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성공 비결, 남궁민 원맨쇼의 빛과 그림자

이준목 2023. 11. 1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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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MBC <연인>

[이준목 기자]

 MBC <연인>의 한 장면.
ⓒ MBC
 
<연인>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끝내 사랑을 지켜낸 두 연인의 감동적인 재회를 끝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11월 18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연인> 최종화에서는 이장현(남궁민)과 유길채(안은진), 두 사람의 파란만장했던 순애보의 마지막 결말이 그려졌다.

최종화는 그동안 쌓여왔던 이야기의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가는 구성으로 진행됐다. 1화 오프닝에서 등장했던 백발남성의 정체는 바로 량음(김윤우)이었다. 1659년 효종 10년, 오랜 세월 감옥에 갇혀서 어느새 백발이 된 량음은, 사초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 인물인 이장현의 정체를 물으러 온 사헌부 지평 신이립에게 진실을 들려주는 조건으로 "이장현이 어찌 됐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장현의 숨겨진 이야기

이야기는 다시 과거 인조 시절로 돌아간다. 소현세자와 강빈 부부가 모두 사망한 직후, 이장현과 청나라에서 조선으로 속환된 포로들은 인조에게 위험대상으로 낙인찍혀 역적으로 몰려 모두 처형당할 위기에 내몰린다. 인조(김종태)는 장철(문성근)의 약점인 부친의 거짓 역모 고변사건을 조사해서 다시 노비로 만들 수 있다고 협박하여 순무사로 임명하고 포로들을 모조리 찾아내 소멸시킬 것을 지시한다.

이에 이장현은 포로들을 구하기 위하여 직접 장철(문성근)을 찾아가 정체를 밝힌다. 사실 이장현은 장철의 친아들이었고, 스스로 아버지를 떠나 정체를 감추고 살아왔던 것. 장철은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다시 만난 것에 놀라며 이장현을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이장현은 죽은 듯이 숨어살테니 부디 포로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하지만, 장철은 거절하며 포로들을 넘기는 것만이 이장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일축한다.

실망한 이장현은 자신이 아버지를 떠난 진짜 이유와, 오랫동안 숨기고 살아왔던 가문의 과거 치부를 털어놓는다. 어린 시절 이장현의 누나 이단은 삼도라는 노비와 사랑에 빠졌다. 사실 삼도의 정체는 이장현의 조부이자 장철의 부친이 거짓 고변으로 몰락시킨 집안의 마지막 사내였다.

삼도는 이단을 사랑하여 복수를 포기했지만, 장철은 죽은 듯이 살겠다던 삼도를 끝내 때려죽였다.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딸에게는 얼음강을 건너 심부름을 다녀오게 지시함으로써 사실상 사고를 위장하여 죽음을 강요했다. 이단은 심부름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조부와 아버지 장철의 실체를 깨닫고 충격에 빠진 이장현은 결국 가문을 등지게 되었다.

장철은 딸의 죽음이 이장현과 가문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분노한 이장현은 "아버지가 내 사람들을 치신다면 이번에야말로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산산조각 내겠다.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것은 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부자는 결국 차갑게 갈라선다.

포로들은 어렵게 형장을 탈출하지만 양천(최무성)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홀로 추격대를 유인하다가 화살을 맞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 양천이 죽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이장현은 유길채와 포로들을 함께 능군리로 먼저 피신시키고 금방 뒤따라가겠다고 약속한다.

장철은 결국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아들과 백성들을 역적으로 몰아 제거하는 길을 선택했다. 장철은 제자 남연준(이학주)에게 '선비'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내 목숨만큼 소중한 것도 도려내는 것이 진정한 희생"이라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며, 이들인 이장현마저도 "죽여라"고 냉정하게 지시한다.

남연준은 장철의 명에 따라 토벌대를 이끌고 이장현과 포로들을 추격하러 나선다. 아내 경은애(이다인)는 이장현은 역적이 아니라며 만류하지만, 남연준은 "부인은 나보다 이장현을 더 믿느냐?"라고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말문이 막힌 경은애는 더 이상 남연준을 붙잡지 못한다.

