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오명’ 단숨에 털어낸 종근당…노바티스가 찜한 ‘CKD-510’
종근당이 초대형 규모 기술 수출 주인공이 됐다. 종근당은 최근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신약 후보물질 ‘CKD-510’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CKD-510 관련 국내 R&D와 상업화 권리는 종근당이 보유하고, 한국을 제외한 CKD-510의 전 세계 연구개발(R&D) 권리와 상업화 권리를 넘기는 방식이다. 총 계약금은 13억500만달러(약 1조7302억원). 종근당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이자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기술 수출 사례 중 두 번째 금액이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고금리로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이뤄낸 제대로 된 성과”라고 입을 모은다.
증권가 반응도 뜨겁다. 그간 종근당의 약점으로 꼽혔던 ‘연구개발’ 역량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리포트가 쏟아진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선입견을 깨뜨린 한 방’ 리포트를 내고 “개발 방향과 타깃 시장 등을 추정하기는 이른 단계지만, R&D 성과가 미흡하다는 시장 편견을 깨뜨린 기술 이전 계약”이라며 “종근당 기업가치가 한 단계 올라갔다고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목표주가도 상향 조정됐다. 이번 기술 이전 계약 중 확정 계약금 등이 당장 4분기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 유진투자증권은 종전 10만원에서 15만원으로, 키움증권과 삼성증권 등은 11만원에서 15만원으로 높여 잡았다.
HDAC6 억제제…임상 1상까지 완료
노바티스가 2조원에 가까운 돈을 꺼내들게 만든 CKD-510의 매력은 뭘까.
CKD-510은 종근당이 2010년부터 연구해 자체 발굴한 물질로 히스톤탈아세틸화효소6(HDAC6·Histone Deacetylase6) 억제제로 불린다. HDAC는 유전 정보를 가진 DNA의 변형을 유발한다고 알려졌다. 사람 몸속에는 총 11개 HDAC가 있는데, 이 중 6번이 암이나 신경퇴행성 장애 원인이 된다고 알려졌다. CKD-510은 이를 콕 집어서 억제하도록 작용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HDAC 억제 관련 연구는 여럿 있었다. 다만 대부분 암 치료에 초점이 맞춰졌다. 대표 사례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된 항암제 졸린자(MSD)와 이스토닥스(BMS), 벨레오닥(스펙트럼) 등이다. 반면 종근당은 비항암 분야인 심혈관 질환과 퇴행성 신경 질환 등을 겨냥했고, 6번 HDAC를 겨냥한 HDAC6 억제제를 고민해왔다. 권해순 애널리스트는 “같은 기전의 유사한 연구개발 과제들이 항암제로 개발됐거나 개발되고 있다”며 “종근당은 항암제뿐 아니라 주로 비항암 영역 내 심혈관 질환, 자가면역 질환, 퇴행성 신경 질환 등을 겨냥했다”고 설명했다.
노바티스 역시 종근당과 마찬가지로 HDAC 중에서도 HDAC6 억제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2015년에는 HDAC6 억제제 ‘파리닥’을 다발골수종 치료제로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 가속 승인까지 받았다. 상업화 단계 직전까지 진행했지만, 시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이후 해당 판권을 미국 세큐라바이오에 매각했다.
세큐라바이오는 추가 임상을 진행하는 등 개발에 힘을 줬지만, 유효성을 입증 못하고 신약허가신청(NDA)을 자진 취하했다. 만약 CKD-510이 상업화에 성공하면 ‘First-in-class(계열 내 최초 신약)’가 되는 셈이다. 현재 CKD-510은 비임상(동물 대상)과 임상 1상(건강한 사람 대상)까지 진행된 상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4분기 실적 직결…이익률 20%대 전망
이번 계약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확정 계약금(Upfront Payment)’ 규모다.
