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이강인-조규성, 공한증 이어갈 최종병기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 남자축구 대표팀 '클린스만호'가 6년 만에 중국 원정에서 설욕전에 나선다. 슈틸리케호 시절 '창사 참사'의 아픔을 극복하고 '공한증'의 전설을 이어갈 기회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축구 대표팀은 21일 오후 9시(이하 한국시간) 중국 선전유니버시아드센터에서 홈팀 중국을 상대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2차전을 갖는다.
클린스만호는 지난 16일 싱가포르와의 1차전에서 5-0으로 대승을 거둔 바 있다. 중국 역시 1차전에서 태국을 2-1로 꺾으면서 1승을 기록했다. 2차 예선에선 상위 2개 팀이 최종예선에 오른다. 한국은 중국까지 잡는다면 C조 1위를 굳힐 수 있다.
FIFA 랭킹 24위의 한국은 79위에 불과한 중국에 비하여 객관적인 전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국이 손흥민-김민재-이강인 등 세계적인 유럽파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유럽파가 튀르키예 2부리그 소속의 우샤오총 한명뿐이고 전원 중국 슈퍼리그 출신 선수들로 구성됐다. 상대 전적도 한국이 21승 13무 2패로 중국에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며 축구에 있어서는 '공한증(恐韓症)'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다만 한국축구도 성적의 우위와는 별개로 중국을 만날때마다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이 몇 차례 있었다. 지난 2017년 3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은 한국축구 입장에서는 한중전 역사상 가장 큰 오점을 남겼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당시 한국은 마르첼로 리피(이탈리아) 감독이 이끌던 중국과의 최종예선 원정 6차전에서 0-1로 충격패를 당하는 '창사 참사'가 벌어졌다.
이 패배가 불러온 나비 효과로 한국은 몇 달후 슈틸리케 감독이 끝내 경질되었고, 대표팀은 한때 월드컵 본선 탈락 위기까지 몰리는 수난을 겪어야했다. 한중전 A매치 첫 패배였던 2010년 동아시안컵(E-1 챔피언십, 0-3 패)의 경우는 당시 유럽파들이 불참했고 실험적인 평가전 성격이 더 가한 대회였지만, 창사 참사는 한국 축구가 월드컵 예선을 비롯하여 최정예 멤버가 나선 메이저대회에서 중국에 패한 최초의 경기였기에 충격은 컸다.
한국은 이후 중국과 네 차례의 A매치에서 다시 3승1무의 우위를 이어가며 공한증을 되살렸지만 한국 홈이거나 중립경기(동아시안컵-아시안컵 조별리그)였고, 월드컵 예선전과 중국 원정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모두 창사 참사 이후 처음이다.
현 대표팀에 창사 창사 당시 멤버는 황희찬과 김지수 뿐이다. 6년전에서는 경고누적으로 중국 원정이 출장하지 못했던 손흥민을 비롯하여 한국 선수단은 그때와 멤버가 크게 달라졌고 전력은 훨씬 더 강해졌다.
클린스만호는 최근 상승세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직후 한때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의 부진에 허덕였던 대표팀은 지난 9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1-0)에서 첫 승을 시작으로 튀니지(4-0), 베트남(6-0)에 이어 싱가포르까지 연파하며 쾌조의 A매치 4연승을 이어가고 있다. 4경기 연속 무실점에 득점은 무려 16골을 몰아쳤다.
한국의 일방적으로 우위가 예상되는 경기지만 유일하게 경계해야할 것은 중국 특유의 거친 플레이와 홈 텃세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소림축구'로 불리우는 과격한 몸싸움과 비신사적인 태클로 악명이 높다.
