레스타인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중단했던 팔레스타인 평화여행을 3년 만에 갔습니다. 저희는 서안지구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위협을 받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 안전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많이 해서 일정을 변경하고 일찍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하마스의 공격이 있던 날은 올리브를 따는데 농장 너머 검은 연기가 짙게 올라오는 거예요. 인근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 주민들이 하마스에 대한 보복으로 불을 지른 거였습니다. 이전부터 서안지구에서는 불법 정착촌 주민들의 공격과 위협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 지금 가자지구 상황은 어떤가요?

"긴급 모금에 대해 논의하려고 가자지구 활동가와 계속 통화를 시도하는데, 공습 때문에 통신회사 기지국들이 파괴됐다 복구됐다 해서 나흘 만에 겨우 연락이 됐어요. 가자지구는 세종시 크기의 면적(360㎢)에 210만 명이 살아가는 인구 밀집 지역이에요. 대부분 가자지구 북부에 사는데 이스라엘이 북부의 하마스 근거지를 궤멸하겠다며 사람들에게 모두 남부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구의 3/4에 이르는 150만 명이 남부에 몰렸어요.

그런데 남부에서도 매일 12~15번 포탄 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어젯밤(11월 7일)에만 5곳이 공습당했대요. 폭격이 있기 전에 비행기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쌩' 지나가면 그 뒤에 '팡' 터지는 거죠. 사람들이 화장실로 대피했다가 잠잠해져서 나가보면 집 30m 앞의 땅이 주저앉아 있는 상황이라고 해요. 이렇게 매일 폭격하니 사망자 수치가 600명, 700명씩 올라가고 있습니다.

가자뿐만 아니라 서안에도 공습이 있어요. 이스라엘이 하마스 근거지라고 보고 있는 제닌 캠프 등을 수시로 공격해요. 주민들이 집회하는 곳에서도 작전을 펼치죠. 아디 현지 활동가도 집회 현장에 난사된 총알 유탄에 옆구리를 관통당했습니다. 원래 현지 활동가들과 영상회의를 할 때 마지막 인사말은 늘 '건강해(Stay health)'였는데 이제는 '안전을 지켜(Stay saf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일 조마조마해요."

- 이번 참극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됐습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총리는 "하마스가 있는 모든 곳을 폐허로 만들 것"이라며 공언했습니다. 원인 제공자를 하마스로만 보고 비판하는 게 맞을까요?

"하마스 공격 직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환호하거나 열광하기도 했어요. 가자지구에서는 1996년에 6~10m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완성된 뒤 2007년 봉쇄가 시작됐고, 서안지구에서도 438㎞에 달하는 콘크리트나 철조망이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귀환을 위한 대행진 시위(Great March of Return)'에 가자지구 주민들이 장벽 아래를 걸으며 평화시위를 하는데 이스라엘 저격수들이 시위대의 다리를 조준하며 총을 난사했습니다. 수천 명이 총상을 입었어요. 장벽을 숙명처럼 여기고 지내던 주민들에게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영화처럼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철조망을 넘어가는 장면, 이스라엘군 탱크 위에서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예상치 못한 '해방감'을 준 것 같아요.

결국 참극의 배경에는 봉쇄와 공습이 반복된 역사가 있습니다. 2007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이후 2008년·2012년 1·2차 가자전쟁이 있었죠. 2014년 이스라엘 소년 3명이 살해되자 가자·서안지구에 대한 공습이 벌어졌고 2021년에도 가자지구 폭격이 있었고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공격이 팔레스타인 주민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봉쇄와 불법 점령으로 팔레스타인의 빈곤율과 실업률이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팔레스타인 점령을 말하지 않고 오직 하마스의 '선을 넘은 저항행위'만 문제 삼는 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원망스러운 일일 거예요."

- 인권·평화운동가로서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생각도 복잡하고, 현지 활동가나 주민들과 괴리되는 지점 때문에 고민이 있으실 것 같아요.

