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 주인공 ‘LG 왕조의 시간’ 알렸다
“시계를 보자마자 딱 좋은 기운을 느꼈죠.”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오지환(33)은 롤렉스 시계를 상으로 받았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역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중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이 시계는 LG 구단주였던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다음 한국시리즈에서 LG가 우승하면 MVP에게 주겠다”며 1997년 해외에서 구매한 제품이다. 오지환은 지난 17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 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우승 축하행사에서 그 시계를 손목에 감았다. 오지환을 만나 MVP가 된 심경과 롤렉스 시계를 상으로 받은 소감을 들어봤다.
오지환은 “시계를 차고 기도를 했다. 선대회장님의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목에 차보니 세월이 주는 힘이 느껴졌다. 중압감 같은 것도 있었다”며 빙긋이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선대회장님의 유품이기도 하고, 많은 분이 보실 수 있으면 해서 구단주께 시계를 돌려드렸다”고 했다. LG 구단은 이 시계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전시할 생각이다. LG 구단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이 같은 회사의 신형 시계를 오지환에게 선물했다”고 귀띔했다.
LG는 이날 행사에서 선대회장의 뜻이 담긴 술병도 열었다. 구본무 전 구단주는 1994 시즌 개막 전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오키나와 전지훈련지를 찾았다가 회식 자리에서 일본 전통소주를 마시며 “다음에 우승하면 이 술로 또 건배하자”고 제의했다. 실제로 LG가 그해 우승하면서 선수들은 이 술로 축배를 들었다. LG 구단은 이듬해에도 일본에서 소주 3통을 사 왔다. 하지만 29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이 술을 마실 기회가 없었다. 그 사이 술은 자연 증발하면서 4분의 1 정도로 양이 줄었다. 29년 만에 개봉한 술을 맛본 오지환은 “오랜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인지 더 맛있던 거 같다”고 했다.
지난 13일 한국시리즈 최종 5차전이 끝난 뒤 오지환은 KT 위즈 더그아웃 쪽으로 다가가 박병호와 박경수를 끌어안았다. 둘은 LG에 입단해 함께 뛰었던 옛 동료였다. 오지환은 “마지막 경기 9회 초 선두타자가 경수 형이었다.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어릴 때 함께 고생했는데 ‘그때 이렇게 우승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했다. 형들이 ‘고생했다, 축하한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KT 선수단은 한국시리즈에서 진 뒤에도 ‘패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LG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며 축하했다. 오지환은 “진 팀이 상대 팀을 그렇게 예우하는 게 쉽지 않다. KT의 모든 선수가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높게 평가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오지환은 2차전을 가장 결정적인 경기로 꼽았다. 그는 “3차전도 중요했지만, 돌이켜보면 2차전에서 나온 (박)동원이의 홈런이 컸다. 4점을 먼저 줬고, 선발투수가 일찍 내려갔다. 하지만 구원투수들이 추가 실점을 막았고, 극적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선수 한 명이 아니라 모두의 힘으로 이긴 경기”라고 했다.
한때 오지환은 ‘오지배(오지환이 경기를 지배한다는 의미)’란 별명으로 불렸다. 멋진 플레이로 팀 승리를 이끌기도 하지만, 어이없는 수비 실수로 경기를 내주는 모습이 잦다는 뜻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오지환은 “별명이 바뀌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답은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력을 키우면 되는 거였다”고 했다.
■ 오지환은
「 ◦ 생년월일 : 1990년 3월 12일
◦ 출신교 : 군산초-자양중-경기고
◦ 신장·체중 : 1m82㎝·80㎏(우투좌타)
◦ 프로 입단 : 2009년 1차 지명
◦ 연봉 : 6년(2024~29) 총액 124억원
◦ 올 시즌 성적 : 126경기 타율 0.268
8홈런 62타점 65득점 16도루
◦ 주요 경력 : 2022 골든글러브(유격수)
2023 한국시리즈 MVP
2023 KBO 수비상(유격수)
」
오지환은 우승 확정 후 기자회견을 기다리는 동안 관중석으로 가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오지환은 “그동안 너무 죄송했다. 10년 동안 가을야구를 하지 못하다 포스트시즌에 갔을 때(2013년) 기회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또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염경엽 LG 감독은 우승 소감으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달리겠다”고 했다. 오지환의 생각도 똑같다. 그는 “지금이 시작점이다. 송찬의·박명근·이재원처럼 한국시리즈에 뛰지 못한 선수들도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며 “내년에는 주장 자리를 다른 선수에게 물려주고 싶다. 그렇지만 ‘LG 왕조’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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