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농구했습니다” 한채진 눈물의 은퇴식, 21년 커리어 마침표 [IS 인천]
김명석 2023. 11. 20. 06:32
“눈물, 콧물 다 나올 것 같아서….”
마이크를 든 한채진(39)이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19일 인천 신한은행과 부천 하나원큐의 맞대결을 앞두고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마련된 자신의 은퇴식 자리에서다. 신한은행 전신인 현대 하이페리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신한은행 홈 경기장인 도원체육관에서 은퇴 소감을 밝히는 의미 있는 자리. 코트 한가운데에 선 한채진은 준비해 온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것으로 21년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채진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되돌아보면 많이 부족했던 선수인 것 같다. 그래도 아낌없이 응원해 주신 팬분들 덕분에 행복하게 농구를 하고, 이렇게 은퇴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열심히 땀을 흘렸던 동생들 덕분에도 함께 웃고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고, 고마웠다. 특히 (이)경은아, 언니 없으니까 심심하지?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언니 챙기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저만큼 코트에서 열정을 다하신 부모님, 사랑하고 감사하다. 신랑한테도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채진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베테랑 선수가 되면서 경기장에 나오면 친구들보다 경기부 선배들, 심판 선생님들, 경기본부장님 등 저한테 항상 말 걸어주시고 말동무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며 “한채진의 농구 인생은 마무리됐지만, 그동안 후회 없이 농구했고 사랑하면서 농구했다. 행복한 시간들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모든 말을 마친 뒤에는 결국 쏟아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한채진의 은퇴식은 경기 시작 30분 전에 시작됐다.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던 양 팀 선수들은 워밍업을 잠시 멈춘 채 떠나는 레전드를 예우했다. 맏언니와 한솥밥을 먹었던 신한은행 선수들은 물론, 하나원큐 선수들 역시 여자농구 레전드이기도 한 한채진의 인생 제2막을 박수로 응원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구단이 미리 마련한 한채진 티셔츠와 응원도구 등을 활용해 코트를 떠난 한채진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한채진의 아버지와 어머니 등 가족들도 자리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고, 남편도 이제는 농구화가 아닌 구두를 서프라이즈 선물로 준비해 한채진에게 직접 신겨주기도 했다.
1984년생인 한채진은 지난 2003년 여자프로농구 신인선수 선발회에서 전체 5순위로 현대 하이페리온 유니폼을 입은 뒤 21년 동안 프로 생활을 이어갔다. 신한은행과 금호생명, KDB 생명 등을 거쳐 지난 2019년부터 친정팀 신한은행으로 돌아왔고, 지난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자프로농구 통산 597경기에 출전해 무려 1만 7240분 53초 동안 코트를 누볐다. 평균 기록은 8.7득점에 3.7리바운드 1.8어시스트다.
여자농구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인 임영희 우리은행 코치의 600경기 출전 기록에 단 3경기만 남겨뒀지만, 한채진은 기록 경신만을 위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대신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기록만을 위해 의미 없이 경기 수를 채워 기록을 세우는 건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남은 3경기를 올 시즌 신한은행 후배들이 한채진의 이름과 등번호, 레전드 캡틴 문구가 새겨진 타투를 새기고 뛰는 것으로 600경기를 채웠다. 홈 개막전이 아닌 4번째 경기 만에 은퇴식이 열린 배경, 은퇴식에 600이 새겨진 한채진의 대형 유니폼이 등장한 이유였다.
한채진은 대신 지난 시즌 여자농구 역대 최고령 출전 신기록(만 38세 319일), 플레이오프(PO) 최고령 출전 기록(38세 363일) 등을 세웠다. 지난 시즌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에 열린 우리은행과의 PO를 끝으로 정든 코트를 떠났고, 이날 은퇴식을 통해 은퇴를 공식화했다. 구나단 신한은행 감독은 “마무리를 너무 잘해줬다. 은퇴할 때까지 팀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며 떠나는 한채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인천=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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