"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만 저항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은 분명히 있습니다. 무차별적 민간인 공격은 허용할 수 없어요. 아디와 연대하는 팔레스타인 활동가들도 이에 대한 공감대는 있습니다. 다만 주민들은 입장이 다양합니다. 제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더 큰 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걱정하자 '지금 폭격으로 당장 죽으나 다음 폭격으로 나중에 죽으나 똑같다'라는 답변을 듣기도 했어요.

저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군부가 모두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봅니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무차별적 공격한 것은 분명한 학살행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시오니즘(유대인 국민국가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 운동)세력 역시 국제법도 무시한 채 분리 장벽을 유지하고 불법 정착촌을 계속 건설한다는 점에서 양극단의 문제점을 균형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마다 손글씨로 "팔레스타인"... 그들은 간절하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평화여행을 진행하는 이동화 회원
ⓒ 이동화
 
- 이렇게 팔레스타인 이슈에 천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3년 이라크에 가서 반전 평화운동을 했어요. 그러면서 한국이 파병한 데 대한 미안한 마음, 당시 저를 맞이했던 아랍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 등을 느꼈어요. 그래서 중동의 평화를 주제로 활동을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랍어를 배우려고 2005년 요르단대학 어학센터에 공부하러 갔지요.

아랍어를 공부하다 보니 팔레스타인 이슈가 저절로 와 닿았어요. 중동 전체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문제니까요. 어느 날 요르단대학 도서관에서 지도를 보는데, 당시 지도에는 팔레스타인이 표기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도책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손글씨로 '팔레스타인'이라고 다 써놓은 거예요. '여기 우리가 있다'라고 말하는 듯한 간절함이 절실하게 다가왔어요. 제 활동의 시작은 그 지도책에 손으로 표시된 '팔레스타인' 표시였던 것 같아요."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10년간 활동하다가 '아시아 분쟁지역의 인권과 평화를 지키는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단법인 아디를 꾸렸습니다.

"저는 민변에서도 국제연대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단체의 국제연대 활동은 한국 이야기를 해외에 알리는 일이 주를 이룹니다. 이를테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인권 후퇴 상황을 알리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청하는 거죠. 그런데 좀 부끄러웠어요. 미얀마·팔레스타인 등 아시아 분쟁지역에서는 하루하루 생존권이 위태로운데, BTS와 삼성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이런 문제에 무관심한 채 도움만 요청한다는 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정말 한국처럼 되길 바라요. 역사의 궤적이 비슷해요. 점령과 내전, 독재를 겪었잖아요. 지금 한국은 어느 정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룩했죠. 국제사회가 독재 정권으로부터 탄압받던 한국 시민에게 지지와 지원을 보냈듯이 이제 한국도 아시아 분쟁지역 사람들의 인권과 평화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할 때가 됐습니다. 그런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 올해 초에 참여연대 회원 가입을 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2001년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부터 저는 참여연대의 오랜 팬이었어요. 투쟁적이고 계급적인 방식이 아닌 새로운 운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운동을 하는 곳이 참여연대라고 생각했어요. 배울 게 많은 단체라고 늘 생각했는데 회원 가입이 늦었습니다. 요즘 참여연대가 30주년을 앞두고 모금 캠페인에도 힘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응원과 지지의 손길을 보태고 싶어서 늦게나마 함께하게 됐습니다."

- 아디 활동가로서 시민단체 참여연대에 바라는 점은 없으신가요?

"참여연대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제 몫을 충분히 하는 단체입니다. 저는 참여연대가 활동가들에게 행복한 일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세상과 맞서 싸우는 동력은 결국 서로에 대한 활동가들의 신뢰와 지지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지원하는 긴급 모금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오늘도 그는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가들의 안전을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아디의 활동가들이 행복하고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행복하고 나아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참 한결같았다.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인 이동화 회원
ⓒ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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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2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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