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절임 배추 택배... 이런 전화를 두통이나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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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 기자]
▲ 김장을 위한 절임배추 |
ⓒ 구교형 |
예전에는 옛 번지 주소로 배송했는데 몇 년 사이에 다 잊어버려 이번에는 새 도로명 주소를 익혀야 했다. 워낙 동네가 훤해서 하루 돌아보니 도로명도 금세 눈에 익었다. 이번 주간에는 그렇게 추억의 가리봉동을 돌아다녔다.
가끔은 유난히 일이 몰리는 날이 있다. 본격적인 김장철이라 절임 배추가 매일 들어온다. 절임 배추 상자는 두껍고 단단해 쌓기 좋지만, 배추와 소금물이 함께 들어 있어 제법 무겁다.
아침부터 구역을 돌며 열심히 배송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겨우 받으니 어디 사는 고객이라며 절임 배추 언제 오느냐며 재촉한다. 대충 예정 시간을 가르쳐 주고 끊었다. 절임 배추로 신경이 쓰이는데, 1시간 후쯤 다시 전화가 왔다.
속을 다 해놓고 무도 절여놓았는데, 절임 배추가 언제 오냐는 또 다른 고객이다. '또 절임 배추!' 택배사와 상의해 김장을 하는 것도 아닌데 택배기사가 김장 시간까지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번이나 같은 전화를 받으니 약간 짜증이 났다. 고객이 있는 곳과 배송하고 있는 곳은 차로 직행하면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그러나 우리의 계산대로라면 1시간 넘게 걸린다. 그렇게 대답하니 고객이 이해를 못 한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논리와 책임소재를 떠나 김장 중에 배추가 없는 사정이 머리에 그려지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이런, 속히 가야 할 절임 배추가 두 곳이라니! 일은 힘들어도 괜찮으니 마음 편히 배송하면 좋겠다.
7~8년 전 내게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 교회는 원하는 교인들이 예배당에 모여 교회 김장과 각 가정의 김장을 함께 했다. 10여 명의 교회 식구들이 함께 썰고, 버무리고, 비비고, 나중에는 배추쌈에 수육도 싸 먹었다. 남자들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아이들은 떠들며 부산 떨고 왁자지껄 즐거웠다.
준비 작업을 다 마쳐도 주문한 배추가 오지 않으니 초조해졌다. 미안하지만 할 수 없이 전화해 언제쯤 올지 묻고는 기다리며 조바심을 태웠다. 한참 후 택배차가 도착했다. 그런데 교회가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3층이다. 남자들이 모두 내려가 절임 배추 수십 상자를 지고 올라왔다. 나는 택배기사에게 수고했다며 따로 수고비를 챙겨드렸다.
절임 배추에 대한 부담
세월이 흘러 이젠 내가 그 절임 배추를 나르고 있다. 아무튼 두 곳의 절임 배추를 생각하며 앞선 곳 배송을 서두르는데 이번에는 골목에 세워둔 차를 빼달라고 아우성이다. 이 골목 다 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할 수 없이 적당한 곳에 차를 다시 세워두고 이전 골목으로 다시 가서 나머지 물건을 배송한다.
그런데 화장실도 가야 한다.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인지 머릿속이 분주하다. 소변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하는데 절임 배추가 생각나니 부담이 더 커졌다. 이런 날은 평소 오지 않던 전화까지 몰려든다.
어찌어찌 해결 후 중간 배송지는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절임 배추 고객에게 먼저 달려갔다. 그 집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 배추를 내려놓고 부르니 60대 어르신이 나와서 눈 빠지는 줄 알았다 하신다. 나도 빨리 오려고 몇 군데 건너뛰고 왔다 하니 고맙다고 하신다. 그리고 또 다른 절임 배추로 달렸다. 오늘의 배추 배송은 끝!
이렇게 마음이 다급하고 복잡할 때는 집중력이 떨어져 배송에 소홀해지기 쉽다. 그날도 그랬다. 결국 그날 두 곳의 배송을 잘못한 게 며칠 후 확인되었다. 요즘에는 잘못 배송해도 곰곰이 추적해 찾아내거나 뜬금없는 물건을 받은 분에게서 찾아가라는 연락이 와서 거의 찾는다.
오랜만에 다시 간 가리봉도 여기저기 재건축 현수막이 붙었고 이미 신축을 끝낸 집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네 구조는 바뀐 게 없다. 여전히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이 많고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도 많다.
처음에는 집 찾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아직도 기억난다. 층마다 여러 세대가 있는 곳은 집을 찾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202호에 배송하려고 무작정 계단을 오르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한두 번 아니다. 올라간 2층에는 201호만 있으면 난감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면 담을 가로질러 다른 계단이 있다.
이처럼 집을 찾았다고 해도 앞문인지 뒷문인지, 오른쪽 계단인지 왼쪽 계단인지, 심지어 같은 집인데도 아예 다른 골목을 돌아 세대가 따로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80년대 이전에 지은 건물이 다수인 가리봉동에서는 흔한 일이다.
몇 번 실수한 후에는 만만치 않아 보이는 집을 볼 때마다 올라가기 전에 먼저 둘러보고 가능성을 따져본 후 판단해서 올라간다. 그러다 보면 처음 가는 집도 웬만하면 바로 호수를 찾아내게 된다.
▲ 수레를 잘못 놓으면 큰 낭패를 본다. |
ⓒ 구교형 |
특히 무거운 물건을 여러 개 들고 올라갈 때는 끙끙대며 온 힘을 집중해야 하므로 층수 세는 걸 깜빡 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문뜩 층수를 보니 한참 올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 층이 남았다. 그때 아연실색한다. 이보다 더 허탈한 때도 있다. 힘들게 올라가 확인해 보니 한층 더 올라갔을 때의 안타까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트럭 운전만큼 신경 쓰이는 게 수레 관리다. 골목마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수레에 물품을 싣고 다닌다. 수레로 배송할 때는 자칫 물건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자주 살펴야 한다. 물건을 많이 실었을 때는 작은 굴곡과 경사에도 물건이 쏟아지기 쉽기에 조절을 잘해야 한다.
수레를 세워놓을 때도 다른 곳으로 굴러가지 않도록 경사와 높낮이를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젠가 수레를 두고 물건만 들고 몇 층을 올라가다가 수레가 미끄러져 가는 소리가 들려 황급히 뛰어 내려가 골목 끝자락에서 겨우 붙잡아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사람을 치거나 다른 물건 또는 주차한 차라도 긁으면 낭패를 볼 일이었다.
요즘 시대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옛 추억이나 떠올리는 중년 남자를 '아재'니 '꼰대'니 쉽게 말하는 게 유행처럼 되었다. 물론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택배 현장에서 만나는 아재들은 자기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우직한 소처럼, 운명처럼 또 하루의 과업을 해내는 무거운 가장이었다.
청년은 청년대로,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워킹맘과 아재들은 또 그들 나름의 자리를 지켜내느라 남이 알지 못하는 고된 짐을 지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그때 어려움을 정말 잘 견뎠구나'하고 스스로 칭찬할 날이 올 것을 믿고 오늘 하루 힘을 내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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