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예산 1831억 삭감…원전산업 또 정전 위기

오현석, 김다영, 정종훈 2023. 11. 2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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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분30초. 더불어민주당이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24년도 원전 분야 예산 1831억원을 삭감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문재인 정부가 주도했던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4500억원가량 늘렸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원전 예산을 비롯한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의 예산안 수정안을 상정해 일괄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군사작전과 같은 예산안 테러”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원자력 생태계 지원 예산(1112억원) ▶원전 해외 수출 기반 구축 예산(69억원) ▶원전 수출 보증 예산(250억원) ▶원전 등 무탄소 에너지 확산 위한 CF(무탄소) 연합 관련 예산(6억원) 등을 대폭 삭감했다. ‘원전 예산 칼질’에는 과거 민주당이 추진했던 사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주당은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사업 예산(333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SMR은 발전량이 500메가와트(MW)급 이하 소형 원전으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공식 제안했고, 이재명 대표 역시 대선후보 시절 ‘기후 위기 대응 신산업’의 일환으로 연구개발(R&D)을 공약했었다.

민주당 소속 이재정 국회 산자중기위원장은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배부해 드린 예산안(수정안)의 내용은 여야 합의 내용을 기본으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힘 김성원 산자중기위 간사는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여야 이견을 부대 의견에 담아 전체회의에 보내자고 했던 야당이, 갑자기 단독처리 의도를 드러내며 여야 협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횡포를 벌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내년에 예정됐던 원전 지원 관련 예산이 줄면 원전 수출 등 정부 계획도 차질을 빚는다. 폴란드·체코 등에서 추진 중인 신규 원전 수출뿐 아니라 원전산업에 전방위로 경고등이 들어오는 것이다. 특히 기존에 계약을 따낸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건설사업,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TRF) 건설사업 등의 추진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수출 사업뿐 아니라 기존에 수주한 사업들도 무역보험공사에서 수출 보증을 받아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지원 자체가 끊기면 기존 계약에도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MR 예산과 관련해서도 정부 관계자는 “한국형 SMR 노형 개발이 늦어지면 국제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관련 R&D 예산안이 통과된 것과도 엇박자가 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당, 윤석열표 예산 집중 삭감…이재명표 예산 증액 안 되자 벼랑끝 전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원전 업계다. 문재인 정부 때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고사 위기를 버티고 신한울 3·4호기, 해외 수주 사업 관련 일감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지만, 다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경남 지역 한 원전 뿌리기업 대표는 “지금도 공장 장비 보수, SMR R&D 관련 지원을 어렵게 받고 있다. 내년에 끊길 경우 어렵게 유지 중인 공장 운영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원전 수출 차질은 고사하고 당장 현장의 중소·중견기업부터 죽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기자재값 상승, 고금리 등으로 업체를 운영하기 힘든데 지원 예산 삭감은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문재인 정부 때로 돌아가자는 것 아니냐”면서 “원전 생태계를 지탱해온 기업들이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긴 매우 어려운 만큼 어떻게든 예산 심사 과정에서 다시 원전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예산뿐 아니라 민주당은 최근 상임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단독처리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1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민주당은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청년 취업 관련 예산 2382억원을 삭감한 안을 단독 의결했다. 특히 ‘윤석열표 예산’으로 불리던 청년 일 경험 지원 예산(1663억원)과 ‘청년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 취업 지원’ 예산(706억원)은 전액 삭감됐다.

잇따른 민주당의 단독 의결은 자신들이 요구해온 이재명표 정책인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 복원을 비롯해 ▶재생에너지 투자 ▶청년 재직자 ‘내일채움공제’ ▶새만금 사업 등 예산 증액이 관철되지 않는 데 대한 ‘벼랑 끝 전술’ 성격이 강하다. 상임위에서 의결한 예산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하는데, 상임위에서 삭감한 예산을 예결특위에서 다시 늘리려면 소관 상임위 동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자신들의 요구 예산을 늘리기 위해 정부·여당의 원전·청년 예산 삭감을 예결특위를 대비한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먼저 대표적 청년 정책인 ‘내일채움공제’ 예산을 4206억원 삭감했다. 향후 예결특위에서 이들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심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청년·원전 예산 삭감에 대해 “민주당이 국가 미래를 볼모로 윤석열 정부 정책에 대한 발목잡기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청년과 원전 예산은 국가의 토대와 미래가 걸린 문제”라며 “이재명 대표의 정책 예산은 ‘묻지마 증액’을, 윤석열 정부 정책 예산은 ‘묻지마 삭감’을 하는 민주당의 예산 독주를 멈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석·김다영·정종훈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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