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트럼프 둘다 아니었다…'美대선 족집게' 이 곳의 분노
미국 위스콘신주 북동부에서 미시간호를 향해 솟은 뾰족한 반도 끝부분에 위치한 도어 카운티는 ‘대선 족집게 지역구’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이후 치른 미 대선에서 이 지역 승자가 최종 대선 승자와 정확하게 일치해 ‘민심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2000년 이후 6번 치른 미 대선 결과와 맞아 떨어진 카운티는 미 전체 3143개(2022년 1월 기준) 카운티 중 9개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도어 카운티는 최근 50년 동안 단 두 번만 빼고는 이곳에서 승리한 후보가 실제 대선 결과와 일치했을 만큼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2020년 대선 때 이 지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292표 차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꺾었고, 2016년 대선 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558표 차로 이겼었다.
━
지역 주점 원칙 ‘술과 정치 섞지 말라’
도어 카운티 유권자들의 현재 민심은 어디에 기울어 있을까. 미 워싱턴포스트(WP)가 약 3만 명의 도어 카운티 인구 가운데 수십 명을 인터뷰하는 등 민심을 훑어 19일(현지시간) 보도한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민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열의 정치 혐오’와 ‘양강 후보 비호감’이었다. WP는 “주민들은 미국의 혼란에 지쳐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역대급 인플레이션,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 대선 부정, 트럼프 추종자들의 1ㆍ6 의사당 난입 사태, 초유의 하원의장 축출 등이 이어지며 정치 혐오가 극에 달했다는 얘기다.
자신을 중도층이라고 소개한 간병서비스 매니저 캐시 니콜스(58)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 워싱턴이 기능 장애 없이 돌아갈 때는 평온함을 느꼈는데 지금은 치솟은 식료품비와 정부 셧다운(기능 마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나 있다고 WP는 전했다. 도어 카운티에서 선술집 ‘헨 하우스’를 운영하는 미셸 헨더슨(57)이 소개한 주점의 규칙은 ‘술과 정치를 섞지 말 것’이다. 그는 “음주와 정치가 뒤섞이면 싸움을 일으킨다”며 “헨 하우스는 모든 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무(無)정치 지대’로 남아야 한다”고 WP에 말했다. 2020년 대선 때 트럼프의 거침 없는 화법을 좋아해 찍으려 했으나 수술 때문에 투표를 못했다는 그는 2024년 대선을 앞두고는 누구를 지지할지 아직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도어 카운티뿐 아니라 미 유권자 전반에 퍼진 정치 혐오 현상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로도 뚜렷이 드러난다. 미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가 미국 정치에 대해 ‘항상 또는 종종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했고, 절반 이상은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바이든ㆍ트럼프 둘다 바통 넘겨야”
현실 정치에 대한 도어 카운티 유권자들의 염증은 1년 뒤 대선에서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도와 비례한다. 교사로 있다 은퇴한 수잔 코하우트(77)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동갑이고 1942년 11월 20일생인 바이든 대통령보다는 19일 기준으로 3살 적다. 주변에 자신은 인생 마지막 장을 준비할 시간이라고 말한다는 코하우트는 “바이든과 트럼프는 다시 출마해서는 안 된다”며 “그들은 자신의 결정이 초래한 결과를 볼 수도 없을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더 젊은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야 한다고도 했다.
바이든, 트럼프 두 사람에 대한 비호감도 미 전역에서 폭넓게 감지되는 현상이다. CNN 방송과 여론조사업체 SSRS가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2일까지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은 각각 59%, 56%로 나타났다. 유력 정당 대선 주자의 비호감도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WP는 “여러 여론조사를 종합해 보면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늙었다’ ‘혼란스럽다’는 것이고 트럼프 전 대통령 이미지는 ‘부패했다’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인들, 국민 안중에 없는 구시대 공룡”
이런 분위기 속에 도어 카운티 유권자들은 분열의 정치를 끝낼 통합의 리더를 찾고 있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성소수자를 위한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민주당원 오언 앨러바도(43)는 “싸우는 정치에 신물이 났다”며 “워싱턴의 직업 정치인들은 국민이 안중에도 없는 구시대적 공룡에 불과하다”고 WP에 말했다. 캐시 니콜스는 “싸우는 상대까지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며 “하지만 쉽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민주ㆍ공화 양대 정당에 실망한 유권자가 늘자 제3지대 정치적 공간도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때 공화당 마이크 갤러거 후보(현 하원의원)가 당선된 위스콘신주 제8선거구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득표율 10%를 기록한 제이콥 밴덴플라스는 2024년 선거는 더 희망적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최근 민주당 탈당 후 무소속 대선 출마를 선언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선전 소식에 상당히 고무됐다고 한다. 밴덴플라스의 정치적 멘토로 상원의원 출마를 준비 중인 같은 당의 필 앤더슨은 “언제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밴덴플라스를 응원했다.
트럼프, 주요 여론조사서 오차범위 내 앞서
한편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흐름이다. CBS 뉴스, CNN, 폭스뉴스, 마켓대 로스쿨, 퀴니피액대 등 주요 5곳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이 바이든 대통령을 2~4%포인트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CNN은 “지난 80년간 미 대선을 1년쯤 앞둔 시점의 여론조사 대부분은 현직 대통령이 평균적으로 10%포인트 조금 넘는 격차로 앞섰다”며 “현직 대통령으로선 이례적으로 바이든이 상대 당 유력 후보에 모두 밀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의 고전 이유로 경제와 고령 리스크를 꼽았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0세 선생님에 반한 15세…마크롱 여사가 결혼 10년 미룬 사연 | 중앙일보
- “당신들은 무조건 헤어진다” 이혼할 부부 96% 맞힌 교수 | 중앙일보
- 찬송가 부른 유열, 수척해진 모습에 '깜짝'…폐섬유증 뭐길래 | 중앙일보
- 강남 룸살롱에 총장 불렀다, 대통령 아들 ‘홍어 회식’ 비극 | 중앙일보
- 운동으로 살 빠질까? 극한실험…매일 40km 달렸더니, 의외 결과 [불로장생의 꿈:바이오혁명] | 중
- [단독] "절제했어야" 감사위원 작심 이임사…"유병호 불쾌해했다" | 중앙일보
- "내일 죽는데 1억 벌래요?"…'죽음학 교수'의 잘 살고 잘 죽는 법 | 중앙일보
- '나홀로 교수'는 없다…자연과학 1위 KAIST, 공학 1위 포스텍 [2023 대학평가] | 중앙일보
- '강남순'이 진짜 물뽕 가려낸다…강남서 난리난 드라마 포스터 | 중앙일보
- '이재명 특보' 경력 쓴 신인이 비명 이겼다…당락 좌우할 '간판'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