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상장’ 주관사는 정말 몰랐을까 [편집장 레터]
2019년 코오롱티슈진 ‘인보사 사태’ 때도 두 증권사가 주관사
“작은 회사 유상증자 공모였는데 발행사가 알려준 대로 증권신고서에 받아 적었다가 나중에 담당자 모두 중징계를 먹었다.”
“애널리스트 일할 때 회사 가이던스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증권사 출신 A와 B가 ‘사기 상장’ 의혹에 휩싸인 파두 사태를 보면서 들려준 얘기입니다.
1조5000억원 가치를 인정받고 화려하게 상장한 파두의 ‘사기 상장’ 스캔들이 점점 확대되는 모양새입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파두와 파두 IPO 주관사인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피해 주주를 모집하고 있다죠.
주관사는 지난 7월 파두의 2023년 매출액을 1202억원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뿐인가요. 2024년 3715억원, 2025년 6195억원으로 매년 2~3배씩 뛸 것이라 예상했죠. 어떻게 이런 수치를 뽑아냈을까요? 2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2분기 매출액 6000만원) 이 같은 추정치를 뽑아냈다면 명백한 투자자 기만이죠. 물론 주관사들은 파두가 2분기 실적을 알려주지 않아 전혀 몰랐다고 할 테죠. 그럼 주관사가 왜 필요한 걸까요. 투자자가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는 내용을 주관사가 대신 확인해서 전망해준다는 신뢰의 사슬이 모두 깨져버렸습니다.
이 지점에서 2019년 한때를 뜨겁게 달궜던 코오롱티슈진 ‘인보사 사태’가 떠오릅니다. ‘인보사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코오롱티슈진 상장 부실 검증 논란이 일었죠. 코오롱티슈진은 상장되기 이전인 2017년 2월, 인보사에 들어가는 핵심 성분이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세포임을 확인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증권신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실리지 않았죠. 공교롭게도 코오롱티슈진 상장 주관사 역시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SK그룹은 자칫 파두 불똥이 SK로 튈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입니다. 최태원 회장 맏사위 윤도연 씨가 2020년까지 파두에서 사업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일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죠. 그뿐인가요. 파두가 유니콘 대접을 받게 된 핵심 요인 중 하나가 ‘SK하이닉스를 통해 메타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윤 씨는 2021년 AI 스타트업 ‘모레’의 공동 대표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역시 공교롭게도 파두 사태가 불거진 직후 윤 씨는 모레 공동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모레 홈페이지 경영진 소개 코너에는 윤 씨의 흔적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 와중에 파두처럼 기술특례상장으로 IPO하려던 기업들만 난리가 나게 생겼습니다. 올해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31개 기업 중 대부분 기업 3분기 누적 실적이 공모 당시 목표치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례상장은 당장 실적이 없거나 부진한 기업이더라도 미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입니다. 어쩌면 당장 눈에 띄는 실적을 내놓으라 하는 게 어불성설일 수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특례상장 기업에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겠죠. 특례상장에 대한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수도요.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5호 (2023.11.22~2023.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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