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인물의 잘못된 판단… 중요한 역사가 이렇게도 이뤄질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죠”

정진영 2023. 11. 1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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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부터 제작까지 김성수 감독, 그가 말하는 영화 ‘서울의 봄’
12.12 군사반란은 김성수 감독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역사적인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밝혔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분명히 존재했지만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 12.12 군사반란이 스크린에 옮겨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을 찬탈하려던 신군부 세력의 ‘드러나지 않은 9시간’이 탄탄한 시나리오와 명품 배우들의 호연 속에 생생하게 살아났다. 영화를 촬영한 배우들조차 시사를 보고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영화 ‘서울의 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전율이 흘렀어요.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고 재밌게 봤지만, 겁이 나고 자신이 없어서 선뜻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뒤로는 거기 갇혀서 도망을 못가겠더라고요. 10개월쯤 지나니 용기가 좀 생겨서 (영화 제작을) 하겠다 했어요. 대신 시나리오를 제가 고쳐보겠다고 했죠.”

“전두광, 매력적 악당이면 안 됐다”


영화 ‘서울의 봄’ 개봉을 앞두고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수 감독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12.12 군사반란은 김 감독 개인에게 매우 강렬한 기억이다. 한남동에 살던 어린 시절, 육군참모총장이 납치되던 때의 총격전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화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던 이야기를 실제 시나리오로 받으니 감회가 남달랐지만, 선뜻 메가폰을 잡길 주저한 건 반란군 승리의 기록을 재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다. 처음 시나리오는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중심으로 서술돼 있었다.

제작을 마음먹은 김 감독은 사건의 서술자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으로 바꾸고, 전두광이 ‘매력적인 악당’으로 보이지 않도록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김 감독은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부분이 전두광이 매력적으로 비치는 거였다. 원래 악당은 매력이 있어야 되는데, 이 악당은 매력적이면 안 돼서 가장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전두광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의 연기를 보며 이런 걱정을 접었다. 그는 “늑대 무리의 왕이라는 건 매력이 있다는 건데, 정민씨가 그걸 최대한 차단하며 연기하더라”며 “경지에 도달한 배우는 저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현장에서도 전두광으로 앉아있었다”고 했다. 황정민은 관객들이 전두광에게 인간적 감정을 느낄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기 위해 극중 전두광의 집에 걸린 가족사진에도 절대 웃는 모습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실존 인물이 있었던 만큼 그 모습을 얼마나 비슷하게 표현해낼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전두광은 영화 속에서 실존 인물과 가장 비슷하게 재현됐다. 김 감독은 “제가 정민씨한테 ‘전두광은 그 사람이 아니니까 흉내 내지 말라’고 했다. 사투리는 쓰되 정민씨 본인이 쓰기 편한 사투리를 쓰라고 했다”면서도 “다만 12.12란 사건이 그 사람이 일으킨 일이다 보니, 그 실체가 된 사람의 상징성은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격은 몰라도, 외형만큼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평이 많다.

다큐가 아니어야 했던 이유


‘서울의 봄’은 모티브가 된 사건과 인물은 있지만, 역사적 현실을 다큐멘터리처럼 재현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실제 인물과 이름도, 성격도 동일하지는 않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자꾸 실화에 근거해서 표현하려다 보니 오히려 발목이 잡혀서 이야기를 못 풀겠더라”며 “그래서 이름도 바꾸고 이야기도 자유롭게 썼다. 관객들이 일단 영화를 재밌게 봐야 영화 이면의 역사까지 관심을 갖지 않겠나. 그래도 사건의 큰 줄기는 해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 인물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이다. 이태신에는 그를 연기한 정우성의 실제 모습을 많이 녹였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수도경비사령관의 실존 인물은 원래 불같은 분이고, 그런 모습이 전두광보다 더했어요. 막 호통치고 호랑이처럼 무시무시한 분이었는데, 이태신은 나중에 혼자 외롭게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사람이 기세등등하고 이런 것보다는 흔들림이 없고 지조 있는 선비 같은, 품위와 자기 고집을 가진 남자였으면 좋겠더라고요. 그게 요즘 관객이 볼 때도 설득력 있고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그리고 우성씨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고. 영화 말미에 이태신 혼자 남아 바리케이드를 넘어갈 때는 우성씨가 진짜 이태신 같더라고요.”

김 감독은 이태신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이 “너무 고독할 정도로 외롭다”고 털어놨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그러면서 그는 “저는 우성씨가 그런 외로움을 잘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표현할 때 넘볼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며 “(당시 정우성의 말을 듣고) 저는 마음 속으로 ‘당신은 그렇게 느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서울의 봄’을 특정 인물을 겨냥한 다큐 영화로만 보면 영화를 100% 즐기기 어렵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그 사람을 겨냥해서, 그 사람이 나빴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제 나름대로의 현재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핵심은 너무 중요한 상황에, 핵심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너무 함부로 결정했다는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역사가 이렇게 하찮은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는 걸, 관객들이 그 상황 안으로 들어가서 그 인물들을 옆에서 보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했으면 하는 게 핵심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젊은층이 영화 보고 관심 가졌으면”

영화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신군부 정권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엔딩 장면을 보면 관객은 개탄스러워하면서도 일종의 통쾌함을 느끼게 될 테다. 이런 연출을 통해 김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우리는 아무도 몰랐던 걸 그 사람들은 그 사진을 승리의 기록으로 남긴 거잖나. 본인들이 자랑스러운 삶의 족적으로 남겨놨으니 ‘아 그래, 훌륭하다’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관객들한테 박제되는 순간이었으면 했다”며 “그 사건을 모르는 분들도 인터넷에 12.12 군사반란을 치면 그 사진부터 나온다. 이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울의 봄’은 일반 관객에게 공개가 되기 전부터 호평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한 소감을 묻자 김 감독은 “‘이렇게 좋은 배우, 스탭들을 모시고 잘못하면 평생 욕먹겠지’ 하면서 부담이 컸다. 영화를 마무리 짓고 제가 보니 미흡한 점도 많았다”며 “그래도 주변에서 좋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인다”고 안도감을 표했다. 김 감독은 12.12 군사반란이 생소한 젊은 층이 ‘서울의 봄’을 보고 역사적 사건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제 야망이자 원대한 포부는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제 나이대의 관객은 이 영화에 흥미가 있으실텐데, 젊은 분들에게는 (12.12 군사반란이) 너무 옛날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이 영화를 일단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고, 재밌게 보면 저절로 호기심이 생기실테니까.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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