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는데 1억 벌래요?"…'죽음학 교수'의 잘 살고 잘 죽는 법

전수진 2023. 11. 21. 05: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죽음학 교본』공저를 낸 임병식 한신대 죽음교육 상담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이다. 장진영 기자


삶은 곧 죽음이다. 이별은 곧 관계의 죽음이며, 아침은 밤이 죽었기에 온다. 최근 『죽음학 교본』출간을 이끈 임병식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에 따르면 그러하다. '싸나톨로지(Thanatology)'란 그리스어로 죽음을 의미하는 '타나토스(Thanatos)'에 뿌리를 두며,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죽음은 어렵다. 임 교수가 출간을 주도한 공저, 『죽음학 교본』이 864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가 된 연유다. 어려운 죽음을 학문으로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잘 살기 위해서다.
임 교수는 의학박사이자 철학박사이기도 하다. 잘 살고 잘 죽는 것을 연구하는 그를 최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 죽음학에 대해 소개해달라.
A : "삶과 죽음은 서로의 반대가 아닌, 서로를 도와주는 존재다. 삶의 훌륭함을 연구하고 삶을 더 충실히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죽음학이다. 죽을 수 있다는 건 곧 살아있다는 걸 의미한다. 윤동주 시인도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서시')라고 읊지 않았나.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린 죽음이라는 것을 미루고 싶어하고, 회피하고, 억압하고 있다. 그래서 생긱는 것이 우울증과 중독, 집착 같은 병리 현상들이다. 왜들 마약에 빠지고 자살을 생각하는가. 죽음을 죽음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죽음을 직면하지 못하고 부정하기 때문이다. 슬픔을 온전히 직면 못 하고 술이나 담배로 대체하고, 영웅성을 꾸며내고, 환각성에 취하는 것이다."

Q : 죽음을 직면하는 방법은.
A : "죽음을 직면하는 것, 즉 슬픔을 직면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한신대에서 죽음교육 상담교수로 일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슬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슬픔을 회피하고 투사, 즉 남의 탓을 하거나, '당위 횡포' 즉 그리 되는 게 당연하니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잘못 받아들인다. 하나의 정해진 방법은 없다. 사람마다 성품과 기질이 다르다. 각자의 인지 문법에 맞추어 알아차리면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게 나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다. 이 사회, 다른 이들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 아닌, 나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나만의 슬픔, 나만의 죽음을 소유할 수 있다."

Q : 사는 것도 힘든 데 죽음까지 공부해야 할까.
A : "결국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고, 삶이라는 것 자체가 상실의 연속, 즉 죽음의 연속이다. 이사도, 이별도 모두 죽음이다. 사람은 상실에서 상처를 받는다. 이게 바로 인공지능(AI)과 다른 점이다. AI는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공감을 할 수 없어서다. 그런데 요즘 우린, 상처 자체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문제다. 상실과 죽음, 그에 따르는 슬픔과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에리히 프롬도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현대인들은 자유에서 도망치고 눈물로부터 도피한다'고."

임병식 교수의 공저, 『죽음학 교본』

Q : 죽음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A :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자.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떠올리게 되지 않나. 그게 지금 나의 위치다. 내 삶의 방향성이자, '나는 누구이고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1억 버는 것보다, 사랑하는 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말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화해와 용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정인 것이다."

Q : 한국의 자살률은 최고 수준이고 출산율은 최저 수준이다.
A : "한국에서 죽음을 소비하는 방식을 먼저 짚고 싶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에 대해 본질적 질문을 던질 수 없기에 진실하지 않고 불온할 수밖에 없다. 그 죽음은 그의 것이다. 우리 인식의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쉽게 정죄하면서 오인한다. 남을 나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로 판단한다. 자살 예방이라는 것 역시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시작한다. 자살이라는 죽음을 우리가 직면하려 하지 않고, 제대로 소화하지 않고, 자살 생존자들에 대해선 슬픔을 은닉하도록 억압하기에 자살이 더 양산되는 구조다. 결국, '죽음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예민성과 동전의 양면이다. 죽음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면, 자살이라는 것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임병식 교수는 "삶을 충실히 살기 위한 것이 죽음학"이라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Q : 세월호나 이태원 사고 등은 어떻게 보나.
A : "충분한 애도가 있었어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 죽음들에 대해 애도를 할 시간을 사회가 가졌어야 한다. 그 슬픔을 사회가 피하지 말고 직면했어야 한다. 동시에 정보에 대한 정직한 고백도 있었어야 한다. 그 정보가 은닉 또는 폐기될 때, 사회는 외상을 입는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어서다. '왜'를 알면 외상 대처 능력이 생길 수 있는데, 그 능력 자체가 박탈되지 않았나 싶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 자신에게 다가온 슬픔과 눈물을 온전히 맞이하면 힘은 들지언정, 단단해진다."

Q :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하고 싶나.
A : "사랑하는 가족의 눈을 바라보며 '내게 와주어 고맙다'는 말과 '미안했다'고 하고 싶다. 그 말을 할 수 있기 위해 살아온 거니까.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 이 세 가지는 신의 밀어(密語)와도 같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