량음은 이장현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이 이장현인 척 위장하려 하지만, 이장현은 량음을 기절시킨뒤 소수의 남은 포로들을 이끌고 남연준이 이끄는 토벌대와 마주한다. 남연준은 투항을 권하지만, 이장현은 추격대가 관군이 아닌 내수사 노비들로 구성된 것을 보고, 애초에 인조와 장철이 포로들을 살려줄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MBC <연인>의 한 장면.
ⓒ MBC
 
치열한 혈투 끝에 포로들은 전멸하고 혼자 남은 이장현은 피투성이가 된다. 기진맥진한 이장현은 "날 고향에 보내달라"고 호소하며 토벌대를 뒤로 하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한다. 이장현의 등뒤로 토벌대가 쏜 화살비가 날아든다.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던 남연준은 문득 "겁먹은 자는 잔인해진다"는 스승 장철의 말을 떠올리며 망설임없이 자식마저 버리는 인조와 장철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꼭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임무를 마친 남연준은 궁으로 돌아와 이장현을 비롯한 포로들을 모두 섬멸하여 바다에 수장시켰다고 인조에게 보고한다. 유길채는 이장현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눈물을 흘린다.

모든 피바람이 끝난 후 장철은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장철은 마지막 독백에서 "현아(이장현), 너와 내가 합심하여 가문을 지키고 아름다운 의리를 지킨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긴다. 병세가 악화된 인조 역시 소현세자의 환영을 보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바닥에 쓰러져 눈을 뜬 채로 쓸쓸한 최후를 맞이한다.

홀로 남은 남연준은 "예와 의리가 살아있는 세상을 만들겠노라 핏대를 세웠으나 내가 지킨 것은 무엇인가"라며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남연준은 목을 매달아 자결하려고 하다가 때마침 경은애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얼마 후 병문안을 찾아온 유길채에게 남연준은 사실 이장현이 죽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장현은 중상을 입었지만 살아있었다. 차마 이장현을 죽일 수 없었던 남연준이 궁수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벌어준 덕분이었다.

유길채는 한 가닥 희망을 되찾고 이장현을 찾아나선다. 경은애는 남연준에게 자신도 능군리로 떠나겠다고 알린다. 그러자 깨달음을 얻은 남연준은 "나도 같이 가도 될까? 난 아직 부인의 서방이오?"라며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경은애가 승낙의 고개를 끄덕이자 남연준은 아내를 끌어안으며 오열한다.

유길채는 이장현의 행적을 쫓다가 마침내 재회하게 된다. 이장현은 큰 부상을 당해 또다시 기억을 상실한 상태였고 유길채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녀와의 추억들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유길채는 언젠가 이장현에게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들려줬던 그대로 꾸며놓고 자신을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닷가에서 유길채는 여전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장현에게 두 사람만이 알고있는 추억들을 하나씩 천천히 일깨워준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이장현은 유길채의 이야기를 듣다가 기억이 점점 깨어나며 표정이 달라진다.

유길채는 "다시 만나면 드릴 말씀이 있다. 처음 만난 날 그네를 구르며 어쩐지 그날 꿈 속 낭군님이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내 눈앞에 초록으로 분홍으로 반짝이고 있었다"라고 고백하며 "서방님, 이제 대답해주셔요. 그날 무슨 소리를 들으셨소?"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충격을 받은 이장현은 "꽃소리, 분꽃소리"라고 화답하며 그제야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눈물을 터뜨리며 유길채를 끌어안은 이장현은 "길채야, 기다렸지 그대를. 여기서. 아주 오래"라고 고백한다. 기구한 운명의 파도를 넘어 순애보의 결실을 맺은 두 사람의 모습을 끝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깊이있는 로맨스 대하사극의 매력 보여준 <연인>
 
 MBC <연인>의 한 장면.
ⓒ MBC
 
<연인>은 조선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병자호란과 명청교체기라는 역사적 혼란기에 휘말린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를 애절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재해석과 상상력을 덧입히며 최근 가벼운 로맨틱코미디나 판타지물에 치중되었던 퓨전사극과 달리 오랜만에 진중하면서도 깊이있는 로맨스 대하사극의 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단순히 남녀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라, 병자호란의 원인과 배경, 조선 지배체제와 사대부들의 모순, 인조와 소현세자의 정치적 애증관게, 전쟁 이후 조선인 포로와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 등, 정통사극이 아님에도 당대의 시대상과 역사적 문제인식를 깊이있게 반영했다는 점은 더욱 호평을 받았던 대목이다. 사극 팬들 사이에서는 시대 배경과 주요 설정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사극 걸작인 <추노>(KBS, 2010년)와 비교되기도 했다.

