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노하우' 받은 김정은, 예고보다 앞당겨 군사위성 쐈다
북한이 21일 밤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감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방러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관련 기술 지원을 요청한 지 두 달여 만으로, 예고한 시점보다 1시간여 빨리 발사해 허를 찌르는 모양새를 취했다.
합동참모본부는 21일 오후 10시 47분 출입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북한이 남쪽 방향으로 ‘북 주장’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11시50분 "우리 군은 이날 오후 10시 43분께 북한이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발사해 백령도 및 이어도 서쪽 공해 상공을 통과한 '북한 주장 군사정찰위성' 1발을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쏜 정찰위성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는지 분석 중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단언하긴 이르지만 오키나와를 통과해 경보가 해제되고 태평양 방향으로 날아갔다는 일본 정부 발표로 미뤄볼 때 현재까진 정상 비행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북한의 발사는 전격적이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날 오전 북한이 “22일 0시부터 12월 1일 0시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라며 3곳의 위험구역을 설정하겠다는 계획을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고한 발사 시점보다 한 시간 이상 빨리 위성을 쏘아올렸다.
이를 두고 22일을 기점으로 위성 발사에 대비하던 한국 정부의 허를 찌르기 위해 북한이 날짜와 시간대를 교묘하게 조절한 ‘기습 발사’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19일 “(북한이 3차 정찰위성을)1주일 전후로 쏠 수 있는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동향 분석 결과를 공개했고, 군은 이튿날인 20일 북한이 3차 위성 발사 감행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이례적으로 선제적 경고메시지 발신에 나섰다.
북한이 22일 0시를 기점으로 발사 계획을 통보하자 군은 22일 발사 가능성을 높게 분석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1차 ·2차(발사) 때는 (예고 기간의) 첫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새벽에 발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런 가능성을 보고 있고, 또 기상 관계도 봐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보란듯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3차 발사를 시도했다. 한밤 기습 발사는 한·미·일의 탐지 능력을 가늠해보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적 차원보다는 기만술일 가능성이 높다”며 “국제사회에 통보한 시간보다 이르게 발사해 기습성을 과시하고, 야간 시간대에는 한·미 정찰 자산의 감시와 관측을 주간 시간대보다 상대적으로 피하기 쉽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기습 발사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정부가 북한의 위성 발사 정보를 공개하고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만큼 북한으로선 모든 전략이 들통나 발가벗겨진 상태이고, 결국 고육지책으로 발사 시점을 앞당겨 기습적인 발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북한의 발사 준비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던 만큼 이마저도 결국 ‘예고된 발사’에 불과하며, 남은 건 북한이 무력 도발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 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위성 발사에 실패한 뒤 곧바로 10월 세번째 발사를 예고했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10월을 그냥 넘겼다. 3차 발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9월 방러해 약속받은 러시아 측의 기술을 전수받는 데 시간이 소요돼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김정은의 ‘택일’은 러시아의 위성 발사 노하우를 충분히 소화해 성공 자신감을 키운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또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두 개의 전쟁에 관여하는 상황을 기회의 창이 열린 것으로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한정된 자원으로 유럽과 중동의 분쟁 상황에 더해 한반도 유사 상황에도 기민하게 대응할 것인지 시험해보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이 위성을 궤도에 올린다면 러시아가 기술적 조언을 제공했을 것이란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군 당국은 지난 5월과 8월 이뤄진 1·2차 정찰위성 발사는 2단 추친체 비행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이 이날 위성 발사를 예고하면서 1·2차 발사와 동일한 3곳에 위험구역을 설정하겠다고 통보한 만큼 기존 로켓 엔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술적 조언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난 9월) 정상회담 후에 러시아 기술진이 들어온 정황이 있다”며 “주로 엔진 계통의 지원을 받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북한이 러시아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한 액체연료 엔진으로 위성 발사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러시아 기술진의 ‘원 포인트 레슨’이 가능할 것이란 설명이다.
일각에선 위성체와 관련한 지원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조악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카메라 등 광학 장비를 보완해 정찰·감시 능력을 증강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도 “러시아가 자국에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기술 전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구체적인 기술보다는 위성체를 전격 지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김정은이 탄약과 포탄을 지원한 대가로 위성 관련 핵심 기술을 넘겨주는 것은 등가성이 성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타적인 핵보유국 지위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가진 러시아의 기존 입장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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