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준우승, 한국야구판 '리딤팀'이 건진 희망

이준목 2023. 11. 2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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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BC] 한국 야구대표팀, 일본에 3-4 석패... 준우승

[이준목 기자]

영어 단어로 리딤(Redeem)은 '만회하다. 구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계최강으로 꼽히는 미국 농구대표팀은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자신들을 기존의 '드림팀'이 아닌 리딤팀(Redeem team)'으로 규정하며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미국이 기어코 정상을 탈환했던 2008년 올림픽은, 동시에 한국야구가 전승 우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던 화양연화의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야구도 베이징의 영광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한동안 부침을 겪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한국야구는 기나긴 침체기를 딛고 다시 한번 '재건'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비록 한일전 승리와 우승에는 2% 부족했지만, 한국야구의 자존심에 부끄럽지않은 승부를 펼쳤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한국야구판 리딤팀'으로 부끄럽지않은 성과를 남겼다.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APBC 결승전에서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프로야구 대표팀은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3-4로 석패했다.

대표팀은 선발 곽빈의 호투와 3회 초 노시환의 2타점 2루타에 힘입어 2-0으로 앞서나갔으나 5-6회 말 1점씩을 내주며 동점을 허용했고, 정규이닝동안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 승부치기에서는 10회 초 무사 1, 2루에서 시작하여 윤동희의 1타점 적시타로 먼저 3-2로 리드했지만 10회말 마무리 투수 정해영이 2사 만루 위기에서 가도와키 마코토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맞아 2실점으로 하며 역전패를 당했다.

이로서 한국은 일본과 프로 선수들이 맞붙은 국제대회에서 2016년 이후 8연패라는 아쉬운 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일본이 사회인 선수들을 출전시키는 아시안게임을 제외하고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일본 프로 대표팀을 상대로 승리한 것은 2015년 11월19일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준결승전 4-3 역전승이 마지막이었다.

한국은 최근 2017년 APBC 예선(7-8)과 결승전(0-7)을 시작으로 2019년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8-10)와 결승전(3-5), 2021년 도쿄올림픽 준결승전(2-5),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4-13)에서 일본에 내리 패배했다. 특히 최정예 멤버를 구성했던 도쿄올림픽의 노메달에 이어 WBC 1라운드 완패 탈락은 한국야구의 초라한 현 주소에 대한 충격을 안겨줬다.

한국은 2000년-20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비록 일본에 전력은 다소 뒤지더라도 맞대결에서는 대등한 승부를 펼쳐왔지만, 2010년대 후반들어 더 이상 라이벌이라고 하기 어려울만큼 일본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을 절감해야했다. 반면 일본은 한국을 넘어 올림픽과 WBC를 잇달아 제패하며 승승장구했다.

류중일호는 이번 APBC에서 내심 지난 WBC의 설욕을 노렸다. 24세 이하 젊은 선수들이 모인 APBC는 한일야구의 미래를 가늠할수 있는 중요한 무대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거같은 해외파는 없지만 그래도 한일 자국 프로리그에서 주전급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만큼 그 맞대결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이번에도 일본을 넘지는 못했지만, 지난 올림픽이나 WBC와 비교하여 대표팀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류중일호는 예선(1-2)과 결승(3-4)에서 모두 일본을 상대로 대등한 승부를 벌이며 초접전을 펼치다가 1점차로 석패했다. NPB 1군급 멤버가 다수 포함된 일본 대표팀을 상대로 상대의 홈에서 최상의 전력이 아니었음에도 끝까지 선전했다. 야구팬들이 지난 WBC 참사 당시 지적했던 '질 때 지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승부'를 젊은 선수들이 보여줬다.

또한 한일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번 APBC는 전반적으로 한국야구에게는 '재기와 만회'의 무대가 됐다. 한국은 예선 첫 경기에서 만난 호주에 3-2로 승리하며 지난 3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WBC 1차전(7-8) 패배를 8개월여 만에 설욕했다. 이어 일본에 패하며 주춤했지만 3차전에서는 난적 대만을 6-1로 제압하고 2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는 대표팀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할수 있다. 올해 KBO리그 홈런왕 노시환은 강백호가 부상으로 빠진 중심타선에서 고군분투하며 APBC 4경기에서 타율 .389(18타수 7안타) 4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호주전 승부치기 결승타점, 일본전 선제 2타점 등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활약이 발군이었다.

일본과의 결승전 선발로 나선 곽빈은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3볼넷 6탈삼진 1실점 호투하며 일본 선발이던 이마이 다쓰야(4이닝 2실점 1자책점)보다 투구내용은 더 좋았다. 곽빈으로서는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부상으로 공 하나 던지지않고도 '금메달 무임승차'라는 오명을 씻어내며 국제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밖에도 최승용(두산), 최준용(롯데), 최지민(KIA)으로 이어지는 불펜진은 일본의 강타선을 강대로 4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호투했다

투수에 비하여 타선의 부진은 아쉬웠지만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정상적이라면 차출이 유력했던 강백호와 이주형이 모두 부상으로 낙마했고, 한국시리즈를 치르느라 LG와 kt 소속 선수들의 합류가 불발되며 전력을 꾸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로 인하여 성적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대신 차출되거나, 일부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소속팀과 전혀 다른 포지션을 소화해야할 정도였다. 얇은 선수층과 유망주들의 성장은, 결국 대표팀이 아니라 KBO리그 각 구단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다.

또한 류중일 감독은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APBC 준우승의 성과로 인해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지켜냈고 본인도 어느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류중일 감독은 얼마 전까지 지도자로서 하락세라는 평가를 받았고 국제전 운영 능력에도 의문부호가 붙었다. 선수선발이나 경기 내용상으로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정된 조건속에서 최선의 성과를 끌어냈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표팀의 다음 도전 무대는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와 2026 WBC 등이 있다. 한국야구는 올해 아시안게임과 APBC는 류중일 감독에게, WBC는 현직 프로 감독인 이강철 kt 감독에게 각각 지휘봉을 맡겼다. 그런데 WBC에서 대표팀이 역대급 졸전을 펼치면서 프로 감독의 대표팀 겸임 체제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KBO는 앞으로의 국제대회부터는 다시 대표팀 전임감독제에와 상비군 제도를 운영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로서 류중일 감독은 향후 차기 야구대표팀의 전임감독 후보로 가장 유력한 1순위가 될 전망이다. 국제 경쟁력 회복과 세대교체의 연속성 흐름을 이어가면서 한국야구만의 새로운 색깔을 구축해야한다는 과제가 앞으로의 한국야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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