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사도 없던 30대 베테랑…벼랑 끝에서 거머쥔 트로피
마땅한 후원사를 찾지 못해 그 흔한 로고 모자 하나 쓰지 못했다. 온몸을 휘감는 후원사의 광고 패치도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은퇴까지 고려했던 30대 베테랑 골퍼 양희영(34)이 마침내 미국 본토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양희영은 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5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여 합계 27언더파 261타로 정상을 밟았다. 개인 통산 5승째이자 2019년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 이후 4년 9개월 만의 우승이다. 재미교포 앨리슨 리(28)와 일본의 하타오카 나사(24)가 3타 뒤진 합계 24언더파로 공동 2위를 차지했다.
하타오카 나사와 합계 21언더파 공동선두로 마지막 날 경기를 시작한 양희영은 3번 홀(파4) 보기로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파4의 7번 홀과 파3의 8번 홀에서 잇달아 버디를 잡아내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후반 들어서는 행운도 따랐다. 파4의 13번 홀에서 두 번째 웨지샷이 홀로 빨려 들어가는 샷이글을 기록하면서 상승세를 탔다. 양희영은 마지막 2개 홀에서 연거푸 버디를 기록해 우승을 확정지었다.
양희영은 아시아에서만 강할 뿐 정작 미국 본토에선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산 4승을 모두 아시아에서 거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승, 태국에서 3승을 거뒀다. 그런데 이날 티뷰론 골프장에서 5번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미국 무대에서 약하다는 징크스를 깨뜨렸다.
더구나 LPGA 투어 역사상 최고액의 상금을 받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 대회 우승 상금은 200만 달러(약 26억원)로 US여자오픈과 함께 가장 많다. LPGA 투어 일반 대회 우승 상금이 5억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5배나 많은 상금을 챙긴 셈이다. 이 대회 주최 측은 내년에는 우승 상금을 2배인 400만 달러로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희영 개인에게도 이날 우승은 뜻깊다. 양희영은 올 시즌 내내 후원사의 로고가 없는 모자를 쓰고 라운드했다. 지난해까지는 국내 금융사의 로고를 새긴 모자를 썼지만, 성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올해는 스폰서가 없었다. 그래도 양희영은 굴하지 않았다. 후원사가 사라지자 모자 가운데에 환한 미소를 새겨넣은 흰색 모자를 쓰고 필드를 누볐다.
양희영은 “모자를 공백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웃는 미소 모양의 수를 놓았다”며 “골프를 하면서 올해처럼 진지하게 은퇴를 고려한 적은 없었다. 최근 팔꿈치 부상이 있었고, 우승 기회도 놓쳐 힘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웃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1989년생인 양희영은 또 올 시즌 LPGA 투어 우승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로 기록됐다. 양희영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LPGA 투어는 이날 최종전을 끝으로 올 시즌을 마무리했다.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양희영을 포함해 모두 5승을 합작했다. 지난해 4승보다 1승 많지만, 2021년 7승보다는 2승이 적다. 고진영(28)이 2승을 거뒀고, 유해란(22)과 김효주(28)·양희영이 1승씩을 보탰다.
평균타수상을 노렸던 김효주는 최종 69.628타를 기록해 69.533타의 아티야 티띠꾼(20·태국)에게 간발의 차로 베어트로피를 내줬다. 베트남 보트피플의 후손인 릴리아 부(25·미국)는 올해의 선수상과 상금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신인왕은 일찌감치 수상을 확정한 유해란에게 돌아갔다. 한국 선수로는 통산 14번째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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