제약·바이오업계 기술 수출 관련 계약금은 크게 2가지로 분류된다. ‘당장 받을 수 있는 돈’과 ‘단계별 성공 보수’다. 총 계약금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단계별 성공 보수다. 업계는 이를 마일스톤(Milestone)이라고 부른다. 신약 물질을 사들인 곳이 전임상 → 임상 → 허가 신청 → 품목 허가 등 신약 개발 단계를 거칠 때마다 거래 상대방에 비용을 지급하는 형태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시장·기업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 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결국 곳간에 도움 되는 것은 당장 받을 수 있는 돈, 즉 확정 계약금이다. 반환 의무가 없는 돈으로 통상 계약 직후 수개월 내 지급된다. 종근당 역시 연내 확정 계약금을 받을 전망이다. 확정 계약금은 신약 물질의 유망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기도 하다. 상업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수록 거래에서 확정 계약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통상 총 계약금이 조 단위인 ‘빅딜’의 경우 확정 계약금 비중은 5% 안팎이다. 종근당과 노바티스 거래는 이를 소폭 웃돈다. 양 사가 체결한 확정 계약금은 8000만달러(약 1061억원). 전체 계약금의 6.1% 정도다.
1000억원대 확정 계약금에 힘입어 4분기 실적도 날개를 달 전망이다. 키움증권은 ‘첫 빅파마 계약인데, 완벽했다’ 리포트를 내고 종근당의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5144억원, 1113억원으로 내다봤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영업이익은 641% 증가한 수치다. 전망치가 현실화될 경우 영업이익률만 20%가 넘는다. 허혜민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계약금이 4분기에 들어와 4분기 호실적이 전망된다”며 “2024년 역기저 효과가 불가피한데, 이는 시장에서 이미 인지하고 있어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꾸준한 개발 10년 만에 결실
R&D 비중, 매출 대비 11~12%
종근당 기업가치도 재평가될 전망이다. 종근당은 늘 ‘혁신 신약’을 외쳐왔다. 그러면서 연구개발에 많은 자원을 쏟아부었다. 투자비만 매년 1000억원 이상이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R&D 비용은 1496억원, 2021년 1634억원을 기록하더니 2022년 1813억원까지 늘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 대비 R&D 비중은 ▲2020년 11.4% ▲2021년 12.1% ▲2022년 12.1%다. R&D 인력도 꾸준히 확보하며 현재 563명이 용인 효종연구소와 본사 제품개발본부, 신약개발본부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노력 대비 결과가 아쉬웠다. 그동안 딱히 R&D 성과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자연스레 종근당의 R&D 역량은 앞서 초대형 기술 수출에 성공한 유한양행과 한미약품 등 경쟁사에 가려졌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종근당의 저평가 요인 중 하나로 R&D 성과 부진을 꼽았다. 이 같은 상황은 당연히 기업가치와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R&D는 그야말로 종근당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번 CKD-510 기술 수출로 평가는 뒤집혔다. 허혜민 애널리스트는 “첫 빅파마 계약인데도 높은 확정 계약금 비율(6.1%)과 적합한 파트너사 선정 등 양질의 계약을 성사시켰다”며 “오랜 시간 R&D 투자 대비 성과가 없다는 점이 주가 할인 요소로 작용했는데, 이번 계약으로 R&D 재평가가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정유경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도 “글로벌 제약사와 2조원에 가까운 기술 수출을 맺은 것은 종근당의 R&D 기술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것”이라며 “이번 계약을 통해 추가 파이프라인의 기술 수출 가시성이 높아지고, 신규 품목 도입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종근당은 이번 기술 수출로 R&D 역량이 빛을 보면서 짐을 덜어 홀가분해하는 표정이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는 “(CKD-510은) 회사가 매년 매출액 대비 12%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꾸준히 투자해 개발한 혁신 신약 후보물질”이라고 했다. 종근당은 이번 기술 수출에 힘입어 다양한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종근당은 현재 5개 신약 후보물질을 임상시험 혹은 품목 허가 단계에 올려놨다. CKD-510을 비롯해 ‘CKD-508(이상지질혈증)’ ‘CKD-512(암)’ ‘CKD-943(요독성소양증)’ ‘CKD-702(암)’ 등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5호 (2023.11.22~2023.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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