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고 쪼개고…SK디스커버리, 숨 가쁜 변신
SK그룹 내 별도 지주사 체제를 갖춘 SK디스커버리그룹이 신재생·친환경에너지를 중심으로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주력 계열사 SK가스는 수소 사업에 속도를 내는 한편, SK디앤디는 인적분할로 ‘에코그린(가칭)’을 신설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존재감을 키운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은 독자 경영 행보에 나선 이후 기존 주력 사업과 신사업 간 차별적인 조직 관리에 능수능란했다. 앞으로도 최 부회장은 기존 주력 사업부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신사업군을 집중 육성하는 ‘양손잡이 경영 전략’을 펼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SK디앤디 인적분할
에코그린 에너지 사업 전담
SK그룹은 ‘큰집’의 최신원, 최창원 형제와 ‘작은집’의 최태원, 최재원 등 네 형제가 그룹 계열사를 맡아 경영해왔다. 이 가운데 최창원 부회장은 SK그룹을 세운 故 최종건 창업주의 막내아들이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사촌 관계다. 최 부회장은 SK그룹 안에서 소그룹 형태로 SK디스커버리그룹을 마련해 사실상 독자 경영 중이다.
지주사 SK디스커버리는 SK가스(LPG·LNG·수소), SK케미칼(그린·리사이클링 소재), SK플라즈마(의약품 전문), SK디앤디(부동산 개발·신재생에너지), 한국거래소시스템즈 등 5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SK케미칼과 SK가스 등은 연결 대상 상장 자회사, SK디앤디와 휴비스 등은 지분법 대상 투자 자회사로 각각 구분된다. 손자회사로는 SK바이오사이언스(백신)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SK디앤디는 SK디스커버리가 지분 34%를 보유한 자회사지만 내년 신재생에너지 신설 법인 에코그린의 인적분할이 완료되면 SK디앤디와 에코그린이 지주사 산하 자회사로 수평적으로 배치된다. 즉, 현재 5개 자회사, 1개 손자회사에서 6개 자회사, 1개 손자회사 체제로 재편된다.
SK디스커버리는 숨 가쁜 사업 재편을 벌이는 중이다. 지금까지 그룹 주력 사업이 화학, 가스, 바이오였다면 앞으로는 친환경 소재, 신재생에너지로 힘이 실리는 구도다. 인적분할을 통한 자회사 조직 재배치, 각 자회사 신사업 등을 하나로 꿰는 키워드 역시 ‘친환경’이다. 반면, 코로나 백신 수혜 기대감으로 2020년과 2021년 실적 성장을 견인했던 바이오 부문은 힘이 빠지게 됐다. 코로나 팬데믹 종료로 SK케미칼은 제약사업부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SK바이오사이언스로 바이오 사업을 일원화한다기보다 그린케미칼(친환경 소재) 설비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용으로 분석된다.
최근 SK디스커버리에서 조금씩 존재감을 키우는 계열사는 SK디앤디다. SK디앤디는 2000년대 SK그룹 부동산 개발 사업을 도맡았다. 부동산 개발업은 업황 부침이 커 2008년 태양광발전을 시작으로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연료전지 등으로 에너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이익 변동성을 줄여왔다. 그럼에도 부동산과 에너지 사업은 서로 투자 사이클과 현금 회수 기간 등이 차이가 커 시너지를 내기 어려웠다.
결국 지난 9월 말 SK디앤디는 인적분할로 에너지 사업을 도맡는 신설 법인 에코그린을 설립하기로 했다. 에코그린이 친환경에너지 사업을 영위하며 SK디앤디는 부동산 개발·운용을 전담한다. 분할 완료 뒤 에코그린은 지주사 SK디스커버리 아래 자회사로 배치돼 지주사와 성과를 공유한다. 박세라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분할을 계기로 각 사업이 전문 영역으로 나눠지면서 저평가 요인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내년 3월 인적분할이 완료되면 에코그린은 현 SK디앤디의 신재생에너지와 ESS 사업 부문을 가져간다. 현재 SK디앤디는 육상·해상풍력, 연료전지, 태양광, ESS 등 총 3GW의 개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는 풍력이 1.2GW로 가장 크며 연료전지(0.4GW), ESS(0.2GW) 등이 뒤를 잇는다. 눈독 들이는 신사업은 전력 중개 사업이다. 향후 기존 SK디앤디가 보유한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ESS 자원의 개발·운영 노하우에 IT를 접목해 발전량 예측을 기반으로 전력 중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영국계 신재생에너지 투자사인 글렌몬트와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수소 청사진 주목
SK디스커버리의 주력 계열사인 SK가스는 본업인 LPG 사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LPG·LNG 복합발전에 돌입한 뒤 수소혼소를 거쳐 100% 수소발전에 이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SK가스는 크게 LPG 사업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둔 ‘비즈니스 시프트 1.0’에서 LNG 사업과 발전 사업, 수소 사업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시프트 2.0’을 진행 중이다.