한국도 이러한 중국의 소림축구에 여러차례 골탕을 먹은 바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홈에서 열린 중국과의 국내 마지막 평가전에서 당시 에이스였던 스트라이커 황선홍이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이 불발되는 악재를 겪었다. 지난 6월에도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축구대표팀이 중국 원정 2연전을 치르다가 상대의 거친 플레이도 부상자가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은 한국전에 앞서 지난 태국 원정에서도 상당히 거친 플레이를 선보이며 우려를 자아낸 바 있다. 중국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지는 만큼 한국을 상대로 초반부터 강한 기싸움을 걸어올 것이 예상되는데다 4~5만 명의 중국 홈팬들이 운집할 경기장 분위기, VAR(비디오 판독)이 없는 예선 특성 등을 감안하면 경기가 더욱 과열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중국전 승리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소림축구에 대한 최선의 대처법은 최대한 이른 시간과 선제골과 다득점으로 일찌감치 중국의 기를 꺾어놓는 것이다.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의 24세 이하 대표팀 황선홍호가 좋은 예다. 황선홍호는 전반에 터진 홍현석과 송민규의 연속골로 잡아낸 2골차 리드를 끝까지 안정적으로 지켜내며 큰 위기나 불필요한 전력손실 없이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중국의 최대약점은 한국과 같은 강팀과의 대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2023년에도 우즈베키스탄을 정도를 제외하면 팔레스타인, 미얀마, 말레이시아, 시리아 등 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꼽히는 약체팀들만 상대했다. 경기가 팽팽할때는 신경전도 마다하지 않지만, 한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걷잡을수 없이 무너지는 것은 중국축구의 특정이기도 하다.
중국전의 성패는 밀집수비 공략에 달렸다. 한국은 싱가포르에 대승했지만 전반까지만 상대의 촘촘한 밀집수비에 상당히 고전했다. 중국은 싱가포르보다는 수비진의 피지컬이 더 뛰어나고 몸싸움에도 강하다. 아시아 최고수준의 강력한 공격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지만, 중국전에서 승부의 키플레이어는 역시 이강인과 조규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선수는 현재 대표팀에 가장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 공격자원들이다.이강인은 최근 A매치 3경기에서 4골 2도움, 조규성은 A매치 4경기에서 2골을 각각 터뜨렸다.
이강인과 조규성은 최근 1년여간 한국축구에서 가장 성장한 선수들이기도 하다. 이강인은 스페인 리그를 거쳐 올 시즌을 앞두고 프랑스 명문 파리생제르맹(PSG)으로 이적했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확했다. 조규성은 K리그 전북에서 FA컵 우승과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고 올여름 덴마크 미트윌란으로 이적하여 유럽파의 반열에 올랐다.
이강인과 조규성은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나전에서 터뜨린 2골은 모두 이강인이 어시스트하고 조규성이 마무리한 합작골이었다.
벤투호에서는 뒤늦게 주목받은 유망주 정도의 위상이었다면, 클린스만호가 출범하면서 어느덧 확실한 주전으로 올라섰다. 조규성은 황의조-오현규와의 주전 스트라이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이강인은 2선 중앙과 측면을 프리롤처럼 넘나들며 클린스만호를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로 자리잡았다.
중국전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은 주장 손흥민에 대한 집중견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 빈틈을 활용하는 것이 이강인과 조규성의 역할이다. 미드필더인 이강인은 예리한 침투패스와 경기조율로 수비가 빽빽한 공간에서도 창의적인 패스를 공급해줄 수 있다. 최근에는 득점본능에도 눈을 뜨며 중국전에서 A매치 4경기 연속 골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골을 넣지 못했지만 중국 원정을 먼저 경험해봤다는 것도 큰 자산이다.
또한 원톱인 조규성은 사우디전과 싱가포르전에서 보듯, 강력한 몸싸움과 제공권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수 있는 자원이다. 특히 현재 대표팀에서 이강인과 가장 호흡이 잘맞는 공격수로 이강인의 크로스를 조규성의 머리로 마무리하는 공격패턴은 대표팀이 중국전에서 두 선수의 콤비플레이에 기대를 거는 가장 큰 이유다.
중국전은 2023년 클린스만호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A매치이기도 하다. 한국대표팀이 중국전 승리로 U20월드컵 4강-항저우 아시안게임 3연패에 이어 축구 팬들에게 또 한 번의 기분 좋은 선물을 안기고 마무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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