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는 전두환 각본에 따라 선택된 희생이었다?

황광우 2023. 11. 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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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우의 역사산책24] 시민군 300인의 육성 담은 <시민군> 통해 본 못다 한 오월 이야기

[황광우 작가]

 지난 10월 21일 광주의 전일빌딩에서 시민군 300인의 육성을 담은 책 <시민군>을 헌정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 황광우
   
지난 10월 21일 오후 4시, 광주의 전일빌딩에서 시민군 300인의 육성을 담은 책 <시민군>을 헌정하는 의식을 진행했다. 시민군 오기철은 절뚝거리며 단상에 올랐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도청의 최후를 지켰습니다. 살아남은 죄밖에 없습니다. 제발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의 울부짖음은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오월의 진실을 오도하는 집권 각본설을 버리자

1980년 5월 광주는 전두환의 집권 각본에 따라 선택된 희생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잉 진압과 집단 발포는 광주의 폭동을 유도하기 위한 계략의 일환이었고, 무능한 최규하를 권좌에서 쫓아내고 전두환이 권좌에 등극하기 위한 각본이었다는 가설 말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몇 년 전부터 무대에 오르고 있는 <뮤지컬 광주>의 줄거리 역시 집권 가설에 따라 제작된 뮤지컬이다.

이 해석은 위험하다. 이 가설에 따르면 오월 광주의 사상자가 도살장에 끌려가 살해당한 2천여 마리의 소, 돼지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광주 민중이 왜 목숨을 걸고 싸웠던지, 피를 나누고 밥을 나누면서 오월을 지켰던지, 항쟁의 진실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지난 10월 21일 광주의 전일빌딩에서 시민군 300인의 육성을 담은 책 <시민군>을 헌정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 황광우
  
나는 이번에 <시민군>을 쓰고서 오월의 진실을 어슴푸레 알게 되었다. 300인의 육성을 담은 <시민군>의 초고를 쓰고, 이후 100회 이상 교정하면서 시체 더미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다.
"아닙니다. 전두환의 집권 각본에 따라 진행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자의 집권 야욕을 정면으로 뒤집어엎은 사건이었습니다. 국민 알기를 좀 벌레로 취급한 군사독재자의 방자한 태도를, 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두들겨 패 준 싸움이었어요. 제발 승리한 싸움, 승리한 오월로 기록해주셔야 해요."
 
 <시민군> 책 표지
ⓒ 황광우
 
결정적 순간, 심야의 광주역 전투

<시민군>을 쓰면서 내가 몰랐던 오월의 결정적 순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5월 20일 밤 광주역 전투다. 그날 오후 10시경 시민들은 광주역을 점거하고 있는 공수들을 몰아내고자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용감한 시민들은 휘발유가 가득 담긴 드럼통을 굴려 공수를 위협하였고, 차량의 시동을 걸고 공수를 향해 돌진하였다.

1980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용완의 이야기를 듣자. 그는 졸업앨범 사진을 찍으려고 나왔다가 공수들이 학생들을 때리는 것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시민들은 광주역 쪽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드럼통을 밀고 공격했다. 나는 트럭을 타고 신역 진출을 시도하였다. 그때 나는 공수에게 포위를 당했다. 공수들은 나를 시멘트 바닥에 눕혀놓고 곤봉으로 구타하였고 대검으로 찔러버렸다. 얼굴을 군홧발로 짓이겨버렸다. 온몸에서 피가 비 오듯 쏟아졌다.
 
이때 최초의 집단 발포가 있었다. 광주민중항쟁의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은 그날 밤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친구 한균이가 달려와 광주역 부근에서 공수들이 발포를 시작했다고 알렸다. 광주역 가까이에 이르자 M16 소총 소리가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광주에서 사치였다. 시민들은 두려움과 공포, 죽음을 초월해 있었다.

그때 밤을 울리는 방송 소리가 들렸다. '공수대가 우리의 형제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끝까지 물러나지 맙시다. 광주를 지킵시다.' 애절한 여인의 목소리가 가슴을 도려내고 있었다. 방송의 주인공은 전옥주였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아갔다.
   
 광주역 앞에 있는 광주민중항쟁 사적. 이 사적 기념물은 그날의 승전을 전하기에 너무 초라하다.
ⓒ 황광우
 
심야의 광주역 전투에서 시민들은 공수부대를 포위, 제압하였다. 군작전일지에 의하면 공수들은 시위 군중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기에 바빴다고 한다. 올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발간한 '군자료집'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22:30분경, 광주 역전 상황이 위급하자 11대대, 12대대, 15대대를 구출하기 위한 2개 팀의 특공대를 구성, 광주역전 뒷길로 과감히 돌파작전을 실시. 역전에서 합류.

약 1시간 동안 광란하는 폭도와 대치하면서 각종 개스탄(화염방사기, M203방사기, E-8방사봉) 등으로 폭도를 저지. 이때 폭도는 약 20여 회나 차량으로 돌진(일부는 운전수 없이) 아군을 압사 기도. 3개 대대는 무사히 전남대로 철수 완료(02:00시경) (1권, 전투상보, 34쪽)
 
광주역의 공수들은 추가로 투입된 특공대의 도움으로 간신이 시위 군중의 포위망을 뚫고 목숨을 구했다는 기록이다. 맨주먹의 시민들이 현대식 장비로 무장한, 최정예 공수부대를 물리친 것이다. 시민들은 환호했다.

'이겼다. 우리가 공수부대를 몰아냈다.'

<뮤지컬 광주>를 보면 편의대가 광주에 잠입, 시민들을 폭도로 유도하기 위해 과격 행위를 선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섬찟한 설정이었다. 이것도 집권 각본 가설의 일환이다.

그런데 이 가설은 5월 18일 새벽, 신군부가 학생들과 재야인사를 예비검속한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애시당초 폭동을 유도하려 했다면 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을 미리 잡아갈 이유가 없지 않는가? 자유롭게 풀어놓아야지.

또 보자. 5월 10일, 신군부는 광주 경찰서에 비치되어 있던 총기류를 31사단으로 옮겨놓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작전일지 1980년 5월 10일
제목: 학원을 포함한 지역 내 무기고 경계 및 통제 철저

각 사단은 학원을 포함한 지역 내 무기고 및 탄약고의 통제책을 재확인 점검하여 불순분자에 대한 피탈 사항이 없도록 강구할 것. (5.18민주화운동 관련 군 자료집 2권, 20쪽)
 
도청 앞 집단 발포가 폭동을 유도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다는 해석은 5월 10일 광주에서 무기를 소거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애시당초 광주에서 폭동을 유도할 작전이었다면, 경찰서의 무기들을 방치해 놓았어야 한다. 일신방직과 전남방직 등 직장예비군 무기고도 그대로 방치해 놓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 오월을 보자. 항쟁의 주역 민중의 입장에서 오월을 보자. 집권 각본 가설은 쓸데없이 개 죽음 당할 것 없다는 투항파의 비겁한 언행을 정당화하는 가설이 된다. 동시에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던 시민군 형제들을 도살장에 끌려가 죽은 소와 돼지나 다름없는 제물로 만드는 가설이다.

5월 20일, 심야의 광주역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형제들이 있었기에 오월은 승리한 오월이었다. 5월 26일, 목숨을 걸고 광주를 지키자고 선서한 기동타격대 동지들이 있었기에 오월은 세계사에 길이 빛나는 오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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