특히 수소 사업을 2단계로 진행하겠다는 청사진이 주목받는다. SK가스는 2040년 수소 매출 5조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시장점유율 20%로 국내 수소 사업자 ‘빅3’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단계는 기존에 공개한 울산 수소복합단지 건설이며 2단계는 100% 청정에너지인 블루·그린·청록수소 등으로 확장하는 형태다. 1~2단계는 수소 도입·생산, 저장, 운반에 이르는 가치사슬 구축이 필수다. 현재 SK가스는 울산 클린에너지복합단지(CEC) 완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울산 CEC는 암모니아 도입, 액화수소 생산, 수소연료전지 개발 등 수소 산업 본격화를 위한 전초기지가 된다. 2단계 수소 사업은 수년간 검토 작업을 거친 뒤 사업화 단계를 밟을 예정이다.
컨설턴트 출신 윤병석 SK가스 사장은 최 부회장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다. 윤 사장이 SK가스 CEO에 오른 지 2년 만에 최 부회장은 SK가스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왔다. 2011년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린 뒤 10년 동안 SK가스 CEO를 겸임하던 최 부회장은 2021년 초 “SK디스커버리 경영에 집중하겠다”며 SK가스 대표이사직을 내려놓되 사내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다. 윤 사장에 대한 신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SK디스커버리 모태라 할 수 있는 SK케미칼은 김철, 안재현 두 사장이 투톱 체제를 이룬다. 조직 재편의 키를 쥔 인물은 안 사장으로 평가된다. 그는 옛 대우그룹 출신으로 2002년 SK그룹에 합류했다. 안 사장은 SK에코플랜트 대표를 지내면서 조직 정체성을 건설에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주도했다.
최 부회장은 보수적인 CEO 인사 스타일을 보인다는 게 재계 평가다. 최 부회장과 사적 인연이 있거나 한번 기용해 검증된 인물이 주로 CEO로 발탁된다. 안재현 사장과 최 부회장도 여의도고 동문으로 유년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0년대 바이오디젤 사업으로 그린케미칼 시장에서 자신감을 다진 SK케미칼은 또 한 번의 사업 전환에 나선다. 최근 라이프사이언스사업부 내 제약사업부를 분할한 뒤 이를 글랜우드PE에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화학 사업 자체를 그린 소재로 탈바꿈하는 재편 작업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특히 친환경 소재인 코폴리에스터를 중심으로 생산 인프라를 확대해 글로벌 1위에 올라서겠다는 청사진이 눈길을 끈다. 코폴리에스터는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BPA)가 검출되지 않는 친환경 재생 플라스틱 소재다. 코폴리에스터는 뛰어난 투명성과 내화학성을 가져 유리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로 각광받는다. 열과 습기에도 강해 화장품·음식 포장 용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전자제품 소재로 쓰인다.
현재 SK케미칼의 코폴리에스터 세계 시장점유율은 40%로 미국 이스트만에 이어 2위다. 다만, 아직 시장 성장성은 불투명한 단계라는 게 걸림돌이다. 전 세계에서 코폴리에스터를 생산하는 곳은 SK케미칼과 이스트만 딱 2곳뿐이다. 세계에서 이 두 곳 외에 생산 기업이 전무하다는 점은 시장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SK케미칼은 친환경·재활용 플라스틱 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설비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용기에 재생 플라스틱 사용 비중을 2025년까지 55%, 2030년까지 100%로 확대할 계획이다. SK케미칼의 설비 투자 시계열도 여기에 맞춰진다. SK케미칼은 현재 26만t 수준의 코폴리에스터 생산능력을 2025년 30만t, 2030년 45만t으로 확대해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겠다는 복안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5호 (2023.11.22~2023.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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