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관 후보자, 판결 살펴보니… 보수·진보 떠나 ‘원칙’ 중시

허경준 2023. 11. 2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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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노조 활동 보호… ‘근로자 인정’ 판결 다수
‘흔들린 아이 증후군’ 아동학대 인정 첫 대법 판단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6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에 대해 ‘보수 성향’이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조 후보자는 보수 또는 진보 등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법관이 아니라, ‘원칙’에 우선을 두고 판결하는 법관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가 15일 서울 서초구 후보자 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첫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법원 내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이라는 이유로 조 후보자가 실제와 달리 보수 성향으로 각인돼 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실제 그가 판결했던 사건들을 보면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저해하거나, 국민 법 감정에 어긋나는 원심 판단을 뒤집는 다수의 판결이 많은데도 보수적인 판결을 했다는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다만 조 후보자는 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성향으로, 적극적인 법 해석을 지양해 재임 기간 내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는 일은 드물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노동자 손 들어 준 ‘첫 판시’ 多… 근로자 범위 넓게 해석

21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조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 주심을 맡았던 사건에서 대체로 ‘근로자’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 준 판결이 다수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조 후보자는 가전제품 수리기사 19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가전제품 서비스대행업체와 도급 계약을 체결한 수리기사도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존재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첫 판결을 했다.

당시 조 후보자는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기본급이나 고정급 등을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근로자임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또 학습지 교사들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단체행동 등 노조 활동도 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조 후보자는 재능교육 교사들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취소소송에서 주심을 맡아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노동3권 보호의 필요성이 있으면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판결로 인해 노무 종사자들도 일정한 조건을 갖출 경우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아 헌법상 노동3권을 적법하게 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이 밖에도 조 후보자는 ‘무노조 경영’을 하는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에서 노조를 만들었다가 해고된 노조 간부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또 삼성에서 노조 조합원을 모집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등의 이유로 정직 징계를 받은 노조원에 대해서도 삼성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국민 법 감정’ 부합 판결… 국가배상 인정 범위 확장

조 후보자는 양육자가 고의로 아이를 강하게 흔들어 생기는 두부 손상의 형태인 ‘흔들린 아이 증후군’도 아동학대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은 주로 2세 이하의 소아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통상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 잘 달래지지 않는 상황에서 분노의 표현으로 아이를 흔들어 대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후보자는 생후 8개월 된 아기를 심하게 흔들다가 떨어뜨려 숨지게 한 친부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조 후보자는 ‘비행기 놀이’를 했을 뿐이라는 친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조 후보자는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되는 범위를 확장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조 후보자는 이른바 ‘오원춘 사건’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대응 소홀로 사망에 이른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들의 직무의무 위반행위가 없었더라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있었다"며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또 조 후보자는 1972년 박정희 정부가 전국에 내린 비상계엄령은 위헌·위법한 조치였다는 판단을 하기도 했다. 조 후보자는 "계엄 포고령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한 당시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언론 출판과 집회 결사의 자유, 영장주의 원칙 등을 침해한다"라며 "1972년 10월 계엄 포고는 위헌이고 위법해 무효"라고 지적했다.

A 부장판사는 "조 후보자는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것이 맞다"며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을 자제하고 엄격하게 법 해석을 해 원칙에 기초한 판단을 하다 보니 보수 성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보수 쪽으로 치우쳤다는 일각의 평가는 실제와 다르다"고 말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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