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평화로운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 만토바 #여행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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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OVA
만토바, 작지만 큰 보물
롬바르디아 주의 만토바. 16세기 곤차가 가문이 다스리던 만토바 공국의 화려하고 평화롭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 삼면을 강이 감싸고 있어 자연적으로 해자 구조가 형성된 요지이기도 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 첫 챕터에 등장하는 이사벨라 데스테, 그녀는 프란체스코 2세 곤차가와 결혼해 특유의 교양과 미감으로 만토바에 르네상스 기운을 한껏 불어넣는다.
이사벨라는 만토바 두칼레 성에 줄리오 로마노를 불러들여 화려하고 견고한 터치를 더하는가 하면, 당대 최고의 화가 만테냐에게 커다란 방 벽면을 채울 곤차가 가문의 프레스코화를 주문한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식의 완전한 조화 속에 머물기를 즐겼다. 늦은 오후 두칼레 성을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는데, 공교롭게도 아무도 없어 적막감만 맴돌았다. 500여 년이 지나 흔적이 벗겨진 프레스코화 속 장면들은 이제 절반쯤 추상이 돼가고 있었다. 축적된 시간의 실체가 눈앞에 있다는 건 믿기지 않으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는 엄정한 순간이다.
예약한 식당 ‘라 쿠치나(La Cucina)’로 갔다. 전통적 이탈리아 스타일이 아닌, 우드와 화이트 계열의 모던한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미식은 자부심에 있다. 병아리콩 후무스를 곁들인 대구구이와 송아지 스테이크, 구운 감자를 주문했다. 거기에 롬바르디아산 만토 샤르도네 한 잔으로 목을 축이니 더위에 처진 기운이 되살아났다. 튀니지언 크루들의 민첩하고 친절한 서빙, 백발임에도 체격이 다부진 시뇨레의 멋진 감색 재킷,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리드미컬한 이탤리언들의 끊임없는 이야기까지. 관광객이라곤 우리뿐인 테이블에서 만토바의 진정한 저녁을 맛본 순간이었다.
숙소는 시내에서 떨어진 산 안토니에 있는 농가 호텔 ‘코르테 만토바넬라(Corte Mantovanella)’다. 조반니와 줄리아 부부가 운영하는, 방이 네 개뿐인 정감 어린 곳이다. 과거 장인과 농부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넓은 부지에 아담한 안채 하나가 있는데, 그 건물 2층에 우리 방이 있다. 침대 맡에 드리워진 새하얀 리넨 캐노피, 그 아래서 휴식하고 잠자는 일은 아늑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것이 만토바식 데커레이션일까. “예전 왕이나 왕비의 침실을 보면 늘 두꺼운 캐노피로 드리워져 있잖아요. 그게 재미있어서 우리식으로 꾸며본 거예요.” 주인 조반니가 말한다. 수년간 모았다는 18세기 스틸레 리베르티(아르누보의 이탤리언식 표현) 가구들, 에메랄드 블루와 브릭 컬러의 벽면. 타고난 명랑조를 지그시 누르는 무게, 그 조화가 창밖의 푸르름을 통과한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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