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 말 한 마디면 다 된다"…인사 독식 '경찰 계보' 드러날까

최경호, 황희규 2023. 11. 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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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브로커 성모씨가 경찰 간부와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 성씨는 경찰 고위직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사건 수사를 무마하고,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사진 독자

“결국 터질 게 터진 거다. 전직 치안감이 숨졌어도 경찰 간부들 향한 수사는 계속될 것이다.”

지난 18일 오후 현직 경찰 간부 A씨가 중앙일보 취재진에 한 말이다. 그는 “지난 15일 브로커 성씨와 연루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김모(61) 전 치안감(전남지방경찰청장 출신)의 극단선택 이후 광주·전남 경찰 조직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검찰은 성씨가 코인 투자사기 사건 피의자로부터 수사 로비자금 18억5400만원을 받아 경찰 등에 로비한 혐의(변호사법 위반) 사건을 수사 중이다. 고(故) 김 전 치안감의 경우 ‘공소권 없음’ 처리되더라도 검찰 수사가 전·현직 고위직 경찰들을 향해 확대될 수 있다.

A씨는 “그간 성씨가 경찰 승진 인사에 깊게 개입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수의 경찰관이 성씨에게 줄을 댔다는 의혹에 대해선 “피 말리는 (조직 내) 승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광주·전남 고위 경찰들과 인맥을 쌓은 후 브로커 활동을 해온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 수사 선상에 20여명 거론”


지난 10일 오후 광주 북구 북부경찰서에서 검찰 관계자가 간부급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러 가고 있다. 검찰은 사건 청탁을 대가로 18억여원의 금품을 받아챙긴 혐의로 브로커 성모씨를 구속하고 경찰과 검찰 연루자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부장 김진호)의 수사 선상에 20여명이 올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청탁 의혹에는 전·현직 치안감 4명, 총경급 이하 간부는 13~15명이 거론된다. 경찰 안팎에선 “그간 승진 인사를 사실상 독식했던 이른바 ‘경찰 계보’가 드러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성씨가 특정 지역 출신 경찰관들과 막역한 관계였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성씨는 이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매년 인사철이면 고위 경찰이나 성씨에게 줄을 대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라며 “이번 검찰 수사 결과에 경찰들이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술자리로 불러내 인맥 쌓아


광주지검이 지난 10일 청탁 사건 증거 수집을 위해 광주경찰청과 북부경찰서, 광산경찰서 첨단지구대 등을 압수수색했다. 당초 코인 사기사건 수사 무마 의혹으로 시작한 이번 수사는 경찰 승진인사 청탁으로 확대되며 고위 경찰 다수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연합뉴스
검·경에 따르면 성씨는 평소 친분이 있는 고위직 경찰과의 술자리를 하는 중간에 자신이 소개받아야 할 인물을 부르는 방법으로 인맥을 넓혔다고 한다. 광주·전남지역 경찰관들 사이에선 “술자리에 얼떨결에 불려 나가 성씨와 술을 마셨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당초 검찰이 성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코인 관련 수사 방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간 경찰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동선은 코인 사건 수사 무마와 인사청탁 쪽을 동시에 겨냥해왔다. 검찰의 브로커 수사는 지난 8월 4일 코인 사건무마를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성씨를 구속하면서 불거졌다.


코인 사건 시작돼 경찰 인사청탁 쪽 확대


경찰 승진 ·수사무마 청탁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광주지검이 지난 10일 청탁 사건 증거 수집을 위해 광주경찰청과 북부경찰서, 광산경찰서 첨단지구대 등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광주경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이후 검찰은 지난달 18일 전남 목포경찰서와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를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광주경찰청과 북부경찰서, 광산경찰서 첨단지구대 등 3곳을 압수수색해 “검찰 수사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성씨의 코인 사건 수사 무마 혐의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경찰 인사청탁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재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 대다수는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현재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을 받는 고위 경찰 B씨는 “청탁 관계된 일을 전혀 할 위치도 그럴 사정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또 주변 참모들에게 ‘떳떳하다. 자진해서 조사받고 구설 오르는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광역시=최경호·황희규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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