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영국 의회 연설…"韓英 긴밀히 연대해 도전에 응전해야"
한영 관계 과거·현재·미래 관통해 협력 당부
연설 제목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구절 응용
영국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역동적인 창조의 역사를 써 내려온 한국과 영국이 긴밀히 연대해, 세상의 많은 도전에 함께 응전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의 영국 의회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문명은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발전한다'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명언을 인용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 대통령이 영국 의회에서 영어 연설에 나선 것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윤 대통령이 2번째다.
이번 윤 대통령의 연설은 도전을 기회로 바꿔줄 양국의 우정 (A friendship to turn our challenges to pure opportunity)'을 제목으로 30여분간 영어로 진행됐다. 이번 연설 제목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응용해 인용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국정운영·외교 기조로 그간 자유·평화·번영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우선 "'의회의 어머니'인 영국 의회에 서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영국은 근현대 세계사의 개척자였다. 자유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고 시장경제 질서를 꽃피웠다. 개인의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영국 국민들의 신념은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태동시켰다"고 평가했다.
또한 "영국의 의회민주주의 확립은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의 정치혁명으로 확산됐고, 세계 곳곳에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민주정치가 정착됐다"며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이 주도한 산업혁명은 생산양식과 경제 패러다임의 혁신을 통해 종래 인류 역사에서 겪어보지 못한 초고속의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고 덧붙였다
영국 의회에 대해서도 "이러한 점에서 19세기 초부터 런던이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된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영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선도하고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인류의 자유와 인권 신장, 그리고 비약적인 성장과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이러한 위대한 영국을 이끌어온 핵심이 바로 영국 의회임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수교 140주년을 맞은 한영 관계의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며 긴밀한 협력을 당부했다. 1883년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래 140년간 영국과 영국인들이 한국을 위해 펼친 헌신도 일일이 설명하며 사의를 표했다. 1887년 신약성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한국 독립운동에 앞장선 어니스트 베델, 세브란스 병원 수의학자로 한국에 와 독립운동·장학회 설립을 주도한 프랭크 스코필드 등을 직접 실명으로 언급했다.
6.25 전쟁 당시 영국이 한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한 것에 대해서도 참전 용사들을 호명하며 감사를 표했다. 윤 대통령은 "제임스 칸 중령이 이끄는 영국의 글로스터 1대대는 임진강 설마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며 "'우리는 행동으로 기억된다'는 글로스터 부대의 구호처럼, 영국군의 숭고한 희생은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의회 연설에 참석한 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대한민국의 명예 보훈장관인 콜린 태커리 옹을 언급하며 사의를 표했다.
영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통해 반도체, 디지털, 문화 콘텐츠 등을 선도하는 강국이 된 한국이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영 관계를 새롭게 쓰겠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이번 윤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 다우닝가 합의,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외교 관계 격상 등을 통해 경제·안보 전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보다 개방되고 자유로운 국제질서를 영국과 함께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그리고 영국과 함께 인류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번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핵 위협, 중동문제, 공급망 분절화, 기후 위기 등 국제사회에 닥친 복합위기를 영국과 함께 극복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혼자 지켜낼 수 없다. 한국은 영국, 그리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불법적인 침략과 도발에 맞서 싸우며 국제규범과 국제질서를 수호해 나갈 것"이라며 "인도 태평양 지역의 정치적 안보와 경제 안보를 튼튼히 하는 데 함께 힘을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전·수소 등 청정에너지 분야와 디지털 협력도 당부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한 바 있고, 영국도 이달 초 리시 수낙 총리가 AI 정상회의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또한 우리 양국은 자랑스러운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만들어 온 공통점과 함께 문화예술의 매력도 지니고 있는 만큼 협력하자는 뜻도 전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이 비틀즈, 퀸, 해리포터,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엔 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토인비 이외에도 윈스턴 처칠 수상의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는 명언을 인용하며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에 기여하자"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끝으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인 '우리의 우정이 행복을 불러오고, 우리가 마주한 도전을 기회로 바꿔주리라'라는 말을 통해 영국과 영국의 미래 협력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 종료 때 참석자 전원에게 약 30초간 박수를 받았다. 존 맥폴 영국 의회 상원의장은 윤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던 것을 언급하며 이날 노래를 듣지 못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런던=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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