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한밤 정찰위성 쐈다

정영교, 이근평 2023. 11. 2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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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1일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를 감행했다. 지난 8월 24일 재발사에 실패한 지 89일 만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후 10시47분쯤 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북한이 남쪽 방향으로 ‘북 주장’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다”고 공지했다. 앞서 북한은 오는 22일 0시부터 30일 자정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일본 정부에 통보한 바 있다. 예고 시간보다 1시간가량 빨리 기습 발사한 것이다.

일본 방위성도 “북한이 탄도미사일 가능성이 있는 물체를 발사했다”며 10시46분 일본 본토 남서쪽 오키나와현 일대에 피난 경보를 발령했다. NHK방송 등 일본 언론들도 방위성 발표에 이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북한이 밝힌 위성 발사체 잔해물 낙하 예상 지점은 북한 남서쪽의 서해 해상 등 2곳과 필리핀 동쪽 태평양 해상 1곳으로, 지난 5월 1차 발사와 8월 2차 발사 당시 잔해물 낙하지점으로 발표한 장소와 동일하다.

북한은 지난 5월 31일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을 발사했지만 2단 로켓 점화에 실패해 전북 군산 어청도 서쪽 200여㎞ 해상으로 추락했다.


연말 성과 절실한 김정은, 정찰위성 쏴 핵 고도화 전략

이어 8월 24일에는 1단부와 페어링(1단과 2단 연결부위)은 비교적 북한이 예고한 지역 비슷한 곳에 떨어졌으나, 2단 추진 단계부터 비정상 비행하는 등 발사에 실패했다. 2단부는 예고 구역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떨어졌다.

신재민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9일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을 접견한 이후 한 달 넘게 ‘잠행 모드’를 이어가다가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도발을 감행했다. 우리 군이 ‘최후통첩’ 성격의 대북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데 이어 정부도 9·19 남북군사합의(이하 9·19 합의) 효력 정지를 시사했는데 “할 테면 해보라”는 반응을 내놓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9·19 합의를 통해 누리고 있는 군사적인 이점을 포기하더라도 숙원사업 중 하나인 군사정찰위성을 보유해 핵 능력 완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선택을 한 게 아니냐고 분석했다. 발사를 서두른 데는 오는 30일로 예정된 한국의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보고 있다.

북한은 그간 남북 간의 각종 합의를 판판이 깨면서도 9·19 합의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9·19 합의가 그만큼 북한에 군사적인 이점이 컸다는 방증이다. 이에 우리 군은 지난 20일 “북한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한다면 우리 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며 위성 발사 시 9·19 합의 일부를 효력 정지하겠다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공을 넘겨받은 김 위원장의 대답은 “마이웨이”인 셈이다. 9·19 합의의 무력화로 인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대내외적으로 공언한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해 위신을 세우고, 핵·미사일 고도화라는 더 큰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찰위성은 북한이 보유한 각종 미사일의 위협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미국의 최신예 전략자산이 수시로 전개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감시·정찰 능력을 배가시키는 동시에 핵무기 운용에 필요한 지휘·통신체계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또 연말 결산 기간을 앞두고 내세울 만한 성과가 절실한 김 위원장 입장에서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골몰해 온 핵·미사일 개발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내부 결속까지 확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2021년 1월 8차 당 대회에서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의 5대 핵심 과제에 군사정찰위성 개발을 포함했다.

이에 더해 한국이 30일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내놓은 것도 북한의 경쟁 심리를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은 오는 30일 미국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우리 군의 첫 군사정찰위성을 스페이스X의 ‘팰컨9’를 이용해 발사할 예정이다.

한국보다 선제적으로 위성을 쏘아올려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주도권을 북한이 쥐고 있는 것처럼 과시하는 한편, 위성 발사로 포장한 도발을 하면서도 “한·미의 군사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자위권 차원의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억지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한 측면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실패로 끝난 1·2차 발사와 달리 북한이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까지 최종 성공한다면 러시아의 기술 지원에 도움을 받았을 것이란 국내외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난 9월) 정상회담 후에 러시아 기술진이 들어온 정황이 있다”며 “주로 엔진 계통의 지원을 받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는 20일(현지시간) 북한이 일본 측에 위성 발사 계획을 통보한 것과 관련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및 북·러 기술 이전 가능성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미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나오지 않더라도 북한의 3차 위성 발사에 러시아의 기술이 제공된 것은 사실상 확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위성 개발과 발사에 관여한 기관·개인에 대한 제재를 연쇄적으로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앞서 북한이 위성을 발사할 경우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중지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을 수행 중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관계발전법에 국가 안보를 포함한 중대 사유가 발생할 경우 남북 합의의 부분 또는 전체에 대해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며 “북한의 도발 내용과 폭에 따라 9·19 남북 군사합의 내용에 대해 우리가 필요한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 해군 제1항모강습단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함(CVN-70)이 이날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미 항모의 부산 입항은 지난달 12일 로널드 레이건함(CVN-76)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칼빈슨함의 입항은 한·미가 사전에 협의한 사안이었지만, 입항 기간 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이뤄진 만큼 한·미의 강도 높은 연합 대응훈련이 뒤따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 관계자도 전날 “(북한이 위성) 발사를 강행한다면 연계해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했었다.

정영교·이근평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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