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수능 EBS 연계율 50%'?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
[신정섭 기자]
▲ EBSi 누리집에 나와 있는 '수능 대비, EBS 연계학습이 답' 홍보 자료 화면 갈무리 |
ⓒ ebsi |
지난 3월 28일,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2024학년도 수능 시행 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EBS 연계율은 50% 수준을 유지하되 EBS 연계 체감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출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EBS 교재 및 강의와 수능 출제 문항의 연계는 간접 방식으로 이뤄지고 연계교재에 포함된 도표·그림·지문 등 자료 활용을 통해 연계 체감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달 16일 치러진 2024 수능에서 이 목표는 실현되었을까? N수생은 잘 모르겠지만, 필자 주변의 교사와 학생이 느낀 연계 체감도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의 설명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과목별 특성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대체로 "간접연계 탓에 피부로 체감하기 어려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왜 그럴까.
국어, 일부 탐구 빼고는 "대체로 체감도 낮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수능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한 국어교사는 "현대시 한 편이 EBS 교재에서 그대로 나오고 수능 18~21번, 32~34번의 경우 EBS 지문에 다른 글을 붙여 지문을 구성하는 등 나름 체감도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교실에서 만난 한 고3 학생도 "국어는 EBS 수능교재 공부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된 편이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수학과 영어영역은 반응이 달랐다. 한 수학교사는 "EBS 연계교재가 도움이 안 됐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체감도가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고 털어놓았고, 한 영어교사는 "재작년 수능부터 소재만 일부 활용하는 간접연계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에 수험생 입장에서는 사실상 연계가 안 됐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에 수능을 본 다른 학생도 "수학과 영어는 솔직히 EBS 교재나 수능 방송과 연계됐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고 말했다.
탐구영역은 평가가 엇갈렸다.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는 "과탐의 특성상 도표나 그림, 그래프 등을 활용하는 문제가 많다 보니 EBS <수능특강>이나 <수능완성> 교재를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사회문화를 가르치는 한 교사는 "두세 문항 정도 연계가 되었다고 보는데, 다른 문제집에도 나오는 개념과 그래프를 활용한 거라서 딱히 EBS 연계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계 체감도 낮은 이유는 '간접연계'
수능-EBS 연계 정책은 2021학년도 수능까지는 '70% 직·간접연계'였다가 2022학년도 수능부터 '50% 간접연계'로 바뀌었다. 수험생이 EBS 연계교재를 통째로 암기하거나, 일부 학원 등에서 EBS 문항을 변형한 수능 예상 문제집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도입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 변화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수험생 입장에서 '간접연계'는 허울뿐이고, 사실상 새로운 지문이나 문제를 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연계의 실효성이 사라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수학영역은 과목의 특성상 직접연계가 아니면 수험생이 체감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고, 영어영역의 경우는 소재만 일부 활용하는 간접연계는 사실상 연계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평가원은 올해 수능 영어영역 EBS 연계율이 53.3%(전체 45문항 중 24문항)라고 밝혔다. 실제 수능 문항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주인공 David의 심경 변화를 추론하는 수능 19번 문항은 David가 첫 출근일에 버스를 기다리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원하는 버스가 오지 않아 불안하다가 마침 일터로 가는 다른 버스가 도착해 안도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수능과 연계되었다고 발표된 EBS 수능특강 <영어독해연습> Mini Test1 16번 문항은 '버스 기사가 승객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내용이다. 본문에 버스가 등장한다는 것 말고는 두 지문 사이에 특별한 공통점이 없어보인다.
재검토가 필요한 'EBS 연계' 정책
수능을 EBS와 연계하는 정책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처음 도입되었다. 사교육을 절감하고 공교육을 내실화한다는 취지였다. 그해 4월, 인터넷으로 수능 강의를 들을 수 있는 EBSi가 개통되었고, 당시 정부는 2005학년도 수능 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EBS 수능 방송 내용과 연계해 수능을 출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EBS 교재를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수능에 대비할 수 있다"고 널리 홍보했다. 2009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한 수험생은 "EBS 문제집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수능-EBS 연계 정책이 나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학원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이나 시골 지역의 학생들에게는 EBS 인터넷 강의가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정책 도입 후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사교육은 잡히기는커녕 EBS에 별도 사교육을 덮어쓰는 방식까지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공교육은 EBS 문제 풀이에 매몰되는 등 부작용까지 생기기도 한다.
사교육을 못 잡으면 수능을 EBS와 연계하는 정책은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EBS만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수능 대비가 가능하다"는 선전은 신뢰를 얻기 힘들다. 수능-EBS 연계 정책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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