드라마 초중반부까지는 몇몇 주요 배역의 미스캐스팅 논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캐릭터와 설정을 그대로 복사하다시피한 구성. 항저우 아시안게임 일정과 맞물려 파트 1, 2로 나뉘어 중간에 방영기간이 단절되는 등, 악재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팬덤층을 구축해내며 위기를 극복했다.

이장현을 연기한 남궁민을 비롯한 주조연배우들의 고른 호연이 빛났다. 현대극 이미지가 강했던 남궁민은 <구암 허준> 이후 10년 만의 사극 복귀작인 <연인>을 통하여 대표작인 <스토브리그> <김과장> <천원짜리 변호사> 등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인생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극의 메인빌런인 인조의 편집증적인 면모를 잘 살려낸 김종태, 모순되고 이중적인 지식인의 면모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문성근의 반전 연기도 돋보였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연장 방영 여부를 두고 벌어진 혼란과 촉박한 촬영일정 때문인지 초반에 비하여 극의 영상미와 완성도가 떨어진 것은 옥에 티였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오직 남궁민의 '원맨쇼'에 의존한 서사도 아쉬운 대목이다.
 
 MBC <연인>의 한 장면.
ⓒ MBC
 
여주인공 유길채는 본래 보수적인 조선사회와 전란이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부당한 핍박과 차별에 당당하게 맞서는 주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됐다. 그러나 청나라에 납치된 이후의 전개에서는 '붙잡힌 히로인' 클리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후반부는 사실상 이장현과의 마지막 재회 외에는 드라마의 서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관찰자같은 인물로 전락한다.

반면 이장현은 드라마 주인공임을 감안해도 그 비중이나 활약상이 지나치게 과장되어있다. 전장에서는 혼자서 수십명을 수시로 해치우는 무쌍을 찍고, 적진에 들어가 첩보원 노릇을 완벽하게 수행하는가하면, 외국어와 장사에도 능통한다. 일개 통역관이 왕족이나 대신들을 손바닥 위에 가지고 노는가하면 소현세자 앞에서 국제정세를 강의할 만큼의 정치적 안목까지, 그야말로 못하는 게 없다. 그럼에도 사랑에 있어서는 일편단심 유길채만을 바라보는 순정남이자 대인배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처럼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완벽한 초인에 가까운 이장현의 원맨쇼가, 오히려 극의 입체적인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청나라 볼모시절, 실제 포로 구출을 주도하고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던 것은 소현제자와 강빈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역사적 활약상마저 드라마에서는 모두 이장현의 공로가 되어버리면서 소현세자의 극중 비중과 존재감은 애매해졌다. 극의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할 소현세자 부부의 최후가 주는 비극적 효과도 그만큼 반감됐다.

아웃사이더인 이장현과는 라이벌 포지션에서 '젊고 개혁적인 선비'를 대변하는 남연준은, 극중 내내 이장현에게 무시와 조롱만 당하고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하다가 결말에 낙향하는 것으로 초라하게 퇴장하는 고구마 캐릭터에 그쳤다. 또한 량음과 각화(이청아)의 이장현에 대한 일방적인 연정은, 스토커에 가까운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장현이 처음부터 혼자서 매번 북치고 장구치는 구도가 반복되다보니 그만큼 다른 등장 인물들은 그저 이장현의 계획에 놀아나는 '무능한 적'이거나, 아군이라도 이장현의 유능함만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답답한 민폐' 캐릭터 일색이 되어버렸다. 멋있고 폼나는 장면을 그저 남궁민 한 사람에게만 과도하게 몰아주는 것보다, <추노>처럼 선악을 막론하고 다양한 성장형 캐릭터들이 각자의 관점과 서사를 가진 것으로 역할을 분배했더라면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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